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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의 음악, 시대를 진단하다
[대중문화읽기] 미국 대중음악의 중심 밥 딜런 신보 'Together Through Life' 나와




최민우 대중음악평론가



밥 딜런(Bob Dylan)의 새로운 음반이 ‘벌써’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그가 작년에 발표한 부틀렉 음반 ‘The Bootleg Series Vol.8: Tell Tale Signs’의 존재감이 워낙에 강력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음반은 1989년부터 2006년까지 발표한 음반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실리지 않은 곡들과 음반 수록곡들의 라이브 버전들을 모은, 말 그대로 ‘재고 처분’에 가까운 비정규 컴필레이션 음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평단과 팬들에게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 음반에 대한 반응이 어떠했는지 궁금하다면 음악/영화/TV/게임 등의 평론들을 모아 평균 점수를 내는 사이트인 메타크리틱(http://www.metacritic.com/)에 가보면 된다. 마치 밥 딜런의 이름을 달고 내는 음반이라면 어떤 것이 들어있건 간에 상찬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은 광경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가 살짝 삐딱한 표정으로 기타를 잡은 채 청자를 흘겨보고 있는, 자기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운 데뷔작 ‘Bob Dylan’을 발표한 것은 1962년이다. 그로부터 벌써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미국 대중음악의 중심에 있다.

서른두 번째(!) 정규작이었던 전작 ‘Modern Times’(2006)는 발매 첫 주에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신작 ‘Together Through Life’ 역시 발매 첫 주에 미국과 영국의 앨범 차트에서 동시에 1위에 올랐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딜런의 ‘제 3의 전성기’를 연 것은 1997년에 발표한 ‘Time Out Of Mind’였다. 음울하면서도 원초적인 사운드, 세계와 인간에 대한 어두운 시선으로 무장한 이 날카로운 블루스 음반은 이듬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 부문을 수상했으며, 이른바 ‘후기 밥 딜런’의 음악적 특징인 미국 대중음악의 ‘루츠’에 대한 탐구(혹은 유희)를 본격적으로 열어젖힌 음반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뒤이어 나온 ‘“Love And Theft”’(2001)는 전작과는 달리 익살스럽고 해학적인 분위기 속에서 블루스와 초기 로큰롤에 기댄 흥겨운 음악을 들려주었다. 전작인 ‘Modern Times’는 이 탐구를 극단까지 밀고 나가 컨트리와 블루스, 틴 팬 앨리라는 미국 대중음악의 세 개의 ‘근대적’ 뿌리를 파헤친 음반이었다.

이른바 ‘3부작’의 완성이라 할 만 했고, 딜런은 이 세 장의 음반에서 패스티쉬와 표절과 오마주의 삼각주 사이를 노니며 미국 대중음악의 어떤 ‘근원적 비밀’에 다가간 것 같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혹은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이 음반은 마치 이 ‘3부작’의 후기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더불어 이 음반이 원래 정식으로 나오기로 예정된 음반도 아니었다는 사실 또한 이런 생각을 부채질한다. 원래 이 음반은 영화 ‘라 비 앙 로즈(La Vie En Rose)’의 감독인 올리비에 다한(Olivier Dahan)의 신작 ‘My Own Love Song’에 수록될 곡을 만들다가 일이 커지면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영화에 수록되기로 한 곡은 "Life Is Hard"다).

그래서 발매일인 4월 28일을 채 두 달도 남겨놓지 않은 3월 중순에 음악잡지 ‘롤링 스톤(Rolling Stone)’에 발매 광고가 급작스럽게 실렸다.

그러나 막상 음반을 들어보면 ‘Together Through Life’가 3부작의 ‘후기’ 혹은 급조된 음반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이 음반의 프로듀서는 잭 프로스트(Jack Frost), 즉 밥 딜런 본인이며(‘잭 프로스트’는 밥 딜런의 가명이다) 라틴 록 밴드 로스 로보스(Los Lobos)의 데이빗 히달고(David Hidalgo)와 관록의 아메리칸 록 밴드인 탐 페티 앤 더 핫브레이커스(Tom Petty And The Heartbreakers)의 기타리스트 마이클 캠벨(Michael Cambell)이 참여하고 있다. 거기에 딜런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밴드 멤버들이 가세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음악은 물 흐르듯 유연하고, 느긋한 생동감으로 가득하다. 1950년대 시카고 블루스, 자이데코(Zydeco: 루이지애나 지방을 중심으로 생겨난 프랑스 계통의 댄스 뮤직) 여기에 더하여 텍스-멕스(Tex-Mex: Mexican-Texan music. 텍사스 중부와 남부를 중심으로 한, 라틴 음악과 미국 대중음악이 결합한 형태의 음악) 또한 만만찮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인위적이고 매끈하게 녹음되었다기보다는 클럽의 구석에 있는 떠돌이 악사들이 사정이 되는 대로 연주하는 것 같은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다소 신경질적인 느낌의 (리듬 앤) 블루스와 나른하고 울적한 느낌의 발라드가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포근하고 우수 어리다.

그러나 그의 세계관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첫 곡 “Beyond Here Lies Nothin’”에서 딜런은 마치 엄격한 유물론자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 너머에는 아무 것도 없어 / 우리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라고 노래한다. 오직 사랑만 빼고 말이다. 딜런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밖에 없는데, 이 사랑마저도 사실은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려운 것이다.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의 말에 따르면 “(이 음반에서) 사랑은 달콤하고 기묘하며 흥분되는 것이고 심지어는 필요한 것이기까지 하지만, 당신에게 좋은 건 아니다.” 제목만 놓고 보자면 ‘오바마 시대’에 대한 기대처럼 보이는 “I Feel A Change Comin' On”에서도 그는 다음과 같이 읊조린다. “꿈이 내게 뭔가 영향을 미친 적은 없어 / 심지어는 꿈이 실현됐을 때조차도” (딜런은 오바마가 ‘미국을 바꾸고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비록 그가 마지막 곡 “It's All Good”에서 “모든 것이 다 좋아”라고 흐트러진 목소리로 웅얼거리기는 하지만 그건 마치 커다란 역설처럼 들린다. ‘시대의 현자’가 내리는 이러한 결론은 우리를 울적하게 한다. 더 큰 문제는 그 결론에 대해 ‘원래 울적한 관점은 누구에게나 설득력 있는 것이게 마련이다. 혼자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굴지 마라’고 우리가 선뜻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 폭력과 질병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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