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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오인환 개인전 'TRAnS'] 2000년 이후 대표적 작업들 모아 정체성과 사회적 관계 제시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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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환 개인전 ‘TRAnS’는 ‘김민수’를 찾으며 시작된다. 그 이름이 트럭에 실려 밤마다 서울을 돌아다닌다.(‘이름 프로젝트: 당신을 찾습니다, 서울’) 한국에서 가장 흔한 이름 중 하나다. 그렇다고, ‘그’가 한국에서 가장 흔한 사람일 것인가? 모를 일이다.

어쩌면 한국에서 가장 키가 큰, 가장 아이큐가 높은, 가장 오래 물구나무를 설 수 있는 김민수가 있지 않을까? 작가는 이토록 애타게, 그 실체를 찾아 헤맨다. 김민수를 찾으면 김민지를 찾고, 김민지를 찾으면 박정현을 찾는다. 이렇게 열 개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미술관을 방문해야 프로젝트가 끝난다.

또 다른 ‘이름 프로젝트’가 이어진다. ‘2006 이반파티’ 포스터가 붙어 있다. 하지만 커밍아웃을 한 작가를 제외한 참석자들의 이름은 지워져 있다. 성적소수자를 뜻하는 ‘이반’으로서의 신분을 드러내지 못하는 현실이 엿보인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온전히 ‘자신’으로 살고, 소통하려는 의지가 없을 리 없다. 포스터 중앙에 있는 것은 그들의 사인을 겹겹이 쌓은, 이를테면 ‘공동체의 이름’이다.

이 두 프로젝트는 ‘이름’에 질문을 던진다. 개인을 타인과 구별하여 지시하는 이 사회적 약속은 너무 우연하고 미흡한 동시에 강력하다. 어떤 이름도 각기 고유하며 복잡다기한 개개인의 속성을 적실하게 담지는 못한다. 또 어떤 이에게 이름은 스스로 싸워야 할 굴레가 된다. 이름에 ‘자연스럽게’ 얹히는 외부의 기대가 정작 자신과는 어긋난 까닭이다.

이렇게, 통상적인 정체성의 지표들을 ‘trans-(가로질러, 전환하는, 변혁하는)’하는 것이 이 전시의 관심사다.

이름 같은 언어의 문제만은 아니다. 작가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군대에서 체득한 문화나, 공교육 제도에서 배운 습성 등도 개인과 사회의 접점으로서의 정체성의 일부로 주목한다.

전시장 한 켠의 방에서는 춤을 출 수도 있을 만큼 템포가 경쾌한 일렉트로닉 음악이 나오는데 이는 군가 ‘진짜 사나이’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면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는 장엄한 곡을 뒤집어 편곡한 결과다. 벽에서는 가사가 음절 단위로 쪼개진 채 음악에 맞춰 반짝거린다.



(좌) '이름 프로젝트 : 당신을 찾습니다, 서울', 2009 (우) '우정의 물건들', 2000~


태극기를 향한 경례의 ‘시선’도 전시했다. ‘태극기 그리고 나’는 한국에서 가장 큰 태극기 게양대를 3등분해서 찍은 비디오 영상 설치 작품이다. 어떤 보조 장치도 없이 태극기를 담기 위해 카메라를 높이 쳐든 채 버텼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화면은 흔들리고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섞인다. 그러다가 한 순간 태극기가 툭, 하릴 없이 떨어져 내린다. 작가의 팔이 풀려버린 것이다.

이 두 작업을 통해 작가는 “일반화된 남성적인 문화를 보편적이지 않게 인식하는 경험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것은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 판단의 문제라기보다 ‘이성애자 남자들의 것’을 ‘이성애자 남자들의 것’으로 지각하는 인식의 객관성에 관한 것이다.”

“어떠한 사회에도 다수의 방식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겠지만... 바람직한 방식이라도 그것이 지나치게 ‘지배적인 것’이 되는 것은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며, 권력을 가진 지배적인 것은 다양성을 억압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견제되어야 한다. 타자로서의 나는 다양성이 배제된 사회에서 ‘일반적’ 그리고 ‘보통’이 아닌 것으로 살아가는 것에 부여되는 차별을 체험하고 목격해 왔다. 그러므로 미술가로서의 나의 역할은 다양성을 억압하는 지배적인 것과 일반적인 것에 내재되어 있는 속성들을 그대로 드러내고, 다양성을 실현하는 조건들을 추구하는 것이다.”(모노그래프 중)

진지하지만 엄숙하지는 않게 정체성과 사회적 관계의 문제를 제시하는 이 재미있는 전시는 2000년 이후 작가의 대표적인 작업들을 모았다. 전시를 기획한 김선정 큐레이터는 “오인환의 작업은 우리 사회 속에 감추어져 있던 부분을 드러낸다”며 “그의 작업을 통해 소외된 여러 삶과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 개인과 사회, 집단과 개인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개념적으로 풀어내보고 싶었다”고 그 의도를 밝혔다. 전시는 7월19일까지 서울 종로구 화동에 위치한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다. 6월19일 오후 7시에는 작가와의 대화가 마련된다.

다음은 오인환 작가와의 이메일 인터뷰 내용이다.

‘이름’과 ‘몸’에 대한 관심이 보인다. ‘이름’은 작업에 직접적으로 거론되기도 했고, 몇몇 작품은 몸으로 반응해야 하는 것들이다. ‘진짜 사나이’를 들으면서는 춤이라도 춰야 할 것 같았다. 작업에서 이름과 몸은 어떤 의미인가.

‘이름’과 ‘몸’ 모두 작업의 주제는 아니다. 내가 작업을 통해 다루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주제나 대상 자체라기보다 무엇(대상)을 인식하고 재생산(표현)하는 과정 전체이고, 이런 과정이 우리의 가치 판단이나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다루기 위해서 동원한 지점이 ‘이름’과 ‘몸’ 같은 것들이다. 일상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목격되거나 경험된다는 점에서 주목했다.

모노그래프에서 ‘페미니즘의 보편성’을 언급했다. “페미니즘의 역할이 여성성과 정체성의 이슈에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한 중요한 인식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작가 오인환에게 미친 페미니즘의 영향은 무엇인가.

나에게 페미니즘의 설득력은 이론적이기보다 실재적이다. 이전에는 게이 혹은 타자로서의 나의 삶이나 생각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라 판단했었다. 하지만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을 접한 후 그것이 보편적인 경험이자 인식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중요한 사고의 전환이었다.

페미니즘은 다른 학문이나 이론에서 배제되었던, 여성을 포함한 문화적 타자들의 관점을 이론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삶과 문화, 이론들이 남성주의 관점으로 치우쳐 있음을 발견하고 균형 잡힌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기존의 남성주의 문화가 어떤 남성들에게는 유리할 수 있겠지만 모든 남성들을 위한 것은 아니지 않나. 페미니즘이 촉구하는 것은 진정한 보편성을 유지하는 문화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에 부여하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몇 년간의 행보를 한 자리에 모아 놓았으니.

이렇게 큰 규모의 개인전은 처음이다. 최근 한국 미술계는 미술 시장에 치우쳐 있고, 미술 상품화 때문에 다양한 미술이 보여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내 개인전이 상품화된 미술과는 차별화된 미술의 사례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아가 미술의 다양성을 회복하는 시도로 받아들여졌으면 한다. 그래서 미술 시장이 선호하는 물질적 완성도나 시각적 직접성과 대비되는 비물질적이고 간접적인 방식을 많이 취했다.

어리석지만, 대답이 궁금한 질문이다. ‘좋은’ 문화예술이란 무엇인가. 어떤 기준으로 문화예술 작업을 판단해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우리 문화가 성숙하기 위한 조건 중 하나로 ‘다양성’을 강조하고 싶다. 다양성을 수용하거나 생산할 수 있는 문화적 유연함이 우리에게는 아직 없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감도 예가 될 수 있겠다. 동성애, 입양, 혼혈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가정 등이 일상 속에서 소화되기보다는 담론의 차원에서 유지되고 있는 현실은 문화적 다양성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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