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아트프리즘] '장영혜 중공업'과 이희복의 뉴미디어 타이포그래피

1, 2-장영혜 중공업의 '삼성'
3-말라르메의 '주사위 던지기'
4-라인하르트 될의 '사과'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Stephane Mallarme)의 시는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그의 시가 난해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는 가장 순수한 언어란 다른 사람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언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다른 사람과 소통할 목적을 지니지 않은 순수한 언어로 만든 시를 그는 순수시라고 불렀다. 그러니 이렇게 순수하게(?) 만들어진 시를 머리로 이해하겠다고 달려들었다간 좌절만 남을 뿐이다. 그의 시는 개념을 담은 언어가 아닌 이미지로 접근해야만 한다. 순수한 시는 언어로 쓰여진 이미지인 것이다.

순수시에 집착했던 말라르메는 아예 단어들을 종이 위에 다양한 크기로 산만하게 뿌려 놓은 ‘주사위 던지기’(Un Coup de des)라는 구체시를 발표하였다. 산만하게 흩어진 다양한 크기의 글씨들은 의미에 앞서 독자에게 마치 회화처럼 하나의 시각적 이미지를 전달했다.

초현실주의자였던 아폴리네르(Giullaume Appollinaire)는 아예 ‘비가 내리네’(Il pleut)라는 제목의 시를 마치 비가 떨어지는 듯한 모양으로 발표했다. 이미지를 나타내는 이들 시의 가장 큰 특징은 시를 이루고 있는 글자들의 형태와 따로 떨어져서는 시의 생생한 느낌이 전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각적 이미지를 지닌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시를 읽던 감각과는 다른 감각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이들 시가 언어라는 매체에 의존하지 않고 시각적 이미지라는 매체에 동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인하르트 될(Reinhard Dohl)의 시 ‘사과’(Apfel)는 두 개의 매체가 빚어내는 모순과 통합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 시는 독일어의 사과에 해당하는 Apfel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사과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물론 오른쪽 하단에는 벌레를 뜻하는 Wurm이라는 단어가 마치 사과 속으로 침투하는 벌레마냥 끼어 있다.

이 시를 보는 독자는 사과의 형태를 보고 사과라는 단어의 의미로 이행할 수도 있으며, 거꾸로 사과라는 단어들을 보고 나서 이 형태가 사과 모양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서로 섞여서 하나의 모순된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과라는 글자의 형태는 그냥 글자가 아닌 독립적인 이미지로 기능하는 하나의 타이포그래피가 된다.

리오타르는 ‘담론, 형상(Discours, Figure)’이라는 책에서 글자의 가독성과 조형성은 서로 반비례한다고 하였다. 사람들이 글을 읽을 때 그 뜻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경우 글의 조형성은 자연스럽게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글자의 조형성보다는 가독성에 항상 우위를 두고 가독성을 높이는 데 글자 디자인, 즉 타이포그래피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바우하우스의 교장이었던 그로피우스는 타이포그래피의 목적을 가독성의 증대에 두고 정자체인 산세리프체(고딕체)로 표준화하려고 하였다.

말라르메나 아폴리네르, 될의 시는 결국 가독성과 조형성의 반비례 법칙을 깨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텍스트의 가독성과 상관없는 독자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서 글자의 조형성에 주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뉴미디어를 활용한 작가들은 필사본이나 인쇄매체에 의존하던 선배들의 작업을 보다 용이하게 계승하고 있다.

‘장영혜 중공업’과 이희복의 디지털 시는 모두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활용해 과거의 시도들을 새로운 지평으로 확장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영혜 중공업’(Young-Hae Chang Industries)은 한국인 장영혜와 미국인 마크 보주(Marc Voge)가 한 팀을 이루어 활동하는 인터넷 예술 그룹이다. 이들은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지만 이미 그 행동반경이 국경을 넘어서 전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예술가 집단이 되었다. 이들의 작업은 음악이 곁들여진 간단한 타이포그래피의 플래시 작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표작 ‘삼성’(SAMSUNG)은 파란 바탕화면에 하얀색 글씨가 시처럼 흘러내린다. 싯구들은 정지된 형태가 아니라 때로는 과장된 크기의 글씨로 때로는 매우 빠른 깜빡거림을 통해서 율동감 있게 스쳐지나간다. 이들이 직접 작업한 음악과 함께 파란 화면에 새겨진 타이포그래피는 관객에게 단순한 텍스트 이상의 감동을 부여한다. 삼성의 파란 로고는 장영혜 중공업의 작업에서 하나의 시로서뿐만 아니라 복합적인 이미지로서 풍자되고 희화화된다.

이희복의 타이포그래피 시 ‘SKY’ 또한 음악과 타이포그래피의 결합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제목 그대로 하늘을 주제로 다룬 이 시는 단순한 타이포그래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화면에 나타나는 글자들은 마치 영화에서 이중인화, 암전, 클로즈업 등의 기법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장면을 연출한다.

가령 바이올린 연주의 박동이 빨라지고 긴장이 고조됨과 동시에 화면에 나타나는 글자의 크기와 깜빡거림의 속도 역시 고취된다. 관객은 시라는 텍스트에서 얻어지는 두뇌의 상상력과 함께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정서적 감흥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한 마디로 관객의 몸은 기존의 시를 흡수하는 매체가 아닌 전혀 새로운 매체가 되는 것을 경험한다.



박영욱 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연구소 HK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