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거부-예산감축-집중감사-인격 살인 후 자진 사퇴 공통점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된 산하기관장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의 무리한 퇴출 압박이 도를 넘어선 채 완료됐다. 지난달 14일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의 사퇴 과정에서 보인 문화부의 압박방식은 일관되게 ‘퇴임거부 - 예산 감축 - 집중감사 - 인격 살인 후 자진사퇴’라는 ‘패턴’을 반복했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정치논리에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인 공기관 운영을 위해 여야합의로 도입된 공기관장 임명제 취지가 완전히 흔들리는 모양새다.

황지우 총장은 14일 공동기자회견에서 “식물상태에 빠진 총장직에 앉아 있는게 더 이상 의미도 없고 무엇보다도 나로 인해 본교에 몰려 있는 수압을 덜어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사퇴를 결심했다”며 “예산집행이나 행정절차에 대한 감사지적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매우 섬세하고 특수한 예술교육분야에서 아카데믹 시스템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행정관료들이 손보려 하다니, 거기서 파생될 우리 문화의 전반적인 반달리즘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고 말했다.

황 총장이 느낀 압박감은 전 정권이 장을 임명한 문화부 소속기관의 예산삭감에서 수치로 드러난다. 한예종‘통섭’사업안은 참여정부 시절 문화부, 기획예산처, 국회 심의를 거쳐 4년 중기사업으로 이미 32억원의 예산을 집행했으나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예산을 전액 삭감해 0원으로 만들었다. 이후 황 총장은 기성회비 등을 투입해 ‘통섭’ 교육 사업을 운영해왔다.

문화부는 이례적으로 3개월에 걸쳐 집중적으로 진행된 한예종 감사에서 학교발전기금 유용을 내세웠다. 황 총장은 14일 공동기자회견에서 “학교 발전기금 모금을 위한 ‘총장 사진전’을 제안 받고 카메라, 필름, 현상인화 비용 등을 쓴 200만원의 영수증을 모아뒀다 처리하는 과정에서 비서가 교체된 것이 화근이었다”며 “들어가지 않아야 할 일부 비용이 섞여 들어간 것을 문제 삼은 것으로 총장직을 물러나야 할 만큼 중대한 비리인가 하는 것에는 수긍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전 국립현대미술관 김윤수 관장

가장 존경 받는 시인 가운데 한명이 문화예술기관장 자리에서 파렴치범으로 몰려 사퇴한 셈이다. 황 총장은 건강 악화로 21일 경기 분당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다.

이런 ‘패턴’은 퇴진을 거부해온 다른 노무현 정권 임명 문화부 산하 공기관장 퇴출 과정에서도 반복돼왔다. 지난 2008년 10월 문화부가 국정감사에 제출한 업무현황 자료에 따르면 퇴임을 거부했던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버티던 문예위 2009년 예산안은 전년대비 222억 9400만여 원 삭감돼 5.3% 줄었다.

문화부는 문예위가 문예진흥기금 일부를 펀드에 넣은 것을 감사에서 운용규정 위반으로 지목해 퇴진시켰다. 김 위원장이 방만하게 기금을 운영해 40여 억원의 손실을 낸데 대해 책임을 물었다는 게 문화부의 논거다. 그러나 김 위원장 퇴진의 본질은 기금 운영 문제가 아니라 문화부의‘코드 인사’관철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퇴임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국립현대미술관 2009년 예산안은 수장고 개선비를 제외하면 18억여 원이 줄어들어 전년 대비 7.1% 감소했다. 문화부는 노무현 정부에서 이미 감사를 통해 기관경고를 당했던 마르셸 뒤샹 그림 밀수 의혹을 다시 관세청에 고발해 김 관장을 수사 받게 하고 지난해 11월 계약해지 했다.

문화부 산하기관 2009년 예산안에서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기관장이 선임된 기관은 예산이 1~15% 증가했다. 반면, 참여정부 선임 기관장이 버티고 있는 기관 예산은 1.4~30.4% 삭감됐다.

이재근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팀장은 “공기관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은 2006년 한나라당도 취지에 동의해 도입된 것”이라며 “공기관장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바뀌면 공기관이 책임운영되지 않는 폐해가 심각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팀장은 이어 “표적감사를 통해 퇴임압력을 넣는 것은 이 정부의 전형적인 방식”이라며 “공기관장의 임기제 파괴는 사회를 획일화 하는 부작용을 남길 것”이라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