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태의 인터넷 세상 읽기] 추모글·동영상·광고 등 사상 최대 규모 사이버 추모 물결

포탈 사이트를 비롯한 여러 사이트의 추모 화면

2009년 5월 23일(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해외 언론에서 ‘세계 최초의 인터넷 대통령 로그온하다’로 표현할 정도로 IT와 친했던 분이다.

인맥관리 프로그램인 ‘노하우2000’을 개발한 경험으로 만든 청와대 관리 시스템인 ‘이지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이름으로 공동출원해 특허등록까지 받았다.

프로그램 개발 과정을 잘 알고 있기에 정통부를 통해 IT산업을 지원했고, 정부 행사에 블로거를 참석시킬 정도로 일반 네티즌에게도 신경을 썼다. 또한 청와대 블로그를 통해 네티즌과 쌍방향으로 평등하게 소통하면서 네티즌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대통령이다.

IT를 사랑하고 네티즌을 사랑했으며, 누구보다 인간적인 노무현 대통령이었기에 사이버 세상에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추모의 물결이 넘실대고 있다. 네이버, 다음, 네이트, 야후, 파란 등의 포탈과 언론사들은 첫화면에 흑백으로 된 로고나 조화, 리본을 달아 슬픔을 표시하고 있다.

옥션, 지마켓, 인터파크와 같은 대형 오픈마켓을 비롯하여 알라딘, 디시인사이드와 같은 전문 분야 쇼핑몰도 추모 화면으로 바꿨다. 올블로그, 블로그코리아 등 메타사이트와 사진 커뮤니티인 SLR클럽을 비롯한 동아리도 추모 화면으로 바뀌었다.

네티즌들의 개별 추모 물결은 더욱 적극적이어서 블로그마다 노무현 대통령의 초상화로 넘친다. 증권전문가로 유명한 시골의사 박경철씨는 아예 블로그 사이트 이름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서거를 진심으로 애도합니다...’로 바꿔버렸을 정도다.

동영상 UCC외에도 배너, 위젯 등 다양한 형식으로 제작된 추모 콘텐츠들

과거와 달리 방법과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는 사이버 추모 모습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추모에서 나타난 사이버 추모의 특징은 추모 방법의 다양성이다. 과거의 추모 사진과 글 외에도 추모 게시판, 사이버 분향소가 마련되고, 블로그마다 추모 배너가 달렸다. 노무현 대통령의 과거 모습은 동영상UCC로 제작됐다.

개구쟁이 같은 사진을 비롯해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부른 상록수를 편집한 동영상이 게시판과 블로그, 미니홈피에서 쉴 새 없이 재생되었다. 위젯도 만들어졌다. 위자드닷컴에서는 추모위젯과 노란풍선 위젯을 만들어 네티즌에게 무료로 제공했다. 컴퓨터아트를 이용한 다양한 초상화가 만들어졌고, 무수한 추모 웹툰이 만들어져 네티즌의 눈시울을 자극했다.

사이버공간의 추모 열기는 오프라인으로 번졌고, 네티즌의 자발적인 모금운동을 통해 신문광고가 진행되었다. 클리앙 회원, 씨네21의 회원, ‘DVD 프라임’, 야구 커뮤니티인 ‘MLB Park’, 음악 커뮤니티 ‘WSD’ 등이 모금을 통해 광고를 냈고, ‘뽐뿌’,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 ‘82cook’ 등 3개 커뮤니티는 연합으로 광고를 냈다. 일반인들도 작은 광고를 개인이름으로 내거나 모임 이름으로 냈다.

네티즌들이 모금해서 신문에 낸 광고들

사이버문화에서 미래정치의 변화를 읽는다

이러한 네티즌의 추모 문화는 우리나라 정치의 또 다른 전환점을 보여주었다. 먼저 요즘의 청년층에게 기성 세대의 권위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연하게 보여줬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살해야 한다’는 김동길씨의 말이나 변희재, 조갑제, 전여옥, 김진홍, 이효선 광명시장 등의 막말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은 상대할 가치도 없는 ‘노망’으로 무시할 정도로 성숙했다.

대신 이들의 행동을 기록을 통해 남김으로써 훗날의 응징을 기약했다. 또한 자발적으로 배너와 위젯을 달고 모금을 해서 광고를 할 정도로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일부 언론 사이트와 네이버 뉴스에서는 여전히 고인에 대한 악플이 달렸지만 그 규모나 활동영역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대부분의 사이버 공간에서 안티노무현의 활동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봉하마을에서는 기자들이 조선.중앙.동아의 로고를 떼고 몰래 취재해야 했으며, KBS 중계차는 쫓겨났다. 시설이 열악한 봉하마을에서 처음 며칠 동안 언론사 기자들이 화장실의 전원코드에 노트북컴퓨터를 연결하며 화장실 안에서 기사를 작성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을 때, 블로거 기자는 노사모기념관에서 여유롭게 기사를 작성하고 송고했다. 기성 매체의 권위가 현저하게 줄어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추모문화를 통해 알 수 있는 변화는 네티즌이 국민들에게 기성 매체보다 더 신뢰를 받기 시작했으며, 지역이나 정당의 개념보다는 정치의 방향성이 네티즌에게 더 중요한 가치로 평가 받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한 정치인은 네티즌의 지지를 받지만 부자를 위한 정치를 펴는 수구 정치인은 네티즌의 질타 대상이 된다.

결국 네티즌 세대가 사회와 경제의 주역이 될 가까운 미래에는 한국 정치도 좀 더 국민을 위한 정치로 바뀔 것임을 기대하게 된다. 네티즌의 지지에 힘입어 유색인종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탄생한 것처럼, 이번 추모의 물결을 통해 보여준 도덕적 정치에 대한 네티즌의 강한 지지는 향후 한국 정치가 가야할 길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김중태 (IT문화원 원장. www.dal.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