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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발레의 토착화는 요원한가
전통 속 콘텐츠에서 소재 발굴해 새로운 공연미학으로 양식화해야




성기숙(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무용평론가)





1-국립발레단 '호두까기'
2-국립발레단 '신데렐라'
3-국립발레단 '스파르타쿠스'


국가브랜드 작업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국립무용단을 비롯 국립국악원무용단 등 최근 국립예술단체마다 국가브랜드 작업이 한창이다. 국립단체는 기본적으로 공공성과 예술성 그리고 대중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국가브랜드 작업이야말로 이러한 화두를 충족시키기에 긴요한 발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국가브랜드 작업에 대해 개인의 창작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전체주의적 시각이 반영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도 없지 않다.

그러나 국립단체는 본질적으로 ‘국가중심주의’적 입장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과 일회성 행사위주의 활동에서 창작에너지를 ‘선택집중’하여 단체의 브랜드적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해석된다.

국립무용단체 중 유일하게 국립발레단만이 국가브랜드 작업의 대열에서 열외에 서 있다. 귀족예술의 전형으로 불리는 발레는 이국적 정취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틱한 서사, 극장예술로서의 스펙터클한 볼거리와 고전으로서의 품격 등 귀족예술의 전형적인 공연미학을 내포하고 있다.

또 발레는 가장 기본동작인 턴 아웃(turn out)에서 보듯 신체구조를 안에서 밖으로 인위적으로 밀어내는 역행과 반역의 논리에 입각한 인고의 훈련을 통해 다듬어진 고도의 신체언어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경외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대중적 호소력이 뛰어난 예술로 손꼽힌다.

발레는 이미 세계보편성을 띤 춤언어로 통용되고 있기에 국지성을 벗어나, 우리예술을 브랜화하는데 있어 그 어떤 예술장르보다 유리한 지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립발레단이 국가브랜드 작업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발레의 토착화 작업이 급선무이다. 여기서 잠시 한국발레의 토착화를 위한 선배들의 치열한 여정을 반추할 필요가 있다. 1972년부터 국립발레단을 이끈 임성남은 초기엔 서양고전 발레의 재현에 몰두했지만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발레양식의 한국적 토착화를 적극 표방했다.

‘지귀의 꿈’, ‘대비’, ‘처용’, ‘춘향의 사랑’, ‘왕자호동’, ‘고려애가’등 우리의 고전이나 설화를 배경으로 민족적 아이덴티티에 기반한 임성남 안무의 작품들은 한국 창작발레의 대표작으로 회자된다.

92년 임성남 퇴진 이후 김혜식ㆍ박인자ㆍ김긍수ㆍ최태지로 그 바톤이 이어져 오지만, 국립발레단을 상징적으로 자리매김하는 이렇다할 작품은 부재한 실정이다. 임성남 이후 김혜식, 최태지의 발탁은 무용계 내에서는 대표적인 ‘무임승차’ 수혜자들로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해외 유학파 출신이라는 점에서 적지않은 화제를 낳기도 했다

한국 최초의 영국 유학파 출신인 김혜식은 오랜 미국생활로 체득된 서구적 감성과 합리적 의식으로 실력위주의 캐스팅을 단행했다. 서열위주의 억압적 구조의 발레단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프로의식을 불어넣어 대외 경쟁력을 높인 파격적 운영방식으로 주목을 끌었다.

발레의 대중화를 겨냥한 최태지는 ‘해설이 있는 발레’라든가 스타 파워를 활용한 기획력에 초점을 두어 국립발레단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기여했다.

최근 한국발레는 실로 눈이 부쉴 정도로 급성장했다. 특히 테크닉의 진화가 두드러진다. 해외 유수의 권위있는 국제콩쿨에서의 입상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동방의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새로운 발레강국으로 부상하여 전통적 발레강국의 견제대상이 되고 있다.

발레가 한 나라의 국력이나 경제성장의 지표 혹은 ‘바로미터’가 된다는 점은 흥미롭다. 예컨대 10년전 아시아국가에서는 일본이 초강세였는데 지금은 한국이 선두의 위치에 있고 이어 최근 중국의 발레열풍이 무섭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렇게 한국발레가 급성장한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면서 서구적 식습관의 영향으로 발레하기에 유리한 신체조건이 조성된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또 냉전이데올로기 해체이후 전통적 발레강국인 러시아의 바가노바 메소드와 같은 선진발레 기법이 적극 도입되어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우수한 인재배출이 가능해졌다는 점도 그 이유일 것이다.

오늘날 국립발레단의 브랜드가치는 그동안 꾸준히 우수한 테크니션을 교육시켜 공급해온 한예종 무용원과 같은 훌륭한 교육기관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향후 한국이 진정한 발레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필요이상 기술주의에 함몰되기 말 것과 발레의 ‘식민성’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창작발레의 부재속에 ‘서양 것’의 맹목적 수용은 심각한 수준이다. 국립발레단의 경우, 너무 쉽게 외국 작품을 사 가지고 와서 무대에 올리면 된다는 식의, 다소 안일한 의식이 아쉽다.

최근에는 러시아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작품ㆍ안무는 물론 제작과 관련된 일체를 들여오는데, 심각한 ‘식민성’의 반증이 아닐 수 없다. 아다시피 유리 그리고로비치는 자국의 사회주의체제 몰락이후 돈벌이를 위해 세계를 유랑하고 있는 ‘잊혀진 거장’이 아니던가.

발레는 태생적으로 서양에 기원하기 때문에 서구의존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임성남 시대 국립발레단은 창작발레와 함께 서구 클래식 발레 재현에 주력했다. 임성남 이후 ‘레퀴엠’, ‘에떼르니떼’, ‘알레그로 브릴리언’, ‘까르미나 브라나’, ‘스파르타쿠스’, ‘해적’등 모던발레를 선보여 레파토리를 다양화한 것은 김혜식, 최태지의 업적이다.

모던발레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돕고 아울러 교양의 폭을 넓혀주면서 선진예술에 대한 계몽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없지 않다. 국립발레단은 질좋은 토종 재료를 가지고 언제까지 서구식 상차림으로 일관할 것인가. 서양의 이름난 요리사를 초빙하는 것은 이제는 그만했으면 싶다.

세계적으로 공인된 명품발레 수입을 통해 능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것은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국공립단체의 예술감독은 기본적으로 안무능력 내지 작품성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즉 평가의 전제로서 자기의 대표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태지 예술감독의 안무작은 이른바 ‘환타지 발레’라는 타이틀로 공연된 ‘바리’가 유일하다. 초연 당시 그다지 호평받지는 못했다. ‘바리’실패 이후 그녀는 창작에 대한 열망과 호기심마져 상실한 것 같다. 최태지 단장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주문하고 싶다.

한국발레의 토착화는 진정 요원한 것인가. 우리 전통속에 숨겨있는 무궁무진한 콘텐츠에서 그 소재를 발굴하여 새로운 공연미학으로 양식화하는 작업이야말로 한국발레를 토착화하는 지름길이 아닐까 한다.

한국발레의 토착화라는 시대적 요청 앞에서 자국의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투영하여 세계무대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중국 국립발레단의 ‘홍등’은 좋은 성공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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