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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 가능할까
서양과 만난 '춘향'
창작춤·발레·현대춤 등 고전 텍스트의 다양한 변용 시도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







문학과 예술에서의 ‘사랑’은 너무나 전형적이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사랑받아왔고 앞으로도 사랑받을 영원한 인기 아이템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시대와 장르를 초월하며 현대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것은 바로 그 ‘사랑 타령’의 전형을 완성했기 때문일 것이다.

뉴욕의 웨스트 사이드 지역을 배경으로 제트파와 샤크파가 대립하는 내용을 그린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토니와 마리아는 1950년대에 환생한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완성된 고전 텍스트의 현대적 결합이 보여주는 성공적인 사례다.

이런 점에서 수많은 고전의 보고를 가진 우리나라가 몇해 전부터 현대적 공연의 틀에 고전 텍스트들을 융합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미 ‘심청’과 함께 너무나 유명한 텍스트인 ‘춘향’의 춤 버전은 최근 몇년간 다른 단체, 다른 버전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진 바 있다.

하지만 모든 첫 시도들이 그렇듯이, 무대 위에서 현대의 옷과 서구의 틀에 맞춰진 한국 고전 텍스트의 모습은 아직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현대적 감각의 한국 창작춤과 발레, 현대춤 등으로 다양하게 시도되는 고전 텍스트의 변용은 결코 서양에 뒤지지 않는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특히 한국춤, 발레, 현대춤 등 장르를 불문하고 여러 차례 변주를 계속하고 있는 ‘춘향’의 경우는 그 리스트의 선두에 있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너무나 익숙한 줄거리 탓에 이제 ‘춘향’이라는 텍스트에의 관심은 그것의 ‘요리방식’에 달려있다고 할 만하다. 그런 점에서 지난 2006년 세계음악극축제에 초청됐던 현대무용가 안은미의 ‘신 춘향’은 ‘춘향’의 재해석과 현대춤의 자유로움이 만나 이뤄낸 참신한 실험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등 유럽 4개 지역에서 큰 관심과 호응을 끌었던 이 작품에서 우리가 아는 익숙한 춘향의 모습은 없었다. 안은미가 표현하는 ‘삭발 노처녀’ 춘향에, 이몽룡과 변학도가 동성애 관계에 빠지는 파격성까지, 한국적인 움직임과 현대적 해석의 혼용이 국내외의 관객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반면 국립무용단의 ‘춤, 춘향’은 ‘정통’ 춘향에 오랫동안 매진한 결과였다. 정통을 고수하는 무용단답게 원전은 당연히 ‘춘향전’으로 하고 이를 바탕으로 ‘춘당춘색고금동’(2001)과 ‘춤, 춘향’(2002)을 거치며 수정을 거듭해 2007년엔 완성된 ‘춤, 춘향’을 무대에 올렸다. 이 같은 행보는 마치 발레 공연이 초연 이후 수정 보완을 계속하며 완성된 레퍼토리로 발전하는 양상을 떠올리게 한다.

발레 버전의 ‘춘향’은 서구의 동화 텍스트 대신 우리에게 친숙한 고전과 발레의 만남이기에 더욱 주목된다. 발레 ‘춘향’은 2007년 고양아람누리 개관 기념으로 전막 초연되어 이미 예술성과 대중성을 입증한 바 있다. 이미 국가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국립무용단의 ‘춤, 춘향’을 모체로 하고 유병헌 유니버설발레단 예술감독이 안무를 맡아 ‘춘향’의 텍스트와 춤을 발레로 재탄생시켰다.

한편 국립발레단은 같은 해 또 하나의 의미있는 ‘춘향’을 발레로 선보였다. 러시아의 전설적인 안무가 미셀 포킨이 우리 고전 ‘춘향전’을 소재로 1936년 몬테카를로에서 초연한 ‘사랑의 시련’을 재연한 것. 이는 ‘춘향전’을 소재로 해외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언론과 평단, 관객의 주목을 끈 바 있다.

그러나 뚜껑이 열린 포킨의 ‘춘향’은 ‘우리 것’이라고 하기엔 다소 오리엔탈리즘에 갇힌 서구의 시선만 재확인해줄 뿐이었다. 이 공연의 방점은 위대한 안무가 포킨이 주목한 ‘춘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포킨’과 ‘그들이 본 ‘춘향’의 복원’에 찍힌 아쉬움을 남겼다.

오는 19일과 20일 2년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유니버설발레단의 발레 ‘춘향’은 이 점에서 주목해볼 만하다. 두 번째 공연인 만큼 안무를 맡은 유병헌 예술감독이 그동안 수정, 보완작업을 주도해 ‘발레적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는 초연 당시 아쉬운 점으로 지적받았던 발레적인 요소에 대해 중점을 둔 데서 비롯된다.

또 아직은 ‘춘향’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외국인들을 배려해 극 초반부터 캐릭터를 강화했다. 특히 군사들이 변사또를 물리치는 장면에서는 테크니컬하면서도 웅장한 남성 군무의 진수를 발휘하게 된다.

‘춘향’이 세계무대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발레극, 또는 춤 작품으로 진화되고 있는 것은 역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주제 덕분이다. 심정민 춤평론가는 “발레 ‘춘향’은 기본적으로 신데렐라 스토리와 흡사하지만 바로 그런 인류 보편의 정서를 드라마틱하게 펼쳐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자아낼 수 있다”고 진단한다.

심 평론가는 이 같은 한국 고전 텍스트의 발레화에 대해서 “서양 발레의 강도 높은 테크닉과 한국적 정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하며, “원전에 대한 깊이있는 접근과 함께 두 요소를 잘 조화시킨다면 더 좋은 한국 발레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고보면 ‘춘향’은 결국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다. 그 안의 반전과 복선은 드라마의 힘으로 거듭나고 권선징악하는 전형적 결말은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마저 가지고 있다. 우리가 러시아 발레 작품에서 익히 보아오던 것과 흡사한 것이다. 월매, 향단, 방자와 같은 개성있는 서브 캐릭터들도 무궁무진한 극의 변주를 가능케 한다.

‘춘향’은 이후 한국의 고전 텍스트가 현대적 장르와 결합해 세계와 만날 때 거론될 수 있는 의미있는 실험이다. 이번에 업그레이드된 발레 ‘춘향’은 그래서 완성형이 아니라 현재에서 미래로 진행 중인 텍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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