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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악동에서 진중한 예술가로
[대중문화읽기 / 그린데이] 콘셉트 앨범으로 21세기 록 시장서 '천만 장 신화'
신작으로 이어가나





최민우 대중음악평론가







록 음악의 커다란 전통 중 하나는 컨셉트 앨범(concept album)이다. 컨셉트 앨범이 록 음악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록 음악의 영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컨셉트 앨범이란 무엇일까? 대중음악학자 로이 셔커(Roy Shuker)에 따르면 컨셉트 앨범은 “어떤 테마에 의해 통합된 음반으로, 이 테마는 연주, 작곡, 이야기 혹은 가사의 측면일 수 있다.”

즉 컨셉트 앨범이란 단일한 (음악적, 정서적, 정치적) 주제 혹은 이야기 구조에 따라 짜인 음반이다. 컨셉트 앨범은 록 음악의 전성기였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주로 만들어졌으며, 비틀스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나 킹 크림슨의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1969), 데이빗 보위의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1972), 핑크 플로이드의 ‘The Dark Side Of The Moon’(1973) 등이 대표작들이다.

컨셉트 앨범은 1980년대에 들어서도 종종 제작되었으나 간결함을 상징으로 하는 얼터너티브 록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고, 복고풍 댄스 록이 유행하기 시작한 21세기에는 사실상 전멸 상태가 되었다.

우리가 펑크 록 밴드 그린 데이의 최근 행보에 감탄을 금할 수 없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들은 2004년 발표한 일곱 번째 정규작 ‘American Idiot’에서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 있는 컨셉트 음반이라는 시도를 21세기의 메인스트림 록 시장에서 시도했으며, 그 도전을 훌륭하게 완수하여 비평적 찬사를 받았고, 더군다나 엄청난 상업적 성과를 거둠으로써 여전히 이런 음악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때의 인기 밴드로 머물 뻔 했던 밴드 본인들의 경력에서 일대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신화를 신작 ‘21st Century Breakdown’에서 이어가고자 한다.

사실 그린 데이의 데뷔 당시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음악 팬들에게 이는 놀라운 변신이다. 1990년대 초반 소규모 인디 레이블에서 두 장의 음반을 발표하며 호시탐탐 성공의 기회를 노리던 캘리포니아 출신의 이 4인조 팝 펑크 밴드는 1994년 메이저 데뷔작인 ‘Dookie!’를 발표하면서 말 그대로 열광적인 인기를 끌었다.

‘Basket Case’, ‘Welcome to Paradise’ 등의 히트곡을 낳은 이 음반은 미국 내에서만 1천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고, 이후 메인스트림 씬에서 이른바 ‘네오 펑크/팝 펑크’라는 일군의 음악적 흐름이 발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때의 그린 데이는 말 그대로 ‘악동 밴드’로서,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장난스럽고 자기비하적인 태도를 단순하고 밝은 팝송 멜로디에 실어 부르던 밴드였다(밴드의 대표곡 ‘Basket Case’는 ‘혹시 내가 징징거리는 거 들어줄 시간 없나요?’라며 정신과 의사와 남창에게 ‘찌질하게’ 신세 한탄을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후 밴드의 경력은 조금씩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밴드는 ‘Insomniac’(1995), ‘Nimrod’(1997), ‘Warning’(2000) 등의 음반들을 꾸준히 발표했고, 나름대로 음악적 변신도 시도해 보았지만, 이 중 어떤 것도 ‘Dookie!’의 영광을 재현하는데는 실패했으며(하긴 ‘천만 장 가수’가 똑같은 영광을 다시 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 동안 록 음악계의 유행도 변했다. 팝 펑크는 더 이상 인기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오프스프링이나 배드 릴리전 등의 동료 밴드들이 21세기에 발표한 음반들은 모두 참혹한 결과를 거뒀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린 데이가 택한 전략은 가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단순무식한’ 펑크 록과 ‘복잡하고 지적인’ 컨셉트 앨범을 결합하는 것. 음악의 외형적 형식을 바꾸는 게 아니라 음악에 접근하는 태도 자체를 바꾸는 것.

‘America Idiot’은 ‘교외의 예수(Jesus of Suburbia)’라는 이름을 가진 십대 청소년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면서 ‘성 지미(St. Jimmy)’라는 주체적인 인물로 변하는 과정을 줄거리로 하여 부시 정권 하 미국 사회의 모순들을 공격적으로 까발렸으며, 펑크 록 밴드의 음악적 한계를 넘어서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이러한 주제를 성공적으로 구현해냈다.

평론가들은 이 음반을 더 후의 ‘Tommy’(1969)와 허스커 듀의 ‘Zen Arcade’(1984)와 같은 컨셉트 앨범의 전설적인 걸작들에 비교하는 데 인색하게 굴지 않았으며, 전세계적으로 천만 장 이상을 팔아치웠고(‘천만 장 신화’의 부활인 셈이다), 2005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밴드 역사상 처음으로 2개 부문을 수상했다.

밴드의 신작 ‘21st Century Breakdown’은 기본적으로 ‘American Idiot’의 연장선상에서 미국을 바라보고 있는 음반이다. 그 사이에 미국의 대통령은 부시에서 오바마로 바뀌었지만, 아직 ‘담대한 희망’의 증거는 보이지 않고, 부시 시절에 미국이 입은 치명상 역시 회복되지 않았다.

크리스찬(Christian)과 글로리아(Gloria)라는 두 남녀가 미국의 현실에 환멸을 느끼는(그리고 끝내 절망하고 마는) 주인공으로 나오는 ‘21st Century Breakdown’은 전작보다 더욱 야심찬 구조와 세심하게 구성된 이야기를 선보이고 있는데, 3부로 나뉜 구성과 70분에 이르는 길이 속에서 자신들이 갖고 있는 음악적 패를 남김없이 선보이면서 음반 전체를 팽팽한 긴장 속에 이끌어간다.

가끔씩 야심에 짓눌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작을 좋아했던 사람들이라면 이 음반 역시 거부할 수 없을 것이고, 실제로 음반의 내용물은 훌륭하다. ‘디지털 싱글’과 ‘미니 앨범’, 그리고 가볍고 쿨한 태도가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는 21세기의 음악계에서 그린 데이는 록 음악의 전성기에 대한 경배를 놀라운 방식으로 수행해내는 중이다. ‘놀자판 펑크 록 밴드’에서 ‘예술적 록 밴드’로의 성공적인 변화와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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