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미술 장터] 젊은 작가엔 자유로운 창작 토대를, 애호가엔 문화 향유 폭 넓혀줘

화가 이경훈(29)씨는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석사 과정까지 수료했지만 대중에게 작품을 알릴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대형 화랑은 유명작가가 아닌 이 씨에게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화랑 공모전에 수십 번 작품을 응모해봤지만 기회를 잡기는 힘들었다.

석사 과정을 마친 뒤 작업비는커녕 생활비를 구할 길마저 막막해졌다. 벽화 아르바이트와 초등학생 과외도 해봤지만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다. 결국 이씨는 붓을 꺾을지 고민하기에 이른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온라인 미술장터에 올린 그림을 보고 미술 전시 기획자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이 씨는 자신과 같이 한 온라인 미술장터에 올린 그림으로 발탁된 20대 작가 7명과 지난 3월 서울 부암동 아트 스페이스 스푼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지난달 29일 부터는 서울 인사동 갤러리 이즈(is)에서 3인전을 열고 있다.

이 씨는 “미대를 졸업한 신진작가들에게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인 화랑의 벽은 상당히 높은 편이어서 자금 압박에 붓을 꺾는 사람들이 많다”며 “온라인에서는 떳떳하게 작품을 올릴 수 있어 갤러리가 주가 되고 작가는 객이 되는 화랑 중심의 작품활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누구나 그림을 올릴 수 있고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온라인 미술장터(경매 사이트)가 화랑 중심의 미술 제작•유통의 관행을 변화시키고 있다. 화랑의 선택을 받아야만 작품활동을 할 수 있던 작가의 활동을 좀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있다. 미술품애호가들에게는 거품을 걷어낸 직거래로 미술품을 통한 문화 향유의 폭을 넓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온라인 미술 장터, 유통구조 바꿔 창작자의 폭 넓힌다

온라인 미술장터에서는 작가가 작품을 자유롭게 올리고 이용자와 만날 수 있어 신진작가들의 작품활동을 대거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들의 창작의욕 역시 탄력을 받고 있다. 화랑 전속작가의 창작면의 ‘종속’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편으로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술협회 등록화가는 2만 4000여 명에 이르러 오프라인 화랑이 이들의 공급을 감당하기에는 턱없는 수준이다. 이들 중 순수 작품활동만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전업작가는 200~300명 선으로 볼 수 있다.

지난 2007년 문을 연 스타아트(www.staart.kr)는 ‘신진작가 중 미래의 블루칩 작가를 발굴해 세계 미술시장에 알리는 관문’을 표방하고 있다. 현재 수수료는 받지 않고 있다.

작가는 자유롭게 작품을 올리고 일반회원은 작가와 직접 연락해 작품을 구매할 수 있다. 지난해 연간 30여건에 그쳤던 거래는 올 들어 매달 평균 15건 정도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온라인 미술 장터를 가장 반기는 계층은 젊은 작가들이다. 368명의 작가 회원은 대부분 20~30대로 진입이 어려운 화랑을 거치지 않고도 대중들에게 손쉽게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며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온라인 미술관에 걸린 그림을 보고 미술전 기획자의 눈에 띄어 전시회를 여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온라인 미술 장터가 거대 화랑의 눈에 들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작가들에게 자유로운 창작의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화랑전시의 기회를 얻지 못해 ‘투잡’을 하며 작품활동을 하던 작가들이 공간에 제한이 없는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자신의 작품으로 작업비를 벌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문을 연 아트렐라(www.artrella.com)는 200여 명의 미대 재학생•졸업생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올리며 작품활동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이 사이트도 수수료를 받지 않고 있다.

이 사이트는 전국의 미대가 있는 대학교별로 작품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꼭 판매와 연결이 되지 않더라도 화랑에 작품을 걸기 힘든 미대생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대중에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규현 ‘아트렐라’ 대표는 “웹 에이전시를 하다 공모전을 통하지 않고는 마땅히 화가의 길을 걸을 수 없는 미대생들의 딱한 사정에 착안해 사이트를 구축하게 됐다”며 “미술품을 멀고 어려운 것으로만 느끼던 이용자들의 만족 역시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소병문 ‘포털아트’ 대표는 “화랑 전시는 임대료, 도록제작비 전시회 운영비 등의 부대비용이 만만치 않아 일반작가들이 전시회를 하려면 작품활동에만 전념하지 못하고 문화센터 강의 등의 ‘투잡’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온라인 미술 장터는 누구에게나 개방돼 있기 때문에 중견작가 뿐 아니라 신진작가들이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펼칠 수 있는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구조 개선으로 미술품 가격 거품 걷어

온라인 미술 장터의 활성화는 화랑을 중심으로 한 미술시장의 왜곡된 가격 결정과 유통구조를 재편할 수 있는 대안시장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미술애호가들에 또 하나의 미술품 구매, 감상의 채널을 늘린 셈이다.

지난 2006년 문을 열어 우리나라 온라인 미술 장터의 효시격이 된 ‘포털아트(www.porart.com)’에서는 한달에 200~300점 가량의 미술품이 거래되고 있다. 이들 작품은 주로 미술작가들이 올리는 것으로 작가와 소비자의 1차시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전속작가의 작품이 아닌 경우에는 화랑은 대부분 소비자와 소비자의 거래로 작가에게는 거의 영향이 없는 2차 시장의 역할을 해왔다.

전속작가의 경우에도 국내작품을 해외로 들여갔다 다시 들여오며 가격을 올리는 식으로 화랑이 ‘작전’을 하는 경우도 있다. ‘재주는 곰이 부리도 돈은 되놈이 받는’ 셈.

거대 화랑들은 전속화가에게 숙식 등의 특혜를 제공하고 그림을 싸게 사놓았다가 소더비, 홍콩 크리스티 경매 등에 진출시킨 뒤 역수입 하는 식으로 ‘가격 뻥튀기’를 하기도 한다.

지난해 한 화랑은 국내에서 1000만원대에 가격이 형성된 작품을 해외 아트페어에 출품해 2000만원에 팔았다. 국내언론은 이 작가를 해외에서 인정받은 젊은 작가로 보도했다. 그러나 화랑이 현지인을 고용해 해당작가의 작품을 모두 사들인 결과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 상한제’를 시행해 미술작품을 구매의 폭을 넓히는 사이트도 있다. 지난해 5월에 문을 연 ‘아트폴리(www.artpoli.com)’는 작품 판매가격을 100만원 이하로만 하고 있다. 방문자의 댓글 수에 따라 작품을 선정해 오프라인에서 전시회를 열어주고 있기도 하다. 또,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라 명함이나 포스터, 엽서를 신청하면 만들어 배달한다. ‘미술사랑 명함’의 가격은 50장 들이 한 세트에 1만 5000원이다.

온라인 미술장터가 멀게만 느껴졌던 미술품과 일반인의 거리를 좁히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미술가를 후원할 수 있는 방법까지 제공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 사이트는 회원에 가입하지 않으면 작품을 볼 수 없어 공익적 역할을 홍보하는 온라인 미술장터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은 모습도 보이고 있다.

박상용 미술품가격정보연구소 소장은 “미술 제작과 유통에서 화랑이 그동안 많은 역할을 해왔지만 질적, 양적으로 다양해진 미술에서 한계에 다다랐던 것도 사실”이라며 “온라인 미술 장터는 유통구조의 다변화로 미술 권력의 쏠림 현상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랑 권력 견제, 전체 매출 비중은 아직 미미

온라인 미술장터의 약진은 무엇보다 미술품 가격 왜곡의 해결점이 된다는 면에서 순효과가 예상된다. 화랑에 소속되지 않아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킨다는 면에서도 이득이 크다. 온라인 거래는 전산거래 시스템을 도입하는 경우 거래기록이 전산에 남아 미술품을 통한 탈세방지에도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화랑 중심의 미술 유통 구조의 문제점이 가져온 가격왜곡은 그동안 큰 문제였다. 작품의 거래가 화가의 이익과는 무관하게 이뤄졌으며 미술품과 대중의 거리를 멀게 해온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미술시장, 뒤집어 보기(박상용)’에 따르면 오치균 작가의 ‘사북그림’은 2002년 호당 20~30만원에 거래됐고 50호는 1000만원 선이었다. 이후 이 작품은 2007년 1억원을 호가했지만 이익은 고스란히 화랑과 경매사에 돌아갔다.

외국 작품을 국내에 들여오며 가격을 높여 거래상과 화랑이 이윤을 편취하는 만성적 문제 역시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현지에서 7700만원에 팔린 피카소 작품은 1억 8500만원에 거래됐다. 현지에서 구입해 국내에 들여온 사람과 경매사에 의해 몇 달동안 ‘가격 뻥튀기’가 이뤄진 때문이다.

그러나 온라인 장터의 규모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어서 대안적 미술거래 시장으로 자리잡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우리나라 온라인 미술장터는 작년에야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거래량은 점수로 따지면 전체 미술시장에서 한자리 대이며 매출액으로 따질 경우 소수점 아래로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옥션’, ‘K 옥션’ 등의 대형 경매사가 온라인에도 미술품을 내놓고 있지만 대부분의 거래는 오프라인에서 이뤄진다. 기성 작가들도 대부분 온라인 미술 장터에 작품을 내놓기 꺼리는 실정이다.

박상용 소장은 “미술계 내부에서는 ‘누구 누구는 작전으로 키운 작가’라는 말이 공공연한 비밀로 나돌고 있다”며 “온라인 미술시장의 등장은 미술품 유통비용을 줄여 가격왜곡을 조정하는 역할, 화가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기회의 제공, 화랑 중심 미술품 유통구조상 권력집중을 분산시키는 유통구조의 다변화 효과 등을 기대하게 한다”고 말했다.



김청환 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