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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아티스트들은 누가 지켜주지?
'지북', '월간 디자인' 카이스 갤러리 등 해외에 우리 작가 알리기 앞장




황수현 기자 sooh@hk.co.kr



가구 디자이너 김선태의 작품
“국내에서는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 초창기 나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래서 해외로 나가 작품을 만들고 전시를 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자신이 만들어 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젊고 열정이 있었다. 때문에 앞서 걸어간 한국인이 없다는 사실이 크게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덴마크 유학 시절부터 자비를 들여 전시회에 참가했고 2005년에는 세계 3대 가구전인 밀라노 국제 가구 박람회의 참가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한국인 최초였다.

‘최초’라는 단어는 매번 자랑스럽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작품 제작부터 운송, 전시까지… 한 손에는 짐을 지고 한 손으로는 길을 만들면서 걸어야 했다. 학생 때는 이름으로만 알던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들 속에서 꾸준하게 작품을 낸지 3년째인 지난해, 그는 예술서적 출판사인 타센이 출간한 ‘디자인 나우(design now)’에 ‘현대 디자인에 획을 그은 90인의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소개됐다.

책의 표지는 자하 하디드의 작품이 장식했고 필립 스탁, 론 아라드, 아이팟을 만든 애플의 디자인 팀이 그와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30대의 가구 디자이너 김선태 작가의 이야기다. 그러나 국내로 들어온 그에게 주어진 것은 몇 번의 인터뷰와 수고했다고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이 전부였다.

해외에서 먼저 이름이 알려져 뒤늦게 우리를 놀라게 하는 한국인 아티스트들의 성공 신화는 새삼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잠깐 눈길을 주었다가 이내 심드렁해지는 국내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다음 작품과 홍보 방안을 고민하고 끌어주는 이 하나 없는 세계 무대로 다시 나간다. 이쯤 되면 계란으로 바위 치는 수준을 벗어난다. 그들이 날리는 미약한 종이 비행기는 세계의 벽에 부딪혀 찌그러져 떨어지기 일쑤다. 우리의 아티스트들은 누가 지켜줄까?

세계 속 고군분투하는 코리안 아티스트

“디자인은 인간이 만든 창조물의 중심에 깃든 영혼”이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이 맞다면 지금 한국의 영혼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티스트들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스스로 세계의 감성에 뒤쳐진다고 생각하죠. 전반적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지만 개개인의 역량을 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뿐이에요.”

크리에이터 그룹 지북 곽숙경 이사의 말이다. 뉴욕 모마 미술관, 샤넬의 광고 비주얼, 두바이 최고급 호텔의 레스토랑, 칼 라거펠트의 쇼… 글로벌 트렌드의 중심에서 불쑥불쑥 거론되는 친숙한 이름들은 우리 민족의 감성에 대해 공연한 자괴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해준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지원과 관심에 있어서는 자괴감을 느껴야 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칼 라거펠트가 밀라노의 한 편집 매장에서 싹쓸이해갔다는 준지(Juun.J)의 디자이너 정욱준을 만났을 때 그는 다음 컬렉션의 비행기 티켓 값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지원 문의를 해 보지 않았느냐고 묻자 “몇 번 해 봤는데 안 되더라고요” 라는 씁쓸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들의 눈물겨운 각개전투에 대해 나라의 지원은 미흡하고 어설프다.

현재 서울시와 지식경제부에서 각각 ‘서울 디자인 펠로우십’과 ‘차세대 디자이너 리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에는 역부족이다. 해외 전시 경험이 없는 심사위원들은 어떤 전시에 어떤 작가가 ‘잘 먹힐 지’에 대해서 무지하고, 유망한 작가를 밀어준다기 보다는 돈 없는 학생 작가들을 도와준다는 성격이 강하다.

최근 뉴욕 모마 미술관에 초청을 받는 등 상업적으로 괄목할만한 결과를 내기 시작한 제품 디자이너 박진우는 2005년에 이어 두 번째로 지원 신청을 했다가 “이제 자리 잡았는데 또 지원이 필요하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투자했으니 당장 결과를 내놓으라는 요구도 작가들을 괴롭힌다.

서울산업진흥통상 서지은 과장은 “디자이너가 전시에 참가해 계약으로 이어지기까지는 2년 이상 걸립니다. 미술 작품이라면 그 자리에서 팔면 되지만 기성품은 제작에 들어가기까지 업체와 협의해야 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요. 최소한 3년 가량 꾸준한 지원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한다.





지북, 월간 디자인, 갤러리가 나선다

산발적이고 일관성 없는 정부의 지원이지만 그나마도 받지 못하는 작가들이 훨씬 많은 것이현실이다. 우리의 아티스트들을 우리의 손으로 지키자는 소규모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크리에이터 그룹을 표방하는 지북(zibook)은 건축, 디자인, 사진, 일러스트, 패션 등 총 6개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한국의 아티스트들을 해외에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1년에 두 번 작가들의 포트폴리오를 엮은 책을 만들어 해외 예술 대학 도서관과 갤러리 등으로 보낸 지 올해로 벌써 3년째다. 7월에는 7번째 지북이 발행된다.

“해외의 디자이너들은 주변의 도움으로 디자인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뛰어납니다. 반면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이루어내야 하는 자수성가형이 많죠.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조직적인 도움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작가들을 모은 것이 지북의 시작입니다.”

국내에서는 유명한 커피 체인점 등에 비치돼 대중과 만나며 작가와의 협업을 원하는 기업에 무료로 배포 되기도 한다. 초반에 언급한 김선태 디자이너는 지난해 지북이 주선한 기업의 후원으로 전시에 참가했다. 지금까지 지북을 거쳐간 작가만 1000여명으로 아티스트들 간의 비정기적인 만남도 시도하고 있다. 건축, 패션 등 각 분야 최고 고수들의 만남이 한국 문화 발전에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향후 해외 진출 디자이너들의 글로브 에이전트로 영역을 확장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명감만으로 시작된 일인 만큼 쉽지 않다. 수익원이 따로 없기 때문에 순전히 참여 작가들의 도움과 홍보 컨설팅, 인쇄물 제작으로 벌어들인 수입으로 제작비를 충당하고 있다.

언론 매체와 갤러리에서도 책임감을 가지고 의미있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디자인하우스에서 발간하는 월간 디자인은 7년째 진행해온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의 참가 디자이너들 중 일부를 모아 3년 전부터 밀라노와 독일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참가하고 있다. 한국 작가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해외 전시회에 대한 정보를 배경으로 몇몇 업체들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한다. 갤러리 중에서는 카이스 갤러리가 대표적으로, 홍콩에 지점을 열어 한국 작가들의 작품만을 전문적으로 소개, 전시하고 있다.

지북의 발행인인 곽숙경 이사는 홍보 부족으로 창고 속에 처박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한국 작가들의 뛰어난 작품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특히 중국에서 한국의 건축 디자이너에 대한 반응이 상당히 좋습니다. 어떤 작가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해 하고요. 그들에게 적절한 정보를 주는 것만으로도 작가들에게는 엄청난 도움이 됩니다. 정부가 해줄 수 없다면 소신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해야죠. 급하게 마음 먹지 않고 천천히 하려고 합니다. 지금은 미약하지만 의미 있는 프로젝트가 하나라도 성사된다면 대한민국 디자이너의 해외 진출에 새로운 희망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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