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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시선으로 본 상처와 한 몸인 사람들
[영화속 미술이야기] 영화 <퍼>(FUR)와 다이안 아버스
'금지된 세계'를 탐닉한 "오즈의 마법사"같은 여성사진가





글/ 정준모(미술비평, 문화정책)



쌍둥이 소녀들
살아생전 겨우 3번 사진전에 출품했고 변변한 작품집조차 낸 적 없는 48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버린 여성사진가 디앤 아버스(Diane Arbus,1923~1971), 그녀는 사진작가로서 일천한 삶을 살았지만 미국 사진가로는 처음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했으며, 그녀의 회고전은 700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으는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녀의 이러한 사진의 힘은 기형이라는 이유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을 세상 밖으로 불러낸 때문이다.

부유한 유태인으로 태어난 그녀는 14세에 같은 유태계인 가난한 사진작가 알렌 아버스(Allan Arbus, 1918~ )와 사랑에 빠져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8세에 결혼한다. 먹고살기 위해 사진작가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마리끌레르(marie clarie), 보그(Vogue) 등 패션잡지의 사진을 찍는 남편의 조수가 되어야 했던 그녀는 30대 후반의 나이에 문득 자신의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상처받은 불구자들의 운명적 고뇌에 관심을 가진 리제트 모델(Lisette Model,1906~1983)을 사사한다.

그 후 리차드 아베돈(Richard Avedon, 1923~ 2004), 마빈 이스라엘(Marvin Israel,1924~1984) 등과 교우하며 예술적 내공을 쌓은 그녀의 천재성은 기이한 앵글과 소재를 만나 활화산처럼 폭발하면서 미국사진의 운명을 바꾸어 놓고 만다. 하지만 1959년 남편과 이혼하고 마약과 섹스 중독에 시달려야했던 그녀는 결국 지독한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1971년 7월, 자신의 아파트에서 손목을 긋고 만다.

이런 남다른 삶을 살았던 디앤 아버스의 인생을 전기작가 패트리샤 보즈워스(Patricia Bosworth,1933~ )는 1984년 ‘디앤 아버스: 전기’라는 이름으로 책을 펴냈고 이 책은 그 해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원본으로 삼아 제작한 ‘퍼’(FUR, 2006년 작)는 역사가 된 실존인물의 삶을 영화적으로 새롭게 접근했을 뿐만 아니라 평범한 주부로 살던 한 여성이 자아를 찾을 기회를 찾지 못하면서 겪는 1950년대 보통 주부의 심리를 섬세하게 잡아낸다.

즉 기존의 전기 영화의 방식 대신 디엔의 실화와 그녀의 예술적 영감을 조합한 판타지에 가까운 내러티브를 통해 팩트와 픽션이 교차하면서 디앤의 상상 속 이야기를 담아낸 것이다. 감독과 작가가 선택한 이런 방식은 디앤 아버스가 새롭게 열어간 사진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그녀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앤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뒤틀린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상상력이다. 그것이 바로 그녀의 세계관이기도 하다”라고 이 영화를 감독한 스티브 세인버그(Steven Shainberg, 1963~ )는 말한다. 그는 이미 디앤과 친분을 나누었던 삼촌을 통해 어렸을 적부터 그녀의 존재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디앤을 만난 적은 없었지만 그녀는 어른들의 세계 어딘가에 속한 신비롭고 흥미로운 존재였다. 그 사진들은 지금까지 내 시각적 상상력의 모태가 되어왔다.”고 술회한다. 이런 인연과 세인버그 특유의 기묘한 것에 대한 감각과 작가 윌슨(Erin Cressida Wilson)의 자유로운 상상력, 그리고 암울하지만 아름다운 흑백사진의 깊고 아름다운 명암과 콘트라스트를 스크린에 재현시킨 촬영감독 빌 포프(Bill Pope,1952~ )가 만나 새롭게 탄생시킨 디앤의 삶이 짠하게 다가온다.



(좌) 수류탄을 들고 선 소년 (우) 영화 '퍼'의 한 장면


통상적인 연대기적 전기 기술방법을 버리고 디앤 아버스가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 1958년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영화 ‘퍼’는 동화와 심리학, 역사극, 그리고 러브 스토리까지를 담고 있는 영화이다. 자신이 살던 익숙한 사회를 떠나 천형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점점 빠져들면서 ‘다른 세상’을 만나고 이를 통해 자신과 그 자신들을 깨워나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디엔의 삶과 예술의 진정성에 다가간다.

영화에서 디앤 역을 맡은 니콜 키드먼은 온실 속 화초처럼 나고 자란 디앤 아버스가 기묘하고 낯선 세계에 빠져들면서 자신을 에워싼 꺼풀(fur)을 벗고 새롭지만 두려운 모험의 세계에 도전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온 몸으로 느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흥분, 설렘, 두려움, 혼란 그리고 용기와 결단이 이앤을 주부에서 작가로 완성해나간다. 여기에 이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가공의 인물 라이오넬로 분한 로버트 다우닝의 연기도 압권이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 온 주부가 아버지가 물려준 모피 옷(Fur)을 벗고 온 몸에 털이 자라는 선천성 다모증 환자를 만나면서 새로운 모피를 입게 된다. 새로 이사 온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남자에게 묘한 매력과 신비를 느끼면서 그 ‘특별한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이내 사랑이 된다. 하지만 그는 선천성 질환으로 인해 죽어가고 그래서 그에 대한 연민은 더욱 애틋해지면서 영화는 어느새 러브스토리가 된다.

아름답지 못하지만 누구 못지않은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소외된 기인이나 기형아, 성전환자들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지녔던 이앤. 그녀는 그들을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과 사랑을 발굴한다. 그래서 그녀는 ‘강력하게 찍고 싶은 것’만을 찾아 ‘자신만의 사진’을 ‘모호하지 않게’ 담아냈다. 그녀는 ‘금기’를 넘어 정상적인 것들의 비정상적인 면을 드러냈으며 아름다움과 추함은 동시에 공존하는 것이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사실을 일반화시켰다.

그녀는 “기형인의 사진을 찍는 것은 내게 지독히 흥분 된 일이었다. 나는 그들을 숭배했고 아직도 그들 중 몇몇을 좋아한다. 그들은 나에게 수치와 경외가 교차하는 감정을 갖게 했다. 그들에게서 나는 전설 속의 신비로움을 느낀다. 마치 길을 막고 수수께끼에 답을 요구하는 동화 속 인물처럼. 세상 사람들은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기형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상처와 한 몸이다.

그리고 그 시련을 이미 초월하고 있다. 그들은 귀족이다”며 세상의 뒷골목에서 서성이던 그들을 천사로 받아들였다. ‘위대하고 슬픈 사진가’가 되고 싶었지만 세상 사람들은 ‘유령을 담는 사진가’, ‘기형인들의 사진가’, ‘퇴폐적 우아함을 지닌 착취적 나르시시스트’라고 불렀다. 결국 그녀는 “사진이란 비밀을 담아내는 비밀이다. 더 많이 보여줄수록 당신은 더욱 미궁에 빠진다.”는 자신의 말처럼 스스로 미궁으로 빠져 들어갔다.

어렵고 힘든 가운데 세상으로 유배 온 천사들에게 사랑을 주었던 그녀가 그들과 함께 하늘로 간 후 그제서야 세상은 그녀의 사진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1928 ~1999)의 공포 영화 ‘샤이닝’(The Shining, 1980)의 모티브가 된 이앤의 대표작 ‘쌍둥이’(Idential Twins, 1967)가 27만 달러(약 2억 5천 만 원)에 낙찰되면서 그녀의 사진가로서의 입지를 분명히 했다. 그녀의 영화와의 인연은 이것뿐만 아니다. 사실 그녀의 “디앤”이란 이름은 흑백 무성영화 ‘제7의 천국’( (Seventh Heaven, 1927)의 원작인 뮤지컬의 여주인공 이름을 따온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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