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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비엔날레의 미덕
야전서 실력으로 크는 작가들에 기회의 장 마련




조은정(미술평론가)





(우) 한국관 양해규 설치작품
(사진 아래 좌) 나탈리 뒤르버그의 작품
(사진 아래 우) 폴란드 국가관 위디즈코의 비디오 설치물


오전 10시에 문을 여는 베니스비엔날레의 국가관이 자리한 지아르디니공원 입구에는 비엔날레가 열릴 때마다 붉은색 박스의 매표소가 선다. 매표소 앞에는 해마다 기다란 줄이 하염없이 늘어져 있다. 비엔날레가 시작한지 올해로 53회이니 햇수로는 무려 104년이 지났건만 그들의 입장권 발행의 노하우는 축적되는 것이 아닌 성 싶다.

베니스비엔날레의 전시 장소는 크게 두 군데이다. 올해 77개국 90여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국가관이 자리한 지아르디니공원은 월요일이 휴관일이다. 감독의 시각에서 선택된 작가들에 의해 해당연도 비엔날레의 성격을 알려주는 특별전이 열리는 아르세날레는 목요일이 휴관일이다.

또 각 나라에서 전시공간을 마련하여 자국의 작가들을 소개하는 이벤트성의 전시 44개가 베니스 전역의 성당, 궁정, 학교 등에서 펼쳐지는데 김아타의 'On Air'도 이러한 전시의 일환이다. 애초에 자르디니공원 안에 국가관을 갖지 못하였던 나라에서 참여하던 방식이 이제는 본전시장 못지않은, 베니스비엔날레의 특성으로 자리하였다. 특히 국가관으로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미국의 부르스 나우만은 지아르디니공원과 거리가 있는 두 대학건물에서 동시에 전시를 하여 역량을 과시하였다.

국가관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은 전시 중 하나는 미술시장에서도 떠오르는 작가로 스웨덴 출신으로 독일에서 활동하는 나탈리 뒤르버그였다. 비디오와 설치, 클레이에니메이션, 소리 등으로 이루어진 그녀의 작품은 비속함, 성, 유머 등이 혼합된 것으로 그녀는 젊은 작가에게 수여하는 은사자상을 수상하였다.

국가관에서 한 작가만을 선별하여 전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진 가운데 폴란드의 우디즈코는 벽과 천장에 비디오를 투사하여 비오는 날 마치 아치창이 가득한 공간에 관객들을 초대한 듯한 인상적인 작품이었으며, 아르헨티나의 사라체노는 흰색의 공간을 검은 줄로 거미줄 같이 얽어 관객이 드나들게 함으로써 이번 비엔날레에서 몇 안 되는 인터렉티브아트의 즐거움을 선사하였다.

오노 요코, 죠지 앤 길버트 등 미술사적 의미의 작가들이 경외되는 분위기 속에서 이집트는 민속공예와 현대적 드로잉 작가를 절묘하게 결합하여 새로운 모뉴멘트 혹은 이집트로의 시간여행을 경험케 하는 인류학적인 면모로서 주목받았다. 우루과이아의 '비평적 풍경'도 외부의 공예적 미술과 팝의 형태를 띤 비평적 콜라주와 해학적인 비디오가 어우러져 ‘소액’으로도 성공적인 미술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한국관은 바다가 보이고, 자르디니공원의 기념물과도 같은 화장실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지어진 탓에 협소하며 창이 많은 건물이다. 양혜규는 이러한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여 작품으로 삼았는데 시각과 경험 그리고 소리와 바람과 냄새까지 작품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하지만 두어 국가관에서 느끼던 새집증후군의 페인트 냄새와 구분할 수 없는 조건이어서 작품관람 내내 호흡 조절에 많은 힘을 기울여야 했다.

“반짝인다고 해서 모두 금은 아니다.” 미술작품을 말함에 있어서도 황금같이 귀하게 적합한 이 말은 비록 런던에서 쓰여졌지만 베니스를 배경으로 한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말이다. 예수를 인정하지 않은 유대인들에게만 허용하였던 ‘천하에 가장 나쁜 직업’인 고리대금은 현대 세계 금융계가 유대계 인물들에 의해 좌우되게 하는 배경이 되었으며, 많은 문화재단이 유대인들에 의해 운영되고 주요작품을 콜력션하며 거래하는 주체자가 되게 하였다.

그리하여 특정 작가의 세계적인 성장의 이면에는 국가와 민족 그리고 자본이 동원되는 것이 현실임을 직시하게 된다.



(좌) 토마스 사라체노가 만든 설치공간 (우) 이집트관 내부


이러한 세계 미술시장에서 비엔날레 혹은 트리엔날레는 야전에서 실력으로 크는 작가들에게 청정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예년보다 금년도 베니스비엔날레는 이러한 비엔날레 특유의 성격을 유지한 미덕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베니스비엔날레 사상 최연소인 감독 다니엘 비른바움의 'Making World'라는 주제에 힘입은 바 크다.

“자비란 그 성격상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는 단비와도 같은 것으로 일종의 축복이다.”라고 했던 앞서 <베니스의 상인>의 한 구절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젊은 감독은 예술적 혹은 정치적 이상으로서 ‘세상 만들기’라는 주제를 남미, 아프리카 등 제3세계의 작가들을 규합하여 장소를 제공함으로써,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작품들 사이에서 인류학적인 접근과 정치적인 이슈를 자연스럽게 풀어내게 하였다.

그가 복지를 위하여 어느 국가보다 많은 세금을 내는 스웨덴 출신이며 개념적 미술에 강한 프랑크푸르트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연은 아닌 것이다. 양혜규나 구정아가 본전시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이들이 세계의 현재와 함께하는 개념을 진행하는 작가들인 때문이며, 이는 역으로 한국의 작가들이 세계에 나설 때 갖추어야 할 것에 대한 결핍요소를 확인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조선소의 두꺼운 벽과 붉은 벽돌 그리고 높은 천장이 그대로 살아 공간을 제공하는 아스레날레의 전시장에서 처음 관객을 맞는 것은 리우데자네이로에서 2004년에 사망한 리지아 파페의 금속 실을 천장에서 바닥으로 팽팽히 잡아 사각형을 이룬 <테이아>이다. 갑자기 막닥뜨린 어둠 속에서 만나는 순수한 빛은 예술의 아우라와도 같아 보인다.

현관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벽과 천장이 삐죽이 솟아 있는 전선처럼 보이는 러시아의 아냐 졸루드의 <대화>와는 다른 금속의 선인 것이다. 알렉산드라 미르의 <베네치아>는 동남아시아의 여느 관광지 사진에 베네치아라는 단어를 삽입한 엽서작품으로 바닥에 쌓아 올려진 박스 안의 엽서를 관객들이 집어감으로써 완성된다.

몇천 원씩이나 하는 베니스의 엽서를 무료로 준다는 사실에 흥분한 관객은 허리 굽혀 각기 다른 그림을 선별해가며 허겁지겁 양손에 들기 마련. 아무런 교훈을 찾지 말라는 현대미술에서 엽서를 분류하다가 순간 욕망의 노예가 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잠자는 지성과 감성에 각성을 요구하는 변치 않는 미술의 힘 덕분인 듯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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