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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논쟁'에 괴로운 신사임당
[이슈 & 컬쳐] 5만원권 화폐발행
표준 영정 원작 그린 이당의 제자와 유족-화폐 초상 그린 이종상 화백
"제자 사칭 명예 훼손 고발 검토" vs "자문받은 건 사실…"





김청환기자 chk@hk.co.kr





(사진 아래 좌측) 일랑 이종상 화백 (우측) 수당 김종국 화백


23일 시중에 나온 5만 원권 화폐가 벌어짐 현상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미술계에서는 화폐 속 신사임당 초상을 두고 때아닌 ‘제자 논쟁’이 뜨겁다. 신사임당 표준영정의 원작을 그린 이당 김은호(1892-1979)의 제자와 후손이 화폐 초상을 그린 이종상(71) 서울대 미대 명예교수가 제자를 사칭한다며 명예훼손 고발을 검토하고 있는 것.

서지문 고려대 영문과 교수는 지난 3월 한 신문 칼럼에 5만 원권 신사임당 초상이 “텔레비전 사극에 나오는 ‘동네아낙’이나 주막집 주모 같다”고 썼다.

일랑 이종상 화백은 제자를 사칭한 적이 없으며 이당 생전에 초상 기법에 대한 여러 자문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며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또 예술성 훼손 시비에 대해서는 대응할만한 가치가 없다는 반응이다.

당신은 제자 입니까?

이당 제자 모임인 ‘후소회(後素會)’와 유가족은 이 화백이 자신들과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라며 이화백과 이당의 관계 가능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학교 스승인 월전이 영정기법을 가르쳐주지 않은 채 타교로 옮겨 60년 4.19 이전부터 이당의 집을 종종 찾아 영정기법을 자문했다”는 이 화백의 주장에 대해 수당 김종국(67) 화백은 “전혀 맞지 않는 거짓말”이라며 “58년부터 10년 동안 매일 해가 떠서 질 때까지 종로 와룡동 이당의 집에 있었지만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화백은 언론 인터뷰에서 “30여명의 나이든 화가 지망생들이 대청에 무릎을 꿇고 이당이 넘겨준 그림본을 따라 그리고 있었다. 화선지 두루마리를 기둥에 매달아 놓고 화조와 병풍, 사군자를 모방하고 있었다”며 이당의 집을 묘사했다.

아들 김성원(65·건축업)씨는 “와룡동 집 대청에서 30여명이 모여 그림을 그린적이 없었고, 사랑채에 2~3명이 모여 당시 화선지가 귀해 누런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며 “누님과 어머니를 비롯해 이 화백을 본 사람이 가족 중에 없으며 아버지 장례식에서조차 보지 못한 분”이라고 말했다.

이 화백은 전시회 도록이나 이력서 등에 이당을 사사했다고 주장한 바 없으며 직계 스승의 눈마저 피해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영정기법을 배우러 종종 방문했기 때문에 가족이나 문하생들과 알고 지낼 기회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 화백은 “당시 24살에 이미 국전 특선 작가가 된 후 방문해 이당은 나를 작가수준으로 대우했다”며 “학교의 눈마저 피해 아무도 없는 늦은 시간에 이당을 방문해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영정기법 등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 화백은 월전 장우성(1912~2005)의 제자이며 운보 김기창(1913~2001), 현초 이유태(1916~99) 등을 사사했다. 이당은 월전, 운보, 현초의 스승이다. 이 화백은 이당 제자의 제자인 셈. 계보상 손자격이다.

이 화백은 이어 “후소회로 따지자면 나는 이당의 제자가 아니다”라며 “논문의 주석을 달듯이 양심적으로 그분의 자문을 받은 것을 밝힌 것인데 내가 이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이 화백은 또 “작품활동과 해외 전시회 등으로 직속 스승 조문을 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영전을 고쳐야 한다는 스승 소원을 풀어드린 것”이라는 인터뷰 역시 이당 후손과 제자들을 흥분시켰다. 자존심 강한 대가가 후학에게 자신의 작품을 고쳐달라고 할 리가 없다는 것. 김성원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집에서 병상에 있었던 적이 없는데 그림을 고쳐달라고 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화백은 “이당이 죽기 전에 건강을 회복하면 고쳐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라며 “친자확인 소송, 재산 싸움 식의 시비로는 화단의 발전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원작 예술성 훼손됐나?

이당 원작의 예술성 격하 논란 역시 대립의 단계에서 해소의 단계로 전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후소회’나 유가족의 반발에는 신사임당 표준영정을 놔두고 새로 그린 초상을 화폐 도안으로 사용한 것에 대한 반발심리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의 신사임당 표준영정은 이당이 그린 초상을 바탕으로 1965년 최옥자 현 세종대 명예총장을 중심으로 다시 그린 것을 정부가 공인한 것이다.

수당 김종국(69) 화백은 “공인 받은 사임당 영정을 고증했다고 다시 그리면 공인한 의미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김성원 씨는 “화풍도 아버지가 그린 전통화법이 전혀 아니고,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그린 것이어서 모두 웃었다”고 말했다. 이당의 제자인 아천 김영철(67) 화백은 “채색기법이나 필법이 이당의 것과 하나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화백은 화폐 초상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비판이라는 입장이다.

화폐 초상은 도용방지를 위해 좌우 대칭에 맞지 않게 그리는 것이 원칙이다. 이 화백이 정면 표준영정을 옆으로 틀어 초상을 그린 이유다. 머리모양과 옷주름 등은 다시 그렸다. 조선말 도입된 음영법을 과도하게 적용해 몸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머리모양과 옷 모양은 후에 출토된 당시 복식 등을 기초로 한 화폐도안 자문위원회의 고증을 토대로 재구성했다. 눈은 조선말 도입된 음영법에 의해 동공과 눈동자를 한가지 색으로 그린 것을 전통기법에 맞게 구분해 다시 그렸다. 유기질 채색으로 자외선에 노출돼 원래의 색감이 날아간 입술을 무기질 채색으로 더 붉게 칠했다.

이정 장규봉(61·전 이당기념관 관장) 화백은 23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아교와 명반을 혼합해서 특유의 노하우로 아교포수(阿膠泡水; 종이아교끓인 물을 바르는 것)를 했던 이당과 이 화백의 증언이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이 화백은 한 신문 인터뷰에서 “아교가 굳으면 그 위에 명반을 씌운다. 이런 과정을 7~8개월 배워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종상 화백은 24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아교포수를 할 때는 손으로 찍어서 쩍쩍 달라붙는 것이 느껴질 정도까지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이당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받았다”며 “이당으로부터 가르침을 바탕으로 7~8개월동안 연구했다는 뜻이고, 아교포수 방법은 때에 따라 다르다”고 말했다.

이 화백은 “이당의 율곡 이이 영정을 화폐 초상으로 만들 당시 이당이 생존해 있었는데 자문을 구하지 않았겠나”라고도 했다.

비전문가가 그렸다?

서지문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지난 3월 한 신문 칼럼에서 5만 원권 초상을 두고 “인품과 아량과 재능과 덕성이 저절로 배어나오는, 이상화된 모든 한국여성의 모습이 전혀 아니라고 생각된다”며 “이렇다 할 개성이나 매력이 없는, 텔레비전 사극에 ‘동네아낙’이나 주막집 주모 역으로 나오면 알맞을 여성의 얼굴”이라고 비하했다.

이 화백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갖고, 참 대단한 분”이라는 정도의 완곡어법을 동원했으나 정면 대응하지 않았다.

서지문 교수는 “인물화가 전문가에 의뢰했으면 이보다 나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썼다. 이 화백은 채색·수묵·인물·산수화 등 여러 종류의 작업을 하기는 하지만 이미 1977년 바뀐 율곡 이이 화폐 초상을 그린바 있다. 5만 원권 화폐의 후보로 거론돼왔던 광개토 대왕, 장보고, 우륵, 원효대사 등의 표준영정을 그렸다.

이 화백은 국전 특선·추천작가·심사위원을 했다. 그는 서울대 미대 학장을 지냈으며 현재 명예교수다. 예술원 회원이기도 하다.

서 교수는 칼럼에서 “여성화가에게 의뢰했다면 이보다 나은 결과가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라며 “공모를 해서 여러 개의 응모작 가운데 선정했으면 좋았겠다”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이 화백은 “모나리자는 남자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렸지만, 모나리자의 미소가 엉큼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으니”라며 “공모를 하면 보통 원로작가들은 잘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골은 깊었다. 이성원 씨는 “서지문 교수의 혹평을 반박하려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고 이종상 화백은 “짧게 배워도 은사로 공경하는 게 제자의 도리 아닌가”라고 말했다.

지하에 있는 이당이 걸어나와야 할 판이다. 화폐 속 신사임당인들 평안할까.

이당(以堂) 김은호는?





1892~1979. 인천 관교동 출생. 심전 안중식과 소림 조석진의 제자로 수묵화와 채색화를 배웠다. 조선말 어진화가를 지내며 순종 황제 영정사진을 그렸다. 인물화의 거두. 인물화 외에도 화조, 산수화 등을 그렸다.

서화협회와 쌍벽을 이룬 이묵회를 창설. 후학들의 모임인 후소회는 공자의 <논어> 중에 나오는 '회사후소(繪事後素)'에서 유래. '회사후소'는 그림은 먼저 바탕을 손질한 후에 채색한다는 뜻.

후학 양성에도 매진했으나 여성부인회가 미나미 총독에 국방헌금을 내는 장면을 그린 '금차봉납도', 송병준을 비롯한 일제시대 관리 초상화, 조선총독부 미전인 '선전' 입상, 창씨개명 등으로 친일·근대 채색화의 왜색 논란을 빚기도 했다.

1918년 조선서화협회 참가,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신문을 배포하다 옥고를 치른 경력 등으로 상반된 평가를 받기도 한다.

주요작품 : 충무공 이순신 초상, 춘향 초상, 미인승무도, 간성, 향로, 군리도, 수하선인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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