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미술이야기] 영화 와 앤드류 와이어스와이어스 대표작 '크리스티나의 세계'서 영감 얻어

1-'크리스티나 오슬론' 1947
2-'크리스티나의 세계' 1948
3-영화 '타이드랜드'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그림이 영화의 모티프가 되어 한편의 환상적인 동화같은 영화로 다시 태어난다면. 올 연초 국내에서도 개봉된 타이드랜드(Tide Land,2005년작)가 바로 그런 영화이다.

팀 버튼, 리들리 스코트와 함께 미국 영화계에서 최고의 비주얼리스트로 꼽히고 있는 테리 길리엄이 감독한 한 소녀의 상상과 그 상상에 따른 기괴하고 요상한 환상여행이 완성되었다.

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것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이지만 사실 환상적인 유아용 동화라기보다는 다소 선정적이기도 하고 잔혹하기도 한 성인동화에 가까운 영화이다. 영화에서 11살짜리 어린 소녀 질라이자 로즈로 분한 조델 퍼랜드는 영화의 내용과는 달리 귀여운 외모와 밀도있는 연기력으로 아역을 뛰어넘어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중심을 이룬다.

그녀는 약물에 중독된 히피 엄마,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들과 함께 자라난 그녀는 제대로 된 가정교육은 커녕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 아빠가 마약을 투여할 수 있도록 준비해주고 이를 바라보아야 하는 환경에서 자라났다. 공교육이 아이들을 망친다는 아버지의 믿음 때문에 학교는 문턱에도 가지 못 한 채 마약에 취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리광을 받아주어야 하는 기구한 운명의 소녀다.

그래서 그녀는 마약이 없이도 현실과 동화의 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4 차원적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가 도서관에서 훔쳐온 동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통해 더욱 더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구분하는 경계를 허물어버린다. 그런 나머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슬퍼하기 보다는 어머니의 초콜릿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기뻐한다.

이런 점에서 영화는 현실과 상당히 뒤틀려 있고 다분히 잔혹하고 역설적인 영화이다. 따라서 환상적인 판타지 영화라는 선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판타지 이상의 예술영화의 장르에 속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머니가 죽고 난 후 소녀와 아버지는 할머니가 살던 집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그러나 그곳에서 아버지마저 약물중독으로 세상을 떠나고 사실상 소녀는 고아가 되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라도 무섭거나 외롭지 않다.

왜냐하면 머리만 남은 인형들이 그녀의 친구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머리만 남은 조금은 기괴한 분위기의 친구들과 친구가 되어 함께 즐거운 판타지를 즐긴다. 그러던 중 할머니 집 근처에 살고 있던 이상한 남매를 만나게 되고 소녀는 인위적인 것에 불과한 인형친구들을 버리고 외로움에서 탈출하고자 그 새로운 친구들에게 다가선다.

이 영화에서 소녀는 정말로 잔혹한 일들을 겪는다. 나이와 걸맞지 않게 어렵고 힘든 일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치지만 어누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따라서 이 영화는 잔혹한 환타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녀가 겪는 그 잔혹한 사실들이 아무렇지 않게 표현된다는 사실은 보는 이들을 더욱 당혹스럽게 한다.

그 외로운 소녀는 누구하나 의지하고 교감할 수 없는 상황에서 머리만 남은 인형의 머리를 친구삼아 그것들과 이야기하고 정을 나눈다. 그후 진짜 사람친구들을 만나지만 그들은 뭔가 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나 외로웠던 소녀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과 친하게 지내려 애를 쓴다.

그래서 그녀는 어른들의 냉혹한 세계로부터 도망 나와 자신의 견고한 성속에서 자신을 즐기고 보호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렇게 환상과 잔혹함과 비정함이 거의 학대의 수준에 달하는 질라이자의 삶은 몽환적인 마법의 세계로 그녀를 이끌어 가는 동시에 관객들에게 함께 갈 것을 권한다.

이 영화가 시작될 무렵의 광경은 매우 눈에 익다. 왜냐하면 미국의 대표적인 화가 앤드루 뉴웰 와이어스(Andrew Newell Wyeth, 1917~2009)의 <크리스티나의 세계>(Christina's World, 1948년작, 패널에 템페라, 82X121cm, 뉴욕 현대미술관(MoMA)소장)와 매우 유사한 때문이다.

감독인 테리 길리엄이 이 영화를 감독하기로 결정하고 이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첫 장면을 구상했다고 할 만큼 흡사한 구도를 지닌 이 그림은 와이어스의 대표작이자 미국회화의 정수인 동시에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잔디위에 앉아있는 다소 뒤틀린 듯 부정확하게 앉아있는 인물은 젊어서 세상을 떠난 와이어스의 친구이자 아내인 크리스티나 오슬론이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쓸 수 없었던 그녀는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팔로 힘겹게 몸을 지탱한 채 멀리 자신의 집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갈 수 없는 곳을 꼭 가야하겠다는 듯이 말이다. 마치 아름다운 전원생활의 한 장면 같지만 사실 이 그림에는 고독과 갈망, 불안이 감싸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 자리한 집은 영화 속에서 할머니의 집으로 그려지지만 실은 30여 년 간 사용해온 아이어스의 화실이다.

다가가려하지만 갈 수 없고 가지려하지만 가질 수 없는 인간의 안타까운 욕망이 처철하게 느껴지는 이 작품은 영화 타이드랜드가 보여주고자 하는 부조리한 현실과 그 현실로부터 피하고자 택한 더욱 더 부조리한 세계를 역설적으로 증거 한다.

가장 미국적인 화가중 하나로 추앙받는 와이어스는 미국 펜실베니아의 채드포드(Chadds Ford)에서 태어났다. 평생 불길한 기운이 가득 찬 풍경화의 바탕이 되어준 그의 고향은 신체가 허약했던 자신과 몸이 불편했던 아내로 인해 더욱 가라앉은 분위기의 침울한 화면으로 일관하도록 했다.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였던 아버지 뉴웰 컨버스 와이어스(Newell Convers Wyeth)로부터 선천적으로 그림재주를 물려받았지만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집에서 자습해야만 했다. 1937년 뉴욕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어 성공한 그는 사진처럼 정확하고 세밀한 묘사를 통해 섬뜩할 만큼 정밀하게 사물과 대상을 포착해내었다.

그는 미국의 농촌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주제로 한 인물화와 풍경화를 전문으로 그렸다. 그의 이런 화풍을 미술사에서는 미국지방주의(Regionalism)라 한다.

하지만 때론 그의 섬세한 감수성과 관찰력을 바탕으로 대상의 성격과 체취, 영혼까지 느끼게 하는 놀라운 묘사력을 발휘했는데 어떤 평론가들은 와이어스는 사실주의자일 뿐 예술가는 아니라는 혹평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 초 한국에서도 많은 화가들이 그의 그림에 심취해서 극사실적인 세계로 나아가기도 했다.

그의 회화가 주는 불편함과 괴이한 교교함은 영화 타이드랜드의 그것과 매우 흡사한 분위기를 발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와 그림은 일란성 쌍둥이인지도 모를 일이다.



글/ 정준모(미술비평, 문화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