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미술이야기] 영화 와 틴토레토의 예수 중심으로 악과 선 순환구조 영화의 전개와 정확히 일치

틴토레토의‘그리스도의 책형’

미국 영화감독이면서도 할리우드 영화와는 조금 거리를 두고 작업해 오고 있는 우디 앨런(Woody Allen,1935~ )의 영화는 언제나 색다르고 위트가 있다. 아마도 이것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편집광적인 방식이 남다른 탓 일게다.

특히 그의 영화는 거침없는 풍자와 세상을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 정신 차릴 수 없도록 빠른 배우들의 대사와 엉뚱하고 기발한 상황들을 통해 매우 다양한 이야기와 장르를 넘나들고 있지만 그의 영화에서 일관된 것은 “사랑과 예술에 빠진 모든 사람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영화 <에브리원 세이즈 아이 러브 유>(Everyone says l Love you, 1996년작, 이하 에브리원)에서 우디 앨런 영화의 복잡하고 산만한 구성과 궤를 같이하지만 조금은 독특한 구조를 통해 그의 사랑과 예술에 대한 태도를 드러낸다.

영화는 스카일라(드류 배리모어)의 여동생 주나 DJ (나타샤 리온)의 내레이션으로 전개된다. 뉴욕의 부자동네 맨해튼 5번가에 사는 주나 DJ네 가족은 일단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름하여 ‘콩가루 집안’이다. 주나 DJ의 부모는 조(우디 알렌)와 스테피(골디 혼)이다.

하지만 엄마 스테피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아버지 친구 밥(알렌 알다)과 결혼했지만 전 남편 조와 현재의 남편 밥과 여전히 친구사이이다. 그래서 파리에 살고 있는 조는 애인과 결별하자 뉴욕의 스테피 집을 찾아와 자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정도로 스스럼없다.

여기에 걸핏하면 집을 나가는 언젠가는 타임스퀘어에 수건 하나만 두르고 나갔던 가벼운 치매 증세를 보이는 할아버지와 이복형제 그리고 가정부인지 요리사인지 모르는 아주머니는 이 집안 최고 상전이다. 여기에 계부와 의붓오빠는 각각 민주당원과 공화당원이 되어 집안에서 정치적 입장차이로 소리소리 지르며 다툰다.

엄마는 전 남편의 친구인 주나의 계부가 벌어오는 돈으로 사회봉사 활동에 여념이 없다. 영화에 출연하는 인물들이 이 정도면 질릴 지경인데 여기에 공주병에 걸린 철없는 언니, 잘생긴 남자에게 눈을 빼앗기고 딴 사람의 정신과 치료를 훔쳐보는 등 호기심 많은 주나와 또래의 의붓언니 둘까지 버라이어티한 캐릭터들이 영화에서 내내 좌충우돌한다.

그 좌충우돌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더욱 기가 차다. 전 남편 친구와 결혼한 스테피는 인권차원에서 교도소에서도 프랑스 음식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가석방 청원을 내 흉악범 페리(팀 로스)를 출소시킨다. 그리고 그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지만 정작 자기 딸 스카일라가 페리와 사랑에 빠지자 난리가 난다.

스카일라는 페리의 터프한 겉모습에 반해 영화의 첫 장면에서 분수를 배경으로 멋지게 를 불러주던 약혼자 홀덴(에드워드 노튼)의 곁을 떠나지만 제 버릇 개 못주는 페리가 다시 강도짓을 하자 곧장 홀덴에게 돌아간다.

또 아버지 조는 주나 DJ의 도움으로 베니스에서 반(줄리아 로버츠)의 사랑을 얻지만, 조는 반을 붙잡아두기 위해 화가 틴토레토(Tintoretto, 1518~ 1594)를 공부하고 고흐를 연구해서 연일 거짓말을 해야만 한다. 그런 조에 반해 반은 이혼하고 그와 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상적인 상대를 만나는 꿈을 이루자 너무 허무하다면 다시 조를 버리고 떠난다. 정말 산만하고 시끄러운 영화이다. 하지만 이런 북새통을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통해 그 혼돈에서 잠시 벗어날 기회를 준다. 베니스에서 평생을 그려온 이상적인 상대 조를 만나 그 사랑을 노래한 줄리아 로버츠의 ,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가 귀신친구들과 함께 불러주는 ,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추억의 센 강변에서 골디 혼이 노래 부르며 춤을 추던 등의 선율은 복고풍 뮤지컬 분위기로 묘한 향수를 자극한다.

이것 또한 이 영화의 매력이다. 게다가 자유롭고 여유롭고 낭만적인 뉴요커가 아닌 우리와 다를 것 없는 번잡하고 시끄럽고 떠들고 다투며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평범한 미국의 중산층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위) 영화‘에브리원 세이즈 아이 러브 유’한 장면 (아래) 틴토렌토 ‘낙원’
(위) 영화'에브리원 세이즈 아이 러브 유'한 장면 (아래) 틴토렌토 '낙원'

영화는 이들의 삶을 1년이라는 시간의 프레임 속에 담아내면서 이들의 삶이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돌고 도는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래서 영화는 새로운 삶이 움트는 뉴욕의 봄에서 여름에는 어른들을 위한 디즈니랜드 베니스로, 다시 가을에는 뉴욕으로 그리고 크리스마스는 파리에서 파티를 즐길 즈음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온다.

이렇게 우디 앨런은 1년이라는 틀과 가정이라는 공간 속에 천차만별인 세대와 인물들을 묶어내면서 그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고민과 갈등을 다소 과정해서 보여준다. 마치 요즘 TV에서 유행하는 꾸밈없는 리얼 토크쇼처럼 말이다.

이런 구조는 영화에 등장하는 틴토레토의 <그리스도의 책형>(Crucifixion, 1565, 유화, 536x1224cm, Scuola Grande di San Rocco, Venice)에서 빌어왔다. 조와 반을 이어지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 작품은 고통과 고뇌 그리고 회개와 행복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는 중앙의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악과 선이 순환하는 구조를 지닌다.

이는 바로 영화의 전개가 사계절을 통해 사건들이 시간과 장소를 바꾸어 가면서 단편적인 개인들의 에피소드를 하나의 틀 속에 담아내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베니스에서 염색장인(tintore)의 아들로 태어난 작은 염색장인 즉 틴토레토라고 불렸던 그의 본명은 야코포 로부스티(Jacopo Robusti)이다. 베니스 화파를 대표하는 그는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1488-90~1576)를 사사했다.

하지만 1545~46년간에 로마를 여행하면서 미켈란젤로와 마니에리스트들의 그림에서 많은 감화를 받으면서 전통적인 베네치아 풍인 화려한 색채와 마니에리스모의 형식과 구도를 조합한 화풍을 완성한다.

따라서 그의 화풍은 때로는 과장되고 부자연스러운 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미켈란젤로의 데생과 티치아노의 색채를 근간으로 자의적인 빛과 그림자, 그리고 과장된 단축법을 써서 극적이고도 순간적인 효과를 화면에 담아냈다. 그후 점점 그의 회화는 공간 효과와 극적 효과가 더욱 뚜렷해져갔다.

그리하여 베네치아 화파를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잡으면서 베니스 일대에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는데 특히 총독의 집무실이 있었던 두칼레 궁전에 약 700여명이 등장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벽화인 <낙원>(Paradise, 1588~ 90, 유화, 914x2255cm, Palazzo Ducale, Venice)를 남기기도 했다.

빛과 색채의 극적인 효과, 왜곡된 공간표현 등은 16세기 후반 마니에리스모에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영화 에브리원을 이끌어 가는 축이 되어주기도 한다. 이런 때문에 아마도 명작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 일게다.



글/ 정준모(미술비평, 문화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