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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눈으로만 본다고? 천만에!
시각장애인 위한 촉각미술, 순수미술·공공미술로 영토 확장




김청환기자 chk@hk.co.kr





1-서울 덕수궁 돌담길'아트 벤치'. 최병훈
2-서울 덕수궁 돌담길'아트 벤치'. 최병훈.


시각을 전제로만 창작하고 감상하던 미술의 양상이 변화하고 있다. 시각 외에 오감 중에서도 촉각을 염두에 둔 창작을 하고, 감상자도 촉각을 더해 미술을 즐기는 촉각예술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촉각예술의 활성화가 미술 창작과 수용에 어느 정도까지의 변화를 불러일으킬지 주목된다.

촉각미술의 회귀는 미술의 본래적 기능의 회복이라는 원인 분석이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의 벽화가 벽면의 질감을 염두에 둔 것과 같이 본래의 미술은 간접적·직접적 촉각성을 원형으로 해왔다는 것이다. 중세시대 교회권력이 균형과 조형감각을 성화 등을 통해 강조하면서 시각성을 우선시해 미술의 본래 기능인 촉각성이 부자연스럽게 배제됐다는 것이다. 갤러리(화랑)가 미술의 중심에 서 “만지지 말 것”을 강조하면서 미술의 원초적 기능인 촉각의 배제가 더욱 강하게 이뤄져 왔다는 분석도 있다.

원초적 인간의 모습을 떠올리면 인간의 감각인지에서 촉각의 배제가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것인지가 더 명확해진다. 모태의 양수 속에서 인간은 시각이 아닌 촉각으로 외부를 인식하기 때문이다. 문자의 발명과 함께 한 문명의 발전 속에서 시각 중심의 미술 양식은 더욱 강화했다.

영향력을 놓고는 전망이 엇갈린다. 초고속·광속의 세상에서 인지에 좀더 시간이 걸리는 ‘느림’의 감각인 촉각에 대한 원초적 욕구가 더욱 강하게 발현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간접적인 촉각미술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물성미술과 단색미술이 미술의 한 사조였지만 색감과 구도를 강조하는 현대미술로 넘어오면서 촉각미술은 이미 한물 간 것이라는 견해가 맞선다.

촉각 미술의 실제적 생명력을 놓고도 반론이 만만치 않다. 갤러리가 미술의 창작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변치 않는 한 관람과 동시에 작품훼손 가능성이 높은 촉각미술이 주류가 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문화 후진국일수록 미술관에 가는 경험 자체를 낯설어 하는데 촉각을 통한 감상의 방법은 더욱 낯설다는 것이다. 촉각 미술이 공공예술에서 활발하지만 갤러리 미술에서 드문 것 역시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분명한 것은 주류든 비주류든 우리에게 촉각 미술의 자리가 부자연스러웠다는 것이다. 예술의 한 양식으로 공존해온 서구에 반해 우리 촉각 미술은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만 인식돼왔던 게 사실이다. 이미지 과잉의 시대에 원초적 감각의 회복에 대한 욕구는 엄존한다. 시각 이미지 수용에 지겨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은 이런 예상을 가능하게 한다.

박천남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은 “시각예술의 기능이나 어법도 시대적인 변화와 관객의 수용 욕구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에 미술에 가촉성이 들어가는 것은 좀 더 많은 수용 방법을 찾는 수용자의 선택이라 볼 수 있다”며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영상과 대등하게 갈 수 없는 수단의 한계 때문에 시각예술이 경험을 강조하고 관객의 개입을 유도하는 적극적인 작업을 시도하는 데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실장은 이어 “스스로 깜빡 하고 있던 가치를 끄집어 내고 전달하는 면에서 시각적 기재보다 촉각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채택하는 작가들도 생겨나고 있다”며 “피카소가 1910년 이후 종합적 입체주의 시기에 종이를 찢어서 붙이는 방식으로 미술을 한 것이나, 솔거의 그림에 참새가 부딪혔다는 데서 보여지듯이 가촉성은 미술사에서 전통 양식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순수 미술에 뛰어든 촉각

순수예술의 물성미술에 연원이 있는 촉각 미술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나광호(29) 작가가 1일부터 서울 대림동 갤러리AG에서 선보인 ‘시각·촉각전’출품작들이 대표적이다. 촉각성을 시각성 이상으로 강조한 작품들은 직접 만져보며 감상 할 수 있게 했다.

평면의 화폭에 눈에 띄는 것은 강렬한 마티에르. 선과 색이 아니다. 물감이 그대로 질감을 드러낸다. 튀어나왔다 들어가며 굽이친다. 흑백을 쓴 작품에서는 그림의 질감이 더 두드러져 입체감을 살린다. 한가지 색을 써 물감을 덮고 있는 부드럽고 연한 표면의 질감만 강조한 작품도 있다.

선과 구도가 있는 작품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그린 조형미가 떨어지는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해 균형과 구도가 주는 조형미를 배제한 때문. 색감이 있지만 실크스크린(Filling)에 담아 부드러운 화폭의 질감과 거친 조형의 대비에 더 주목하게 한다.

나 작가는 “도심에서 길을 잃었는데 노랫소리를 기억해뒀다 다시 돌아가는 경험을 한 뒤 평면미술의 시각성을 뛰어넘는 작업을 고민하게 됐다”며 “단색조 회화나 물성미술이 퇴조기를 겪었지만 장르와 경계가 파괴되는 혼융의 예술 흐름상 촉각 미술도 기성미술과 공존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시각예술이 변화에 직면해 있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김창영 작가는 모래를 오브제로 직접적인 촉각은 아니지만 시각적 촉감이 드러나는 작품을 여럿 발표해왔다. 김강용 작가도 주로 벽돌을 그리며 질감을 살릴 뿐 아니라 모래를 활용해 촉각의 감상이 도드라져 보이는 작품을 발표했다. 한국화가인 정진용 작가는 유리구슬을 써 간접적 촉감을 시각미술을 뛰어넘어 확장시키는 작업을 했다.

평면미술 뿐 아니다. 설치미술에서도 시각의 한계를 뛰어넘는 촉각을 동원한 미술이 창작자와 감상자 사이 교감의 통로를 확장시키고 있다. 김현준 작가는 최근 한 기획전에 내놓은 ‘푸른 방’이란 설치 작품의 원형 표면에 물침대를 놓아 자연의 한 가운데 있는 듯한 감각을 소리와 함께 관람객이 직접 촉감으로 느끼도록 했다.

김현준 작가는 “푸른방이라면 보통 창공의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비둘기가 비상하는 느낌을 연상시키고 파문이 퍼지는 느낌을 관람객이 직접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물침대를 썼다”며 “촉각은 창작자와 수용자의 쌍방통행을 더욱 강화시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3-Incarnation. 나광호. 2009
4-lending Field. 나광호. 2009
5-lending Field. 나광호. 2009
6-ㄴ'을 주제로 한 유알아트의 촉각그림


촉각미술, 시각장애인에서 일반인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촉각미술이 외연을 넓혀 일반인에게까지 호소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다. 10여권의 촉각미술 그림책을 발표해 온 ‘유알아트’가 4일부터 서울숲 커뮤니티센터에서 벌이고 있는 ‘감각재생전’이 그것.

김영근(26)·김예영(24·여)씨가 내놓은 ‘산책가’가 눈의 띈다. 이 작품은 어린이가 만든 조각작품의 각 부분을 만지면 그에 따라 다른 영상과 소리가 나오는 촉각 중심의 미디어아트다.

‘산책가’의 외형을 구성하고 있는 모형미술은 중학생인 황영광(15)군이 만든 것이다. 작가들은 시각장애인인 황 군이 병상에 있는 누나에게 바깥 풍경을 설명해주기 위해 만든 조각에 센서를 부착하고 이에 맞는 영상과 소리를 제작해 사실감을 높였다.

지하철을 연상하며 황 군이 만들고 칠한 우유팩에 손을 집어 넣으면 지하철 영상과 소리, 내레이션이 나온다. 나무의 질감을 연상시키는 원형 촉수를 만지면 숲길 영상과 소리가 화면에 등장하는 식이다.

‘감각재생전’에는 이 외에도 문자를 점자 뿐 아닌 만지는 그림으로 표현한 촉각그림과 설치미술 작품들이 전시돼있다.

김지나 ‘빛을 만지는 아이들’소장은 “매끄럽고 둥그런 컵을 만질 때 눈이 전달하는 감각과 시각적 형상의 차이가 있듯이 시각은 외부자극을 자기주관으로 경험하고 해석하는 것을 때로는 왜곡시키기도 한다”며 “촉각미술은 인식의 획일화와 집단화를 뛰어넘어 독립적인 문화인식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이어 “감각 회복은 자아에서 관계로 나아가 타인과의 공존과 균형을 가능하게 해 문화감각을 회복시키는 역할까지 할 수 있다”며 “시각 외의 감각을 통한 인지를 중세시대부터 무시하도록 강요당해 온데서 비롯한 가치편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촉각, 공공예술에서 더욱 각광

공공예술에서 촉각은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공공예술은 시각적 아름다움 뿐 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회복과 증진에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원초적 감각인 촉각을 통한 예술을 매개로 한 교감의 효용성이 부각되는 이유다.

촉각을 활용한 서울디자인재단 도시갤러리 사업단의 공공예술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보기에 아름다울 뿐 아니라 앉으면서 촉감으로 정서를 얻게 되는 ‘아트 퍼니처’다.

서울 덕수궁길에 인근에 설치된 최병훈 작가의 ‘아트 벤치’는 부드러운 돌 질감이나 나무 질감을 사용했다. 서울 정동극장 앞에 설치된 ‘아트 벤치’는 직각의 곡선으로 선율을 표현했으며 철제 재질로 만들어져 음의 높낮이를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했다.

도시갤러리 사업단이 서울 효자동 맹학교 벽면에 설치한 색색의 점자와 학생들의 손 부조는 시각장애인 뿐 아니라 비시각장애인도 미술을 촉각으로 느낄 수 있게 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 들어간 손의 주인공은 맹학교 학생들이다. 손으로 만지며 촉각을 이용해야만 아이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 수 있는 촉각 예술이다.

박삼철 서울디자인재단 도시갤러리 팀장은 “만지고 교감하는 미술이 추세라고 볼 수 있지만 본래 미술에서 만지는 것은 기본적 기능 가운데 하나였다”며 “미술 본연의 촉각성 회복으로 시각과 촉각의 중요성이 모두 강조되는 미술형태의 양립 가능성이 보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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