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 조각-공중누각(空中樓閣) 전강영민 등 6人6色 허공에 집짓기

1-강영민, Reconstruction, 디지털프린트, 가변설치
2-박선기, An Aggregate, 숯, 나일론실, 가변설치
3-김세일, Untouchable, 철선, 가변설치
4-전강옥, 낚싯줄 위의 돌, 낚싯줄, 돌, 가변설치

소마미술관에서 열리는 <드로잉조각-공중누각전>(7.9-8.30)에서 참여 작가 강영민, 김세일, 박선기, 장연순, 전강옥, 함연주는 각기 저만의 방법으로 허공에다 집을 짓는다. 여기서 집은 말할 것도 없이 집 자체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일종의 은유적 표현이다.

즉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에다 비유했는데, 창작주체의 자기표현 역시 언어의 한 형식이며, 그 형식을 집에다 빗대어 표현해본 것이다. 여하튼 이처럼 집(조각)을 허공에다 띄울 수 있게 된 것은 드로잉이라는 보다 유연한 방법 탓에 가능해진 일이다.

전통적으로 조각은 양감(속이 꽉 찬 덩어리)과 물성(재료의 물질적인 성질)에 그 바탕을 두고 있으며, 따라서 그 물질 덩어리를 공중에다 띄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이처럼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양감이 없는 조각, 물질감이 희박한 조각, 가급적 실체감이 느껴지지 않는 조각을 통해서 실현할 수 있으며, 이는 그대로 이번 전시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특징은 전통적인 여백의 의미와 통한다. 여기서 여백은 실질적이고 공간적인 개념을 뜻하기도 하고,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이고 비공간적이고 암시적인 개념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처 그 무엇인 것으로 규정되기 이전의 비결정성의 공간이며, 열려진 공간개념을 그 이면에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표면적으로 감지되는 희박한 실체감이 오히려 존재감을 더 강화시켜준다는 느낌이다.

세부를 보면, 강영민은 이란 제목 그대로 재구성된 풍경을 보여준다. 고가도로와 같은 도심의 한 정경을 찍은 사진을 확대 출력한 프린트를 가늘게 잘라 수많은 띠를 만든다(풍경을 픽셀 단위로 분절하는). 그리고 공간에다 사진 속 정경과 유사한 구조를 만들고, 그 구조물 위에다 잘라낸 띠를 붙이거나 매달아 일종의 유사풍경, 가짜풍경, 재편집된 풍경을 연출한다.

그리고 김세일은 실만큼이나 가녀린 철선을 엮어나가는 방법과 과정을 통해서 무한정 부풀려지는 망 구조물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이란 제목처럼 만질 수 없는 영역을 포함하고 있다. 즉 손이 구조물 안쪽에까지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만질 수 없다는 것은 이보다는 더 본질적인 의미를 암시하는데, 작품에서 어떤 실체감이 느껴지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즉 없음과 있음의 불투명한 경계를 표현한 것이다.

한편으로 박선기는 낚싯줄에 숯을 묶어 천장에 매다는 방법으로 어떤 형태를 재구성한다. 이렇게 재구성된 작품은 란 제목처럼 숯의 집합을 예시해준다. 하나의 숯을 단위원소 삼아 그 숯들이 모여 형태를 만드는데, 그러나 그 형태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봐야 보인다. 가까이서 보면 얼룩에 지나지 않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면 비로소 형태가 드러나 보이는 그림처럼 작가의 작품은 조각이면서도 회화적이다.

또한 장연순은 마의 일종인 아바카 섬유를 소재로 하여 그 크기와 형태가 동일한 큐브가 중첩된 무한증식구조물을 보여준다. 흡사 자바라 구조를 연상시키는 일련의 작품들에서 큐브는 방을 의미하고 몸을 의미하고 자아를 의미한다. 질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에서처럼 나를 형성시켜준 천개의 방들(자아들)을 형상화한 것이다. 단아한 구조와 쪽물을 들인 은근한 색감이 정적이면서도 관조적인 명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리고 전강옥은 전통적인 조각의 본질을 중력이라고 본다. 형태를 고정시키기 위해 묶거나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그 자체의 힘만으로 버티는 구조물을 통해 중력을 가시화한 것이다. 이를테면 낚싯줄을 얼기설기 설치해 놓고 그 위에 조약돌을 얹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조약돌들은 외부의 미미한 진동으로 하나둘씩 바닥에 떨어진다. 어쩌면 삶은 자기외부로부터의 미약한 간섭에도 여지없이 추락하고 마는 이 돌들처럼 힘겹게 버티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와 함께 함연주는 역학을 형상화하는데, 끌어당기는 힘인 장력, 스스로 줄어들어 원형을 되찾는 수축력, 그리고 자력 등 비가시적인 에너지를 가시화한다. 이를테면 원형의 링을 축 삼아 좌우 양쪽으로 스타킹을 팽팽하게 당겨 만든 조형물을 공간에다 매다는데, 그 실체감이 희박해 오히려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와 실체감을 다툰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런 희박한 실체감과 더불어 제목처럼 <부드러운 긴장>감이 공간을 감싼다.

같은 기간 다국적 출신 작가 81명이 참여하는 (제 3전시실)과,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 보리스 쿠라톨로와 매리 설리번이 공동으로 참여한 전시 <나무가 종이를 만나다전>(제 6전시실, 소마드로잉센터 기획)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고충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