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열풍, 아빠·형제 소재·연극뮤지컬 영화로 확산

1-영화 '아부지'
2-친정엄마와 '2박3일'
3-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
4-연극 '손숙의 어머니'

‘엄마’ 열풍이 쉬이 꺼지지 않고 있다. 비단 경제적 불황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불안정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실업, 빈부 차이, 관계 단절로 인한 현대인의 고단함이 엄마 품을 향한 그리움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장 쉽게 눈에 띄는 반응은 역시 서점에서 드러난다. 상반기 최고의 베스트셀러라고 할 수 있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필두로 공지영의 산문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강준만 교수의 <어머니 수난사> 등 어머니의 삶을 다룬 책들이 계속해서 출판계를 점령하고 있다.

엄마 열풍은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육화(肉化)해 위력을 더한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연극 <손숙의 어머니>의 카피는 아예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그 이름’이다. 10년째 같은 배역을 연기해온 손숙은 실제 모습 같은 연기로 옛 어머니상을 그려내고 있다.

여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맹이 됐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어른들에 뜻에 따라 엉뚱한 남자에게 시집온 어머니. 시어머니의 고된 시집살이에 바람난 남편, 아들의 뜻하지 않은 죽음. 결국 손자에게 글을 배워 문맹에서 벗어나는 늘그막의 어머니. 몇 줄의 문장만으로도 가슴 한 켠이 답답해오는 어머니의 인생은 무대에서 관객들을 감정이입시키며 어머니를 다시 생각케 한다.

최근 사람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엄마’는 강부자와 김혜자다. <어머니>의 뒤를 이은 강부자 주연의 연극 <친정엄마와 2박3일>은 올해 초 초연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이달 초부터 다시 무대에 올랐다. 중병에 걸려 친정에 돌아온 딸이 엄마와 마지막 2박3일을 보내는 내용을 다룬 이 작품은 강부자와 딸 전미선의 열연에 힘입어 지방 투어 공연을 마치고 다시 서울에서 앙코르 공연 중이다.

이미 언론과 관객의 입소문으로 많이 알려진 내용이지만 여전히 주요 예매 사이트 순위에서 4주 연속 1위를 지키는 등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국민 엄마’ 김혜자는 봉준호 감독의 <마더>를 통해 그 위치를 더욱 공고히 했다. 자상하고 약한 어머니상 대신 자식을 위해서라면 폭력도 마다않는 히스테리컬한 김혜자의 모습은 모성애의 강함을 색다른 방식으로 드러낸다.

서서히 기지개 펴는 ‘아빠’

그런데 왜 엄마 열풍만 있고 아빠 열풍은 없을까. 사실 지난 97년에 닥친 경제 위기 때는 ‘아빠’가 떠올랐었다. 가장의 몰락으로 인한 가정의 해체는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곧 부성애를 다룬 소설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김정현의 <아버지>나 조창인의 <가시고기> 같은 소설은 이내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다. 요즈음의 <엄마를 부탁해> 신드롬과 비슷한 맥락이다.

최근 ‘엄마’ 소재의 연극들이 모성애를 테마로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냈다면,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박근형 연출의 연극 <너무 놀라지 마라>는 아버지의 죽음을 시발점으로 현 시대 가족 해체의 비극을 냉소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은둔형 외톨이 작은 아들, 술집에 나가며 홀로 가족을 부양하는 며느리, 무능한 영화감독인 큰아들. 이들이 보여주는 기형적이고 불안정한 가족의 형태와 소통불능의 대화는 그대로 우리 사회의 가족을 되돌아보게 한다. 망자가 된 채 공연 내내 무대 뒤에서 매달려서 장사를 치러달라고 애원하는 아버지의 공허한 외침은 가부장의 몰락과 가족의 붕괴를 말해준다.

부성애에의 조명은 스크린에서 유독 두드러진다. 지난 달 25일 하이퍼텍나다에서 개봉한 <아빠의 화장실>은 국내엔 익숙하지 않은 남미영화임에도 관객의 입소문을 기반으로 서서히 관객몰이에 나서고 있다. 우루과이와 브라질 사이 마을 멜로에 사는 한 가족. 교황 방문 행사가 열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아빠가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유료 화장실을 만들어 대박을 노린다는 설정이다. 따뜻한 가족애와 소박한 인간미를 보여주는 아빠의 모습은 슈퍼맨에서 한때 홈리스로 내몰렸다 돌아온 이 시대 아빠들을 안심시키고 다독인다.

전국 관객 250만 관객을 돌파한 <거북이 달린다>의 흥행비결은 아버지 관객들이다. 영화는 시골 형사와 탈주범의 추격전이 주 내용이지만 그 이면에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있다. 연상의 아내 앞에서 기 한 번 못 펴는 남편이자 딸에게는 한심한 아빠인 시골형사가 끈질기게 탈주범의 뒤를 쫓는 것은 결국 아빠와 남편으로서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함이다.

16일 개봉하는 <아부지>는 <워낭소리>에서 카메라의 시선을 ‘아버지’에 좀 더 치중한 이야기다. 천성이 농사꾼인 아버지가 자식의 학업을 위해 자신의 재산목록 1호인 소를 팔게 된다는 내용을 담아 감동을 자아낸다. 요즈음의 엄마 신드롬이 옛 어머니의 모습을 이끌어냈듯이, 이 영화도 1970년대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부성애에 대한 본격적인 조명은 자칫 뻔하게 귀결될 수 있는 결말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지만 대신 명쾌하고 힘이 있다. 10월 개봉을 앞둔 <부.산(父.山)>도 동음이의어를 이용해 ‘부산’이라는 배경과 ‘산과 같은 아버지의 사랑’을 한 제목에 담아냈다.

이런 부성애 트렌드에 대해 <아부지>의 한 관계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요즘, 가족을 지탱하는 것은 역시 아버지들의 역할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더욱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5-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6-영화 '거북이 달린다'
7-연극 '너무 놀라지 마라'

형제들도 모여라, 해체된 가족들의 재회

엄마 신드롬에서 파생된 관객들의 ‘가족’에의 관심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잊고 있었던 ‘엄마’나 ‘아빠’의 재발견 외에도 혈육이자 친구인 형제 간의 관계에 대한 조명도 그 중 하나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연극 <우리, 테오와 빈센트 반 고흐>는 빈센트 반 고흐와 테오도르 반 고흐 형제의 이야기를 다루며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졌다. 일생에 걸쳐 삶의 동반자이자 예술적 동지였던 이들은 때로는 부딪치기도 했지만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작품은 고흐의 예술세계를 이뤘던 것은 결국 형 고흐 혼자만의 업적이 아니라 동생과의 관계와 무관하지 않음을 이야기하면서 형제애의 위대함을 설파하고 있다.

현재 코엑스 아티움 개관작으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는 다음 달부터는 고양어울림누리극장에서 계속해서 공연을 이어갈 정도로 관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작품은 종가집의 유산을 둘러싼 형제 간의 갈등이라는 전통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음악과 구성을 유머와 해학으로 버무려 인기몰이를 계속하고 있다.

신혜진 공연칼럼니스트는 “반목하던 형제가 유산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간의 갈등과 오해가 하나 하나 풀리며 결국 가족의 화합을 이룬다는 전개는 일견 평범해보인다”고 운을 떼면서도 “하지만 장유정 연출의 맛깔나는 진행과 음악의 적절한 배치가 콩가루 형제의 해프닝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재미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한편 1988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무대로 옮긴 연극 <레인맨>은 영화 그대로의 형제애를 다룬다. 오랜 시간을 떨어져 지내다 아버지의 임종 이후 다시 만난 형과 동생. 유산의 차이와 형의 장애 탓에 둘 사이는 불편하고 서먹하다. 하지만 이들은 시간을 두고 차츰 예전의 기억과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며 마음의 벽을 허문다. 아버지라는 교집합이 사라진 세상에서 그들에게 남은 건 서로뿐.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는 ‘가족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엄마, 아빠, 형제 등 ‘가족’이 뜨는 이유는 뭘까. 사회학, 심리학, 대중문화론 등 여러 가지 잣대에 의한 요인분석들이 난무하지만, 그 가운데 공통적인 것은 살기 힘든 세상에서 자신을 맡길 안식처는 결국 가족밖에는 없다는 이유다. 무한경쟁의 시대,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침체의 늪. 지친 육신과 고단해진 영혼을 기댈 유일한 사람들. ‘가족’의 열풍은 그래서 현 시대 사회상을 반영하는 결과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