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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스크린에서 무대로 번지다
'오래된 아이' '버려진 인형' 등 대표적 공포연극… 특화된 장르로 성장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





1-버려진 인형
2-오래된 아이
3-낯선


혹자는 공포영화의 시대 구분을 <링>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 이전까지의 공포영화가 극장에서만 무서운 영화였다면, <링>은 집에 돌아와 혼자 있어도 무서운 영화였기 때문이다. 영화 속 귀신은 단지 스크린 안에만 머문다. 그렇기에 공포영화를 보러 간 관객들은 ‘깜짝 놀람’을 ‘즐기러’ 간다.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링>이 혁신적이었던 것은 영화 속 귀신이 TV라는 물리적 매개를 이용해 우리 앞에 점층적으로 실체화한다는 데 있었다.

그런데 스크린에 갇힌 귀신이 <링>의 사다코처럼 제약을 벗어나 관객에게 다가온다면? 어둠 속의 관객은 낯선 이의 차가운 손길에 순간 혼비백산할지 모른다. 공포연극은 이런 잠재적 사다코들이 무대, 종종 객석에서 출몰해 현실적인 공포를 선사한다.

특히 공포연극이 올려지는 무대가 대부분 소극장인 만큼, 작고 폐쇄된 공간에서 겪게 되는 공포감은 더욱 배가된다. 또 대부분의 공연이 끝나는 시간인 밤 10시 이후에 공연이 시작되는 것도 공포의 강도가 높아지는 요인 중 하나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반복되는 잦은 암전과 음산한 분위기의 음악, 어두컴컴한 조명도 공포분위기 조성에 한몫 한다.

여름의 대학로에서 공포연극이 올려지는 것은 이미 낯선 일은 아니다. 초기의 공포연극이 ‘한 철’ 공연으로 관객들의 호기심 유발에 치중했다면, 지금의 공포연극은 공포영화처럼 하나의 특화된 장르로서 나름의 작품성을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

<오래된 아이>와 <버려진 인형>은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오승수 연출이 2007년 첫 선을 보인 <오래된 아이>는 공포연극을 대표한다고 할 만하다. 15년 전 사라졌던 여자아이가 성인이 되어 나타난다는 기본 줄거리에, 반전을 거듭하는 치밀한 구성과 긴박한 전개로 스릴러적 재미를 준다. 무대 위 상황에 빠져들 때쯤이면 객석에서 갑작스럽게 귀신들이 등장해 놀이공원식 공포의 쾌감도 경험하게 한다. 공포연극으로서의 브랜드 덕인지 <오래된 아이>는 대학로와 전국투어 공연을 전회 매진의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흥행을 계속하고 있다.

이달 초부터 8월 말까지 본격적인 여름 관객 몰이에 나선 <버려진 인형>은 깜짝 놀래키는 공포보다는 은은하게 느껴지는 ‘공포의 아우라’를 내세운다. 제목에서도 나타나 있는 것처럼 이 작품은 일제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인형사에 대한 전설을 바탕으로 한 공포멜로극이다.

인형사와 관련된 특종을 취재하기 위해 정선 지방을 찾은 여기자가 겪는 기묘한 일련의 사건들은 시청각적인 공포의 강요보다는 심리적 공포의 체험을 제시한다. 특히 공포영화 <처키의 인형>이나 <인형사>에서와 같은 허상이 아니라 실사 크기로 제작한 인형은 공연 전반에 섬뜩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공포영화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듯이 공포연극에서도 <나이트메어>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같은 작품들이 있다. 옴니버스 형식의 공포연극 <악! 악몽>은 악몽을 소재로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남자와 여자 두 가지 버전으로 관객들 눈 앞에서 펼친다.

남자의 이야기는 죽은 여자들이 등장하는 악몽에 시달리다 여자친구와 떠난 밀월여행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다. 여자의 이야기는 해부용 시체들이 살아나는 기담이다. 늦은 밤 해부용 시체를 닦아 놓으라는 교수님의 지시에 마지못해 시체실에 들어간 주인공은 사고로 절단된 시체들이 경련을 일으키며 움직이는 통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두 이야기 모두 죽은 자들이 등장하는 작품인 만큼, 무대에서 이것이 어떻게 관객들을 놀라게 할 것인지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편 지난 7일 시작한 <낯선>은 심리 공포연극을 표방하는 작품이다. 생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서정적이고 탐미적인 시들을 남긴 작가 루퍼트 브룩(Rupert Brook)의 유일한 희곡 을 바탕으로 한다. 심리극답게 이 작품에는 귀신이나 괴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실재하는지조차 분명치 않은 존재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간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하는 것.

가난하고 척박한 리투아니아의 산속 외딴 오두막집에 살고 있는 부모와 딸 세 식구는 지난한 가난 끝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느날 부유한 길 잃은 손님이 찾아오고, 가족들은 이 수상한 남자를 죽이고 돈을 빼앗아 도시로 나가려는 계획을 세운다.

물질적인 풍요를 원하는 인간의 욕망은 결국 한 가족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영화 <샤이닝>이나 <세븐>에서처럼, 탐욕과 광기로 인한 공포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추격 못지 않게 섬뜩한 긴장감을 체험하게 한다.

이 같은 공포연극들은 긴장감이나 공포감 조성을 위해 필히 음향이나 분장, 무대장치 기술의 높은 수준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공연관계자들의 말이다. 또 관객들의 수준이 높아짐과 함께 더 이상 예전처럼 깜짝 놀래키기만 하는 설정만으로는 공연의 성공이 보장되지 않으며 영화나 드라마에서와 같은 탄탄한 대본과 연출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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