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읽기] 팝의 패러다임 재정의하고 음악 산업 시스템 대한 문제 제기

(우) 마이클 잭슨 'Black or White' 앨범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지금은 7월 초다. 편집과 인쇄를 거치면 한 주 뒤에 실릴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움직인다. 예전 같았으면 몇 달짜리 심층 보도로도 모자랐을 사건들이 길어야 한두 주 만에 소화되고 몇 년 전의 일처럼 사라진다. 돌아보거나 생각할 시간뿐 아니라 겪을 시간조차 모자라다.

따라서 이 글이 실릴 때쯤에는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시대에 뒤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한 번쯤은 곱씹어보고 싶은 게 있게 마련이다. 하여, 이번 주에는 두 뮤지션에 대한 최근의 뉴스를 보다 떠오른 생각을 언급하려 한다. 그 중 하나는 정말로 슬픈 소식, 다른 하나는 육 분의 일 정도 반가운 소식이다.

마이클 잭슨이 남긴 것들

마이클 잭슨이 사망한 직후 을 제외한 그의 모든 정규 음반들이 아이튠스 차트 10위 권 안으로 진입했다. 100위권 안에는 정규작과 베스트 음반을 비롯한 잭슨 관련 음반들 모두가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집안 구석 어딘가에 있던 그의 음반들을 다시 끄집어내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불운했던 천재가 만든 경이적인 음악들을 들으며 새삼 ‘좋았던 옛 시절’을 추억했을 것이다.

그렇다. 마이클 잭슨이 우리에게 남긴 것에 대해서라면 끝도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 그가 아니었다면 저스틴 팀버레이크 같은 팝 스타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팝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퍼포먼스 중 하나인 ‘문워크’에 대해 두 번 말하는 것은 입 아픈 일이며, 더불어 ‘Thriller’를 비롯한 마이클 잭슨의 혁신적인 비디오들이 개척한 방법들(예를 들면 ‘Black Or White’에서 쓰인 몰핑 기법. 이 방법은 사와지리 에리카가 나오는 메이지 초콜릿 CF에서 깜찍한 방식으로 되풀이됐다)이 이른바 ‘보는 음악’의 영토를 얼마나 넓혔는지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된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뜻밖에도 마이클 잭슨의 후예라 할 만한 뮤지션은 그리 많지 않다(물론 그를 이래저래 따라하는 경우는 많았다). 흑인 음악의 리듬과 백인 팝의 유려함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그의 시도는 위에 언급한 팀버레이크 정도를 제한다면 두드러진 후계자가 없는 듯하다.

한국에서도 박남정과 박진영 등의 퍼포먼스와 음악에서 마이클 잭슨의 영향이 짙게 드러나지만 그 외의 경우는 딱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사실 몇몇 예외를 제한다면 잭슨의 흔적이 느껴지는 경우는 영향이 아니라 섣부른 모방이나 의도치 않은 패러디에 더 가까웠는데, 그건 그의 음악이 그만큼 개성이 강해서였다. 섣불리 영향 받기에는 아류가 될 공산이 너무 컸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잭슨이 팝 음악계에 (그의 음악을 포함하여) 정말로 남긴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그가 팝이라는 것의 패러다임을 재정의했다고 대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는 팝이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또한 어떤 것이든(그게 무덤에서 기어 나온 좀비라도) 팝의 영토에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그가 새로이 정립한 팝의 이러한 패러다임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그 모든 걸 그는 거의 혼자 해 냈다. 잭슨의 죽음은 이제 다시는 그가 해낸 것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우) 서태지 'atomos'

서태지가 적응하는 것들

서태지는 2008년 7월 말 싱글 를 발표하면서 복귀했다. 2009년 3월에는 싱글 하나()가 더 나왔다. 그리고 딱 1년이 지난 7월 1일에 여덟 번째 정규작을 발표했다. 정규작 에는 지금까지 발표한 두 장의 싱글에 수록되어 있던 곡들이 (리믹스를 포함하여) 모두 포함되었고, 여기에 두 곡의 신곡을 더하여 총 열 두 곡이 실려 있다.

기존 음원을 손봤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두 곡의 신곡이 수록된 정규작인 셈이다. 트랙 리스트가 나올 때부터 설왕설래가 오가기 시작했고, 결국 그대로 발매가 되자 인터넷에서는 ‘연재만화 합본이냐’와 ‘최고의 음반이다’라는 극단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그렇기 때문에 서태지의 정규 음반에 대한 관심은 ‘음악’이 아니라 ‘마케팅’일 수밖에 없다(사실상 수록곡은 이미 다 공개된 뒤라 대충의 평가는 끝난 상태였고, 이번에 공개된 신곡이 그리 좋지는 않았으므로). 따라서 가격 문제는 제쳐두더라도, 서태지의 최근 행보가 흥미로운 까닭은 그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음반1→활동→반 은퇴 상태의 (신비주의적) 휴식→예고→음반2’라는 활동 패턴의 기본 공식을 만들어낸 것은 다름 아닌 서태지가 아니던가. 그러나 지금 그의 활동방식은 현재 아이돌 그룹의 그것(싱글1→활동→예고→싱글2→활동→예고→싱글3→…)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는 아이돌 그룹의 ‘리패키지 음반’을 연상시키는 정규작의 구성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논쟁의 이면에는 ‘뮤지션’ 서태지가 ‘아이돌이나 하는 상업적 방식을 택했다’는 불만이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맥락에서 서태지가 지금까지 발표한 음원을 정규작에 모두 수록함으로써 싱글만이 가질 수 있는 특수한 지위(예를 들면 리믹스 트랙)를 박탈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곤란해 보인다.

기존 수록곡들을 새로 다듬었다는 설명 역시 일반적인 음악 팬의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납득할 필요도 없다. 이미 처음 들었던 곡에 대한 즐거운 경험이 있는데 그걸 굳이 ‘다 채워지지 않은’ 경험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게 옳은 일일까? 그래서 이 역시 음악보다는 음악 외적 문제에 더 가까워진다.

결국 서태지의 신작을 둘러싼 것은 현재의 음악 산업 시스템에 대한 문제가 된다. 그의 행보를 어떻게 보느냐가, 즉 치졸한 상업적 기만으로 보느냐 아니면 시장 상황의 변화에 대한 유연하고 성공적인 적응으로 보느냐가 서태지의 ‘정규 음반’에 대한 태도를 결정지을 것이다. 이는 ‘뮤지션’ 서태지에게 유리한 걸까 불리한 걸까.



최민우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