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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야만인 고갱, 파리에서 길을 잃다
[영화속 미술이야기] 영화<오빌리, 창가의 늑대>와 화가 고갱(Gauguin)
주체할 수 없는 방랑벽, 영화처럼 파란만장한 생애





글/ 정준모(미술비평, 문화정책)





1-영화에 가장 많이 나오는 자바 출신의 모델 안나 라 자바네즈의 그림(Anna_the_Java_Woman, 1894)
2-고갱 '저승사자'(1892)
3-영화 <오빌리, 창가의 늑대>의 한 장면


“나는 평화 속에서 자유롭게 존재하기 위하여, 문명의 손길로부터 나 자신을 자유롭게 지키기 위하여 떠나는 것이다.” -고갱-

영원한 방랑자로, 주체할 수 없는 역마살로 나그네 같은 삶을 살았던 고갱(1848~1903)은 시인 랭보(1854~1891)가 말 한 것처럼 “고대 향연의 비밀을 푸는 열쇠”를 찾아 평생을 헤맸다. 사실 살다보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자신의 삶이 이끌려가고 통제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보이지 않는 힘’, ‘운명을 관장하는 신’의 존재를 느꼈던 고갱은 그 신들을 만나고자 그들의 세상에 갔던 사람이다.

주체할 수 없는 방랑벽의 화가 고갱을 그린 영화 <오빌리, 창가의 늑대>(Obiri, The Wolf At The Door, 1886년)는 그가 두 번째 결행한 미개지로의 여행을 마치고 파리에 돌아와 겪게 되는 에피소드가 영화의 중심이다. 즉 1893년부터 1895년까지 파리에서의 고갱을 다룬다.

고갱의 생애는 영화처럼 파란만장하다. 그의 아버지 클로비 고갱은 자유를 꿈꾸며 페루의 리마로 가는 도중 배 안에서 죽는다. 그후 고갱은 남미에서 다섯 해를 보내고 7살에 프랑스로 돌아온다. 하지만 방랑벽을 주체하지 못해 17세에 도선사가 되어 남미, 지중해, 살을 에이는 북극해를 휘젓고 다녔지만 결국 포기하고 어머니 친구의 도움으로 주식거래인으로 일하면서 덴마크 여성 메테 가르테와 결혼한다.

여유로운 생활속에서 가끔 작품을 사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다 피사로를 만나면서 화가로 전업하여 1880년 제5회 전시회부터 인상전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림은 생활에는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솔들을 이끌고 아내의 고향 덴마크에 가족들을 두고 파리로 나온다.

하지만 도회지로 변해가던 파리생활에 염증을 느낀 그는 1886년 브르타뉴의 퐁 타방(Pont-Aven)으로 간다. 그곳에서 일군의 젊은 작가들과 어울려 인상주의를 넘어 독자적인 화풍을 형성한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강하고 산뜻한 색채 효과와 사물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을 통해 상징적으로 현존시키려는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이는 가깝게 지냈던 에밀 베르나르(1868~1941)와의 교감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이런 화풍을 미술사에서는 클루아조니슴(cloisonnisme, 분할주의)라고 한다. 이것은 중세의 스테인드글라스나 프레스코, 일본의 목판화, 고대 남미의 에피고나르 문양 등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러나 고갱에게는 원시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문명의 허위를 버리고 원시의 꿈을 찾아 1887년 봄 중남미의 마르티니크(Martinique) 섬으로 가지만 병 때문에 파리로 돌아와 다시 퐁 타방에 돌아간다.

이어 고흐의 초대로 아를에도 가지만 이내 헤어지고 미지의 땅을 그리다 1891년 고갱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스무 살의 애인 줄리엣을 버리고 타히티로 떠난다. 그곳은 남방의 원색과 순수하고 꾸밈없는 삶이 낙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고독과 생활고는 그를 괴롭혔다. 그래서 1893년 6월 4일 프랑스행 배를 타고 80여일의 항해 끝에 마르세유에 도착한다. 당시 그의 수중에는 66점의 그림과 몇 점의 조각 그리고 현금 4프랑이 전부여서 제자가 보내준 돈 으로 겨우 파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헤닝 카슨이 감독하고 고갱으로 도널드 서덜랜드가, 그의 마지막 파리전시에 서문을 써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한 극작가 스트린드베리 역에 맥스 폰 시도우가 출연하는 이 영화는 그가 파리를 버리고 다시 타이티로 향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적, 예술적 고통의 시기를 담고 있다.

고갱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인상파화가들의 화상인 뒤랑 뤼엘(1831 ~1922)에게 도움을 청해 <폴 고갱의 신작 전시회>를 1893년 11월 연다. 총 44점이 걸렸는데 결과는 예술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상업적으로는 완전히 실패한 전시였다. 관객들은 “정신착란자의 환상”, “식민지 미술”이란 말로 폄하하기도 했지만 오지의 원주민들과 삶을 공유하면서 밝고 장식적이며 신비스러운 이국적 색과 주제에 호평을 보내기도 했다.

이 즈음 고갱은 삼촌 이시도르 고갱이 남긴 1만3000 프랑의 유산을 받아 1500 프랑을 부인 메테에게 보낸다. 이것은 결국 가족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다. 그는 유산으로 1894년 1월 몽파르나스의 베르생제토리가에 새로운 살림집 겸 아틀리에를 꾸미는데 쓴다. 여기서 그는 화상 볼라르(1865~1939)가 소개한 자바출신의 모델 안나 라 자바네즈와 그녀의 애완용 원숭이와 함께 산다. 아틀리에를 꾸미는데 돈을 다 써 어려웠던 그는 다시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전시회를 연다.

타히티에서 그린 그림을 전시했지만 이곳은 민속박물관처럼 타히티에서 가져온 온갖 토속품과 인쇄된 일본 판화, 자신의 근작 수채화, 목판화도 내걸렸다. 또 반 고흐의 자화상을 비롯한, 세잔, 르동의 원화들도 걸었다. 그는 봄이 오자 안나와 친구들과 함께 퐁 타방 근처의 르풀 뒤(Le Pouldu)로 여행을 떠난다. 그런 와중에 피니스테르(Finistère) 데파르트망에 있는 작은 마을 콩카르노에서 수병들과 싸움이 붙어 다리가 부러져 기브스를 하고 통증을 약화시키려 모르핀을 사용한다.

여행 중 고갱은 안나와 다투게 되고 그녀는 떠난다. 그해 11월 파리로 돌아온 고갱은 안나가 아틀리에를 털어 돈을 훔쳐 달아난 것을 알게 된다. 그 집에 살던 소녀를 모델로 한 그림을 칼로 찢어 놓은 채. 1895년 파리 생활에 역겨움을 견디다 못한 고갱은 타히티로 돌아갈 생각을 품는다. 드루오 호텔에서 경매를 열고 친구들이 바람을 잡지만 그 성과는 빈 지갑 뿐이다. 영화는 망연자실한 표정의 고갱의 얼굴을 비추며 끝을 맺는다.

후기 인상주의화가로 통하는 고갱은 상징성과 내면성, 그리고 비자연주의적인 경향이 작품상에서 나타나는 종합적인 구성을 통해 자신의 삶과 자연에 대한 사색의 결과와 결합하여 후기 인상주의가 아닌 반 인상주의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그의 회화는 평면적 화면구성과 대상의 배치에서 장식성을 가장 우선하였으며 작가가 그리는 형태나 색채는 고유색이 아니라 작가의 눈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고갱의 미술에 대한 새로운 계시는 당시 문학에서 유행하던 상징주의와 만나면서 더욱 그 깊이를 더해 그의 회화적 입장에 동조하는 젊은 일군의 화가들은 ‘예언자’라는 뜻을 가진 나비파(Nabis)를 결성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미술사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다. 하긴 원만한 삶을 살았다면 그의 인생이 영화화되지도 않을 터이지만. 하긴 그를 모델로 한 소설이라고 알려진 서머셋 모옴(William Somerset Maugham,1874~1965)의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pence)도 사실은 그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 모델과 주인공이 일치하는 부분도 있지만 이 소설은 어디까지나 픽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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