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대상으로 미술품 거래 활발해지자 보관 수요도 늘어제온·제습·보안장치 갖춰 쾌적한 환경 제공… 가격은 천차만별

1-서울옥션 공용 수장고 ‘아트 스토리지’
2-공용 수장고인 서울 여의도 ‘시티 스토리지’에 보관된 미술작품
3-서울옥션 공용 미술품 수장고 '아트스토리지'
1-서울옥션 공용 수장고 '아트 스토리지'
2-공용 수장고인 서울 여의도 '시티 스토리지'에 보관된 미술작품
3-서울옥션 공용 미술품 수장고 '아트스토리지'

한여름 장대비가 쏟아지던 14일 서울의 한 빌딩. 지문인식기에 손을 대고 들어가자 수십 개의 방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직원의 안내로 열쇠 문을 따자 안에 40여 개의 그림이 포장지에 곱게 싸여있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바깥 날씨와 달리 포장지가 눅눅해 보이지 않는다. 60% 이하로 습기를 조절하는 제습기 덕이다. 그림이 있는 9.9m²(약 3평) 남짓한 수장고 안에는 온도를 24도 이하로 조절하는 장치가 가동되고 있다.

이 방뿐만이 아니다. 주변에 있는 20여 개의 방과 캐비닛에는 개인들이 맡겨놓은 문서를 비롯한 각종 귀중품들이 제온, 제습장치와 보안장치 속에 안전하게 보관돼 있다. 수장고는 도심 한복판인 서울 여의도의 한 빌딩에 있다.

이곳은 최근 문을 연 개인 물품보관소다. 미술품을 맡긴 사람은 50대의 사업가. 그는 아파트 발코니와 옥상 창고에 분산 보관하던 그림과 조각 100여개 가운데 일부를 지난 5월부터 이곳에 보관하고 있다.

수장고 직원은 작품을 맡긴 고객이 집안에 작품을 보관할 때는 보안과 훼손에 대한 우려를 많이 했는데 개인적으로 갖추기 힘든 시설에 작품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게 돼 만족감을 표시했다고 전한다.

일부 계층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미술품 수장고를 대중화한 공용 수장고가 늘어나고 있다. 경매와 펀드를 비롯한 재테크의 대상으로 미술품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수장고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수장고의 활성화는 길게 보면 사회적 문화자산이기도 한 개인소장 미술품 관리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늘어나는 공용 수장고

미술품 수장고의 숫자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 문을 열어 접근성을 높인 공용 미술품 수장고가 눈에 띈다. 서울 여의도에 4월 문을 연 ‘시티 스토리지’는 330.5m²(100여 평)의 공간에 20여 개의 개인 수장고와 캐비닛을 갖고 있다. 이 회사는 경기 여주에 대규모의 물류창고를 세워 일부를 미술품 공용 수장고로 사용할 계획이다.

서울 서초동에 지난 2006년 문을 연 ‘쓰리 에스’는 100여평의 공간 대부분을 회화와 조각을 비롯한 미술품으로 채우고 있다. 미술품 운송, 통관을 주로하는 ‘동부아트’는 지난 2004년부터 문화예술인이 많은 서울 문래동에 수장고를 세워 미술품 보관업을 겸하고 있다.

서울 사무소에서 고객을 유치하고 지방의 물류창고 일부를 미술품 공용 수장고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 ‘더 박스’는 서울 역삼동에 사무소를 운영하지만 창고는 이천에 있다. 200여명의 고객 중 10%에 해당하는 20여명이 현재 창고에 미술품을 보관하고 있다.

옥션이나 화랑이 수장고 일부를 공용 수장고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최대 미술품 경매사 가운데 하나인 ‘서울 옥션’은 지난해부터 미술품 전문 보관소 ‘아트 스토리지’를 운영하고 있다. 아트 스토리지는 62.7~105.6 m²(약 19~23평)의 30여개 공간에 미술품을 비롯해 보석과 서류 등 개인 소장품을 보관하고 있다.

화랑 ‘가나아트’도 서울 평창동 ‘아트 인 아트’에서 수장고를 운영하고 있다.

까다로운 미술품 보관, 늘어나는 수장고 수요

미술품 수장고의 대중화는 늘어나는 미술품 수요와 맞물려 있다. 미술품 경매가 활성화되면서 일반인들도 미술품 소장의 기회가 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미술품에 투자하는 아트펀드 운영자들 역시 사들인 미술품을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작년 5월에 미술품 수장 서비스를 시작한 ‘더 박스’의 경우 현재 20% 이상 고객이 늘었다. ‘쓰리 에스’ 역시 매해 20% 이상 수장고 이용 고객이 늘고 있다. 이 회사는 아트펀드 1,2호를 유치하면서 미술품 수장고로 자리를 잡았다.

업계에 따르면 ‘동부아트’와 ‘아트 인 아트’의 수장고 점유율 역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수장고의 활성화는 미술품 관리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높아졌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서울옥션’에 따르면 미술품 관리에 가장 적합한 온도는 평균 18℃±2℃수준이다. 습도(상대습도)는 평균 55%±5% 내외여야 작품훼손을 막을 수 있다. 조도 100~200 룩스(lux)의 조명을 유지하고 자외선 차단, 최소 발열 램프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무기질 채색의 경우 햇볕이나 고온에 오래 노출될 경우 색감이 바랠 수 있다. 습기가 60% 이상 되면 캔버스가 늘어지고 색이 번져 작품을 망칠 위험도 높아진다. 유화는 건조한 상태에서 보관하면 물감이 부스러진다. 대기오염으로부터 인한 훼손을 방지하려면 아황산가스 0.06ppm 이하를 유지해야 한다.

리움 미술관(관장 홍라희)을 보유한 삼성은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의 창고에 대규모의 수장고를 만들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비롯한 고가의 미술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는 워커힐 미술관(관장 노소영)의 일반공개를 중단했지만 300여점의 작품을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다.

개인들이 이런 환경을 유지하는 힘들기 때문에 제온, 제습, 보안장치 등을 갖추고 있는 미술품 공용수장고의 효용은 높은 편이다. 그러나, 수장고 이용 가격은 천차만별이어서 공용 수장고라 하더라도 경제적 수준이나 작품의 가치를 고려한 선택이 필요하다. 공용 보관소의 보관료는 3.3m²(약 1평) 당 18만~30만원 수준이다.

수요 확대 아니다 주장도, 제도 개선 필요성 시급

미술품 수장고의 대중화는 수요보다는 공급 확대에 원인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서울 인근의 경기 지역에 난립한 물류창고는 공급 포화 상태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물류창고가 비면서 미술품 수장고로 일부 공간을 개조해 수요창출에 나서 공용 미술품 수장고가 늘어난 측면도 있다.

물류창고 업계에 따르면 서울 인근 물류창고 점유율은 미국발 금융위기 이전 80%선에서 현재 60%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아트 스토리지’를 비롯한 경매사 운영 수장고의 경우도 현재 개인 점유율이 낮은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극소수의 고객을 상대하며 임대료가 높은 경매사 수장고의 경우, 미술품 수장고에 대한 전체수요와 관계 없이 점유율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있다.

분명한 것은 장기적으로 문화 수준의 발달과 함께 문화예술품의 수요도 늘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이에 따라 미술품 공용 수장고 관리수준 역시 높아질 필요성이 있다.

대부분의 공용 미술품 수장고들이 온도, 습도 유지시설과 보안시설 등을 갖추고 있지만 고가인 미술품에 비해 임대료에 포함된 보험 보상금은 최대 1억원 수준에 그친다. 업체에 따라 자체 보험 없이 개인들이 미술품에 개별 보험을 들어야 하는 곳도 있다.

미술품 보관에 관한 전문지식을 갖춘 직원이 드물다는 것 역시 우려를 낳게 한다. 대부분의 공용 미술품 창고는 일반 물류 창고에서 일부 서비스를 변경한 것이기 때문이다.

제도적 보완도 시급한 실정이다. 공용 미술품 보관업체가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지만 소비자 피해보상규정 등이 상법에 명시돼있지 않다. 상법 내 창고법을 세분화해야 한다는 이용자들의 목소리가 높다. 물류창고 주무관청인 국토해양부는 업계 일부와 관련 법 개선을 위한 협의를 하고 있으나 이용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될지는 불투명하다.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뒷짐을 지고 있는 실정이다.

선진국 이미 대중화, 개인 소장 미술품에 책임감 가져야

문화선진국의 경우 공용 수장고가 이미 대중화 추세에 있어 우리도 이에 대한 관심의 필요성이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의 ‘CITY STORAGE’가 전역에서 1000여개, 일본의 ‘TERADA’가 200여개, 홍콩의 ‘MINI CORP.’가 30여개의 물품보관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온도와 습도, 보안장치를 갖추고 있어, 이 가운데 10% 가량이 개인 미술품 수장고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가의 미술품 수집에 열을 올리는 수집가들도 상온에서 미술품을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 화랑 수장고조차 습도, 온도 조절장치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유명화가가 아닌 경우에 자신의 작품을 온도, 습도 조절기가 장착된 수장고에 보관하기는 힘든 현실이다.

그러나, 개인 수집 미술품이라 할지라도 그 작품의 문화적 가치는 범사회적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미술품 관리는 의무에 가깝다. 미술사적으로 언급될만한 작품이 수집가에 의해 경제적 가치로만 환산될 뿐, 문화유산의 하나로 여기고 보관하지 못한다면 이는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미술품의 올바른 관리는 작품의 경제적 가치를 유지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박상용 미술품가격정보연구소 소장은 “가령 김중섭, 박수근 등의 작품은 개인소장품이라할지라도 미술사적 의미가 큰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개인수집가라도 보관, 관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원작을 원형대로 보존하는 데 콜렉터는 일종의 의무감을 가져야 하며 이런데 공용 미술품 수장고가 기여한다면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