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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것에 대한 풍속학
[대중문화읽기]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
독신자 전성시대,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는 법 담아





정여울 문학평론가







21세기가 배출해 낸 수많은 신조어들 중에서 단연 나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1인가족’이라는 단어였다. 예전에는 그저 ‘독신자’(독신녀, 독신남, 싱글족)라는 말은 썼어도 ‘1인’자체가 감히(?)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가족이란 무릇 최소한 2명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고정관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싱글족들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사회적 미성년 취급을 당하곤 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저마다의 이유는 다르겠지만 1인도 충분히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람들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1인가구가 주택시장의 새로운 수요층으로 떠오르고, ‘증가하는 1인 가구 타깃층을 확보하자!’는 기업의 야심찬 구호까지 들려온다.

바야흐로 싱글 하우스의 전성시대다. 이 소식은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혼자라도 충분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도 되겠지만, 혼자라는 고립감과 싸워야 할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도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가 새삼 반가웠던 이유는 이 드라마가 ‘쿨한 척 하지만 내심 결혼에 목매는 독신남녀들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우선 ‘혼자 산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풍속학적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이 드라마는 혼자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릎을 칠 만한 갖가지 사소하고도 애틋한 에피소드로 와글거린다.

혼자 산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혼자 먹는다’는 것이다. 혼자 먹는 일에 익숙해진 올해 마흔의 독신남 건축가 신재희(지진희)는 혼자서도 제법 그럴듯한 한상차림을 해내는, 혼자 살기에 도가 튼 요리의 달인이다. 그는 고기에 칼집을 숭숭 내어 멋들어지게 스테이크를 해낼 줄도 알고, 스파게티에 대한 세밀한 지식을 자랑하느라 처음 만나는 여자에게 ‘비호감’으로 찍히기도 한다.

“보통 스파게티라 함은 직경 1.9 밀리미터 정도 되는데, 이건 좀 보기에도 가늘죠? 엄밀히 말하자면 이건 스파게티니라고 말하는 게 옳습니다. 가장 얇은 파스타는 직경이 일미리 정도 되는데 천사의 머리카락이라고도 하지요.”

처음보자마자 ‘잘난척 대마왕’의 기질을 보이는 이 남자에게 어떤 여자가 호감을 갖겠는가. 이를 목격한 후배는 한 마디 충고를 날려준다. “예쁜 여자들은 ‘엄밀하게’ 말씀하시면 굉장히 싫어해요.” 그는 후배의 영양가 높은 충고에도 아랑곳 않고 파티에서 쓸데없이 시간을 보낸 것만 아까워한다.

“아~! 다큐멘터리 시간 끝났네!” 후배는 어이없어 묻는다. “무슨 다큐멘터리인데요?” “지구의 청소부 느타리버섯.” “버섯, 동굴, 박쥐, 그런 다큐만 보지 말고, 소장님 주변 사람들 마음을 돌아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좀 덜 고독한 인생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는 불에 덴 듯 화들짝 놀라 버럭 소리를 지른다. ‘고독’, 그것은 그의 아킬레스건이자 금기어사전 1순위였던 것이다.

“고독? 누가 고독해! 결혼이 뭐야! 아내 입맛대로 집 뜯어고쳐주고 인격 박탈당하고, 애라도 생기면! 아, 그건 너무 폭탄이라 입에 담기도 싫다.” 그는 솔로예찬과 결혼비난에 관해서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연설가다.

이 남자의 직업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함께 사는 공간’을 창조하는 건축가다. 그는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을 아름답고 편리하게 만드는 유능한 건축가다. 그의 친구 기란(양정아)은 말한다. “네 설계는 공동공간이 좋아. 단란한 가족이 막 상상되잖아.”

그러나 그는 재능과 성격의 심각한 괴리를 안고 있다. “당분간은 단란하겠지. 한두 해 지나면 모친은 애 교육 시킨다고 외국으로 가고, 부친혼자 기러기표 컵라면 뜯으면서 잦은 음주로 인한 간질환을 앓고, 누렇게 뜬 얼굴로 쓸쓸하게 밥벌이를 나서는 거지.” 이쯤 되면 그는 결혼혐오증을 넘어 ‘누군가 함께 산다는 것’자체를 저주하는 심각한 대인기피증 환자가 아닐까. 그러나 그는 그런 선고를 받기엔 타인을, 특히 여성을 은근히 신경 쓰는, 알고 보면 보드라운 남자다.

그는 혼자 사는 사람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 바로 ‘혼자 몸이 아픈 일’을 겪다가 만난 맘씨 고운 노처녀의사 장문정(엄정화)을 만나 조금씩 ‘혼자 사는 데도 함께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급속도로 증가한 공간이 바로 ‘까페’다. 까페의 신풍속도 중 가장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혼자 앉아있는 사람’의 실루엣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다. 까페문화 활성화의 1등공신은 바로 1인가구의 급속한 성장아닐까. 까페는 ‘혼자있는 사람의 인권이 보장되는, 모르는 사람과도 따로 또 같이 할 수 있는’ 독특한 문화공간이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식당에 혼자 들어갈 때 “한 분이세요?” 또는 “혼자세요?”라고 물어보며 안 그래도 혼자 밥을 먹으러 온 사람의 용기를 사뿐히 즈려밟는 주인들이 많다. 매상에 영향이 있으니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두 사람보다는 여러 사람이 좋은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혼자 들어오는 것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당신은 아하, 혼자시군요.’를 확인하는 작업이 꼭 필요한가. ‘앞으로는 혼자 오지마세요’라는 무언의 압박같기도 하고, 구석자리로 ‘1인손님’을 내몰거나 아예 바쁘다며 1인손님을 받지 않는 주인들도 많이 목격했다. 그래서 패스트푸드점은 혼자 먹기 가장 편안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혼자 먹다 보면 대충 먹게 되고 대충 먹다 보면 건강을 해쳐 결국은 더더욱 외롭게되는 악순환이 끝나지 않는다.

아직도 혼자 먹는 것은 주인과의 투쟁이며 시선과의 투쟁이며 자신과의 투쟁이다. 어쩌면 인간의 성숙은 혼자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능력과 백주대낮에 혼자서도 씩씩하게 뜨거운 밥을 술술 넘길 수 있는 용기에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

비실비실 제 한 몸 챙기지 못하는 남녀가 너무 어린 시절 만나 좌충우돌 살아가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제 노안까지 시작된 ‘불혹’의 나이에 매순간 ‘혹하는’ 두 사람이 만나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혼자일 수 있는 법’을 미처 배우지 못한 20대보다는 ‘저절로, 혼자일 수밖에 없는 법’을 뼛속깊이 터득한 두 영혼이 만나 혼자임의 소중함도 함께 있음의 소중함도 같이 향유할 수 있는 것.

이 또한 신인류의 사랑법이 아닐까. 나는 이 드라마가 ‘아무리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가 아니라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는 법’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 좋다. 우리는 결혼해도 혼자일 줄 알아야 하고, 혼자 살아도 함께일 줄 알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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