展국내 유일 금속활자본, '천로역정' 번역본 초판 등 희귀자료 대거 공개

문공주선생감흥시(文公朱先生感興詩) 경자자본(庚子字本), 초주갑인자(初鑄甲寅字) 황화집(皇華集), 초주갑인자(初鑄甲寅字) 조선부(朝鮮賦)(왼쪽부터)
인류 역사의 최고의 발명품으로 쿠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꼽히곤 한다. 인류의 문명화와 역사발전에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는 평가에서다. 한국의 금속활자는 그보다 200년 넘게 앞섰음에도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그만큼 우리의 금속활자의 가치에 대한 인식과 홍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를 눈여겨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전시가 인사동 화봉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24일부터 8월 23일까지 열리는 '책-인사동에 둥지를 틀다'전은 고서적과 근대서적, 지도 분야의 대표적 컬렉터인 여승구 화봉책박물관장이 2000년 이후 수집한 것들 가운데 230여 종을 선보인다.

우선 국내 유일본으로 최초로 공개되는 금속활자 고문헌이 눈길을 끈다. 그중 조선 세종 때인 경자년(1420)에 만들기 시작했다고 해서 이름붙여진 경자자본으로 인쇄된 '문공주선생감흥시(文公朱先生感興詩)'가 압권이다.

주자의 감흥시의 내용도 볼 만하지만 변계량이 발문에서 경자자로 인쇄한 것임을 밝힌 것이 주목된다. 초주갑인자본으로 발행(1450)된 조선 최초의 황화집(皇華集, 조선 문신과 명나라 사신이 나눈 시들을 묶은 시집)과 1500년 전후 간행됐을 것으로 짐작되는 조선의 풍속을 기록한 조선부(朝鮮賦) 등도 관심 대상이다.

왼쪽부터 한국, 중국, 일본의 '천로역정' 번역본 초판.
특히 1678년 출판된 존 버니언의 소설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의 한국, 중국, 일본 초판본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천로역정'은 영국 근대문학의 선구로 외국에서도 각광받고 있으며 한국판 초판은 근대 첫 번역소설인데다 기산 김준근의 판화 그림이 있어 사료적 가치도 높다.

중국의 1853년 초판본은 영국 선교사의 번역에 의해 목판으로 찍었으며 일본의 1879년 초판본은 중국어본을 번역한 것이고, 한국의 1895년 초판본은 캐나다 선교사 게일 부부가 번역 출판한 목판본이다.

이광수의 '일설춘향전' 초판을 비롯해 춘향전 자료를 독보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여승구 대표의 춘향전 애장서와 러시아 공연 포스터 등도 선보인다. 이밖에 고려 고승 요원의 '법화영험전' 고판본, 다산 정약용이 만든 한자 교과서 목판본 '명물소학(名物小學)', 근대기 시인 김억의 '안서시집(岸曙詩集)' 1929년 초판본과 호남 고문서 자료 등도 흥미롭다.

여승구 대표가 30년 가까이 국내외에서 수집한 장서는 10만여 권에 이른다. 여 대표는 매년 여름과 겨울, 소장품을 공개할 계획이다. "미술품 전시 기간을 제외하고는 소장 고서를 전시해 고서가 지닌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릴 생각입니다."'책-인사동에 둥지를 틀다' 전시명은 장서의 보관과 이전의 어려움을 반영한 측면이 있다. 책이 온전히 둥지를 트는 데는 관람객의 진지하고 잦은 발걸음이 큰 힘이 될 것이다. 02)737-0057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