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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 어떻게 생각하세요?
문화예술인 9人9色 기능적·물리적·미적 차원의 평가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







모든 광장은 그 광장의 주인인 지역 주민들의 또 다른 모습이다.(중략) 광장의 물리적 공간에 담기는 모든 존재는 한시적으로 광장의 구성원이 되고 그것은 집단의 기억체계를 통해 기록되는 동시에 개인의 경험으로 남아 가끔 회상할 수 있는 추억거리를 제공한다.

물리적 공간은 기능성 또는 조형성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물리적 공간에 사람들의 기억이 담기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우리는 이것을 장소라고 부르는데 장소는 개인 또는 집단의 삶을 규정하는 힘이 있으며 단지 기능이 아닌 성격으로 전수된다.

좋은 사람들이 좋은 장소를 만드는 것이 사실이라면 좋은 장소는 좋은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우리의 도시에 좋은 광장이 필요한 이유다. -<광장> 중에서


광장은 도시를 상징하고 시민의 교류를 부추겨 문화를 만들어내는 공공공간이다. 지난 1일 열린 광화문광장은 서울에 필요한 좋은 광장일까? 어떻게 쓰이는지를 보기 전에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를 살폈다. 문화예술인들에게 기능적, 물리적, 미적 차원에서 광화문광장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광장은 정치적 발언, 시장 형성 등의‘행동’들이 있는 곳이다. 그것이 어렵다는 의미에서 광화문 광장은 광장보다 ‘공원’에 가깝다. 분수가 있는 이유도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유럽 광장의 분수는 사람들이 물을 얻었던 곳이란 역사성이 있지만 광화문광장의 분수는 단지 장식품에 불과하다. 김정락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광장은 그 ‘기능’이 핵심이다. 여기에서 발언을 하고, 포럼을 여는 것 자체가 문화다. 그게 불가능하면 문화적 콘셉트도 없는 것이다. 정부 주도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준 정책 자체가 전근대적이다. 치적을 위해 가시성에 치중하게 된다. 전국에 분수와 인공 폭포가 너무 많은 것이 그 때문이다. 위에서 부터 만들어진 문화에는 오히려 문화적 역량과 잠재력이 담기기 어렵다. 광화문광장은 제2의 청계천이라고 할 법하다. 진중권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

광장은 원래 아무 것도 없는데다. 조형물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 아닌가. 박영욱 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연구소 HK연구교수

광장이 있을 자리가 아니다.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는 구조 아닌가. ‘시민을 위한 공간’을 도로 옆에 짓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하다. 또 조형물들을 도로와 평행하게 일직선으로 배치해 위계적이다. 질서를 ‘부여’한 것처럼 보인다. 시민들이 들고나면서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느낌이 없다. 강수미 미술평론가

질문을 받은 날(8월 4일) 광화문 광장 조례 폐기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의 기자 회견문이 보도되었다. 질문의 초점이 광장의 ‘용도’ 이전에 ‘미학’에 있다는 것은 알지만 혼란스럽다. 정치적 목적으로 조성된 공간을 온전히 미학적으로만 고립시켜 논평하는 게 가능할까 싶다. 광화문광장 내 해치마당에서 주로 유럽 광장 문화에 집중된 ‘세계의 광장들’ 사진전을 보았는데, 그 광장들은 공간의 최소화와 단순화에 주력해 만들어진 인상이었다.

빈 공간이 주어졌으니 그 안에서 뭔가 새로운 삶을 만드는 것은 시민들의 몫일 테다. 반면 광화문 광장의 구조는 방문자에게 어떤 지침을 던져준다. 분수는 아이들이 뛰어 노는 ‘정겨운 풍경’이 조성되도록 유도한다. 꽃밭 가장 자리에는 친절하게도 ‘사진 찍는 곳’을 마련해 뒀다. 사진 촬영까지 통제하려는 공무원식 발상이 아닐까? 세로로 길게 늘어선 전체 구도는 광장을 순차적으로‘관람’하거나 이용하도록 만든다.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공공사업이 뭔가 ‘즐길 거리’를 던져주길 바라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시민이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광장 문화에는 익숙하지 않은 듯하다. 또 이런 주어진 광장 문화 때문에 자발적 문화가 방해받기도 한 다. 3일 광장 사용에 관한 시민사회의 집회에 경찰이 연행으로 대응한 사실이야 말로 현재 광화문광장의 미학이자 정치학인 것 같다. 반이정 미술평론가

사실 광화문광장에 가보고 싶지 않았다. 기대가 전혀 없었다. 내가 가회동 출신인데 동네가 얼마나 망가졌을까 생각하니 막막하더라. 세종로 사거 리는 웬만해선 잘 밀리지 않는 곳이다. 탁 트여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광화문 광장 때문에 그 시야는 사라졌다. 광화문광장의 형태는 한국에서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베낀 티가 역력하다. 단지 이벤트다. 광화문광장에 대 한 나의 인상은 ‘어떤 철학도 보이지 않는 크고 단절된 공간’ 이다. 양요나 시각디자이너

테마파크 같다. 서울시는 시민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고무되어 있는 듯한 데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는 별로 의미가 없다. 오락적 공간일 뿐이다. 광화문 앞은 조선 시대, 일제 강점기 내내 권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설계되어 왔다. 한번도 시민이 해방되는 공간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반대로 대중에 영합했다. 놀거리만을 원하는 한국사회의 수준과 정치 권력의 합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문화 수준이 이 정도임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

광화문광장의 공간 구성이 시민들의 삶을 관통했는지에 의문이 든다. 광장의 진정한 정체성은 정치, 사회, 종교 등이 이념을 초월해 한데 어우러지 는 사회생활의 중심지라는 것이다. 그것을 지탱하는 거푸집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야 하는 ‘자유’와 ‘소통’이다. 하지만 광화문광장은 ‘사용조례’ 같은 여러 인위적이고 자의적인 규제로 점철되어 이를 방해한다. 표면적 형식은 서구 사례에서 단순히 빌려온 인상이 강하다.

‘창의 서울’ 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는 반대다. 광화문광장은 르네상스 시대 도시의 정원식 광장, 선전의 광장, 치적의 광장, 상징물의 광장과 매우 비슷한 꼴이다. 예를 들면 이순신 장군으로는 모자라 세종대왕상, 해치 등을 늘어놓아 권위를 부여하려 한 것이나 서구의 왕궁이나 신전 대신 경복궁 앞에 광장을 조성한 것 등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는 역사성이 행여 서구의 것은 아니었을까. 홍경한 미술평론가, <퍼블릭 아트> 편집장

광장은 원래 비워야 한다. 나무도 없어야 한다. 그런데 광화문광장은 공원 같다. 정치 권력의 ‘광장 공포증’이 엿보인다. 시설물이 많은데 각각이 예쁘지도, 구성이 어울리지도 않는다. ‘역사 물길’은 정말 역사를 고려했다면 세종문화회관 뒤쪽에 살리는 게 맞다. ‘플라워 카펫’을 펼친다는 것은 일종의 우주관을 드러내려는 의도인데, 정작 어떤 우주관인지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읽히지 않는다.

경복궁과는 다른 우주관으로 보인다. 차라리 한국식 정원을 짓는 것이 나을 뻔했다. 광장이 원래 시민 부르주아적 문화임을 생각할 때 이런식의, 설계 단계에서 시민의 참여가 없는 지자체 주도 광장 조성은 피해야 한다. 임동근 공간연구집단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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