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보고 국악·한국춤 등 보전·재해석하며 계승, 발전 노력 줄이어

1-서울시국악관현악단
2-'클릭! 국악속으로' 공연현장

한 나라의 고유한 문화는 원형 유지에 대한 필요성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시대로부터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받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전통문화는 새롭게 정의되기도 하고 본래적 가치에 대한 소중함이 환기되기도 한다.

요즈음 나타나고 있는 전통예술의 변화가 기존의 인식과 신선한 충돌을 벌이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가야금 연주에 맞춰 춤을 추는 비보이들의 공연은 전통과 현대예술의 중간쯤에 위치한 무언가다. 서양음악을 기반으로 하거나 양악기를 이용하는 퓨전국악 역시 마찬가지다.

전통 복장을 입지 않고 웃통을 벗거나 전위적인 복장의 무용수들이 추는 현대적 감각의 창작 작품을 가리켜 한국춤이라고 하기는 어색하다. 그래서 오늘날의 전통예술이란 현대예술에서도 흥미로운 대상이다.

정통과 퓨전 구분 무의미, 오직 '국악'의 이름으로 놀자

국립국악원은 최근 이런 전통성 문제에 대해 예전보다 한층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부터 국악 대중화의 기치 아래 일반관객들을 배려하는 기획 공연들을 다양하게 유치해온 국악원은 퓨전국악을 비롯한 모든 실험적 음악들과 시도를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그래도 물론 주요 공연의 중심은 정통 국악이다. 국악원은 지난 11일부터 예악당에서 '세계무형유산과 함께 하는 청소년 여름음악회'를 펼치며 유네스코의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제례악과 판소리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별맞이터'에서는 어린이들이 전통음악을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가족국악 어깨동무'가 열렸다. 퓨전작품으로 대중의 관심을 모아 정통국악의 내공을 보여주며 국악의 참맛에 익숙하지게 하는 긴 안목의 전략인 셈이다.

국악원처럼 장기적 전략으로 정통국악 공연을 기획하기 어려운 단체들은 해외음악과의 합주나 현대예술과의 혼용을 시도한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은 13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넌버벌 퍼포먼스 단체 <점프>팀과 함께 '2009 국악짱! 재미짱'을 선보였다.

이날 공연에선 페루 전통 타악기와 국악기가 어우러져 낯선 선율을 만들어내는 이색적인 순간이 펼쳐졌다. 개그맨이자 뮤지컬 연출자인 백재현의 연출로 펼쳐지는 '한여름의 빙하 축제' 섹션은 우리 고전 텍스트가 아닌 친환경 메시지가 담긴 창작극을 판소리로 엮어 새로운 형태의 퓨전 공연을 시도했다.

서울시청소년국악관현악단 역시 17일에 같은 곳에서 '클릭, 국악 속으로'를 공연했다. 최근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를 통해 더 익숙해진 탭댄스가 시나위에 맞춰 선보여져,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국악관현악의 다른 일면이 공개되기도 했다.

한편 다음달 18일 열리는 부천무형문화엑스포에서는 대금 명인과 힙합 가수가 만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예능보유자 이생강 명인과 힙합 뮤지션 바비킴이 그들이다. 퓨전음악이 못마땅할 것 같은 국악계의 원로가 흑인음악을 하는 젊은 가수와 기꺼이 협업을 한다는 것이 이채롭다.

하지만 이생강 명인은 오히려 이 같은 만남에 대해 "서로 다를 것 같은 두 음악 간에 구심점을 만들어 현대인에게 정착시키면 이런 음악도 나중엔 다시 전통음악이 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동양이나 서양이라는 구분보다 대중에게 감동을 주느냐의 여부가 더 중요하다"며 "우리의 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음악, 세계적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민족춤, 국제 교류 행사로 전통의 세계화 시도

지난 7월 막을 내린 서울국제무용콩쿠르(서울국제문화교류회 주최, 집행위원장 허영일)는 올해 벌써 6회째를 맞은 아시아에 최대 규모의 무용콩쿠르다. 올해도 독일, 터키, 덴마크, 라트비아, 미국, 브라질, 쿠바, 대만, 일본, 중국 등 총 15개국에서 선발된 158명의 참가자들이 뜨거운 경연을 벌였다.

하지만 이런 사실보다 이 콩쿠르의 특색은 발레나 현대무용 분야뿐만 아니라 민족무용도 경연 부문에 넣어 시행한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발레 콩쿠르는 많았지만 한국춤을 비롯한 민족무용의 콩쿠르는 없었고, 서울국제무용콩쿠르가 민족무용을 심사할 수 있는 평가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21일부터 30일까지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 펼쳐지는 제15회 창무국제예술제(집행위원장 이진배)는 세계 각국의 전통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행사다. 재정난으로 2년 전 제14회 대회 이후 중단됐었던 창무국제예술제는 올해부터 의정부 예술의 전당이 공간과 자금 지원을 약속해 국제 전통춤 행사를 이어가게 됐다.

전통춤의 현대적 계승과 세계화를 목표로 한다는 창무국제예술제의 특색은 이번 행사에서도 오롯이 드러난다. 특히 승무와 살풀이로 대표되는 전통춤에 대한 인식 개선의 고민들이 프로그램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우선 경기도립무용단의 예술감독이자 가장 많은 한국춤사위를 갖고 있다고 알려진 조흥동의 <한량무>와 채상묵과 진유림이 함께 펼치는 <이매방류 쌍승무>, 그리고 김매자 예술감독과 대전시립무용단의 <한영숙류 살풀이춤과 지전 살풀이춤> 등 명인들의 내공충만한 춤이 '전통춤 명인전'에서 펼쳐진다.

젊은 관객들에게 흥미로운 것은 오히려 뒷부분이다. 전통춤 축제인 이 행사에서 전통춤을 모티프로 한 젊은 무용가들의 현대적 작품들이 눈을 끈다. 이번 축제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홀딩 마이 그라운드(Holding my Ground)>는 현대춤으로 유명한 신창호와 LDP무용단의 작품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이 작품은 전통춤을 어떻게 활용하고 확장시킬 것인가에 대한 의미있는 고민으로 평가받고 있다.

내달 열릴 부천무형문화엑스포에서도 전통무형문화재를 계승, 복원하고 나아가 새롭게 창작하려는 시도들이 계획되어 있다. 시ㆍ도 무형문화재 30개 팀이 하회별신굿탈놀이, 봉산탈춤, 남사당놀이 등 잘 알려져 있는 공연은 물론 마산농청놀이 같은 지역색이 풍부한 공연과 한량무처럼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공연들을 펼친다.

전통예술의 근원이었던 기생들이 만들어온 한국 전통의 여성미와 예술적 가치를 현대적 감각으로 승화시킨 '기생도도'나 태권도와 춤이 만난 '태권무' 등 무형이기에 더 가치있는 전통예술의 특성을 십분활용한 고민들을 생산적으로 무대화했다.

3-창무국제예술제 공연작_김매자 '살풀이춤'
4-창무국제예술제 공연작_하용부 '밀양북춤'

전통예술, 단절된 과거가 아닌 현대예술의 출발

한국음악, 한국춤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 고유의 옛 예술을 떠올린다. 적어도 인식에 있어서 전통예술은 여전히 과거로부터 전승되어온 것들의 현대적 답습에 머물러 있다. 때문에 '옛것'에 대한 관심이나 배경지식이 없는 이들에게 이런 예술은 지루하고 따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연 한국예술이라고 하는 것이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인가를 따져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실제 오늘날 국악공연이나 한국춤공연에서 시도되고 있는 '한국예술'의 모습들은 과거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현대적 변주의 측면이 강한 것이 다반사다. 그래서 이를 두고 한국예술의 전통성 운운하는 담론은 이미 유통기간이 지났다는 것이 중론이다.

윤중강 국악평론가는 "현대에서 퓨전국악은 '창조'와 확산'의 상징이며 새로운 국악을 만들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말하며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또 "퓨전국악은 문외한들에게 정통국악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과정으로서도 의미가 있다"며 정통국악과의 기계적인 이분법을 비판한다.

청소년들에게 괴테의 <파우스트> 원작을 무작정 읽히는 것보다 만화나 에세이 같은 전 단계를 거치면서 이해의 폭을 조금씩 넓혀가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정통국악과 퓨전국악을 상생과 상보의 관계로 정의하며 "퓨전국악은 전통의 서자이긴 하지만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전통춤의 활용이나 변화 역시 비슷한 해석이 가능하다. 국립무용단은 창작공연을 주요 레퍼토리로 한국춤의 정체성에 대한 실질적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창무국제예술제 등 민족춤을 활용해 새로운 현대춤을 만들어 세계와 소통하는 행사는 '한국춤의 정체성'이라는 담론에 대한 의미있는 시도들이다.

전통예술에 대한 인식이 흔들리는 지금, 필요한 것은 고답적인 비판이나 섣부른 예단이 아닌 그 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동조가 아닐까. 전통예술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이제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를 찍고 있는 중이다.

"전통춤 현대화에 방점"
창무국제예술제 김서령 사무국장


- 이번 예술제에서는 전통춤의 인식 개선을 위한 고민의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창무국제예술제의 모든 공연은 전통춤의 현대화를 가장 우선으로 프로그래밍되었다. 가령 관객들은 전통춤의 원형을 계승하고 있는 명인들의 공연과 이를 기반으로 현대적으로 재창작한 공연을 함께 보면서 전통의 발전 과정을 볼 수 있다. 이는 전통춤이 지루하고 현대춤은 흥미롭다는 이분법이 아니라, 현대의 모든 한국춤이 결국 전통춤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의도가 담긴 것이다.

- 해외춤이나 최신 매체를 이용한 첨단춤을 함께 배치한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인가

전통춤과 현대춤을 기계적으로 나누는 것은 한국 춤예술교육의 문제기도 하다. 한국에서 추어지는 모든 춤을 '한국춤'이라고 정의한다면, 당연히 전통춤과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컨템포러리 댄스(현대춤)도 그 안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전통의 재해석 과정에서 첨단 매체의 활용이 들어가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것인데, 우리나라는 기술과 예술의 접합에 있어서 좀 뒤쳐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폐막작인 호주의 멀티미디어 댄스 공연은 그 좋은 본보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앞으로의 전통춤은 어떤 방향으로 보전되고 발전되어야 할까

창작춤의 차원과는 별개로 전통춤은 그 자체를 보전할 가치가 있다. 없어져서도 안 되고 변질되어서도 안 된다. 잘 보전하면서 그것을 모티프로 현대적 창작의 보고로 삼는다면 '한국춤'의 정체성을 쌓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