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리뷰] 고토 류의 '사계'바이올린의 교본 같은 음악 속 개성 담아파가니니의 두 곡도 수록

하이든과 차이코프스키도 계절의 변화를 음악으로 담아냈지만, ‘사계’는 안토니오 비발디와 완벽한 동의어가 되었다.

그가 왕성하게 작곡을 한 시기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유일한 여자 고아원이었던 피에타 고아원에서 사제이자 음악교사로 재직하던 때였다. ‘화성과 창의에 대한 시도’라는 부제가 붙은 협주곡집 중 1번부터 4번까지를 따로 떼어 연주한 곡이 ‘사계’인데, 그 안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부제와 함께 소네트(시)가 적혀 있다.

18세기 당시 작품 중 일부인 사계는 21세기인 지금에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디에서나 들리는 음악이 되었다. 게다가 바이올리니스트라면 누구나 한 번쯤 레코딩을 남긴 덕에 앨범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비발디의 사계가 질리지 않는 건, 바이올린의 교본과도 같은 음악 속에 개성을 담아내려는 연주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미도리의 동생이자 그 역시 신동이라 불린 고토 류는 2년 만의 레코딩에서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했다. 그의 연주는 줄리아노 카르미뇰라나 파비오 비온디 같은 솟구치는 속도감과 드라마틱한 화려함, 그리고 팽팽한 긴장감은 덜하지만, 안정적인 밝은 색채감이 풋풋하고 경쾌하다. 그에겐 여름의 폭풍우보다는 싱그러운 봄과 풍성한 가을이 훨씬 잘 어울린다.

고토 류는 지난 6월에 열린 디토 페스티벌을 통해 한국 무대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일본에서는 7살에 삿포로의 퍼시픽 뮤직 페스티벌(PMF)에서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1번으로 실력을 알렸다. 현재 하버드대 물리학과에 재학 중이면서 가라데를 취미로 연마하는 그는 일본 열도에서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클래식 연주자다.

디토 페스티벌에서도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연주한 그는 이번 앨범 속에 파가니니의 음악 두 곡을 담았다. 어쩌면 파가니니는 이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번 앨범에서는 파가니니의 ‘국왕 폐하 만세’에 의한 변주곡 작품 9번과 ‘내 마음 허전해지고’에 의한 서주와 변주곡 작품 38번을 들려주고 있다.

자신의 작품 외에는 절대로 연주하지 않았으며 악마와 결탁했다는 루머가 돌 정도의 놀라운 기교의 소유자였던 파가니니의 작품을 연주하는 고토 류의 손끝에선 각별한 정성이 전해진다. 이제 스물한 살인 그에게서 기대할 것은 많아 보인다.

올해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공연 무대에서 얼굴을 알린 고토 류는 내년 5월, 명망 높은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카네기홀에서 연주한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