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라이선스 공연·흥행작 위주서 자체 제작 통해 레파토리 개발 나서

1-2008 고양문화재단·대전문화예술의 전당 공동제작 오페라 ‘토스카’
2-고양문화재단,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 대구 오페라하우스가 공동 제작하는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
1-2008 고양문화재단·대전문화예술의 전당 공동제작 오페라 '토스카'
2-고양문화재단,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 대구 오페라하우스가 공동 제작하는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

1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연극 환경이 열악한 원인에는 꼭 공연장 부족 문제가 꼽혔다. 그때도 이미 사설 극단이 수십 곳이나 됐지만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공연장은 많지 않았다. 300석 규모의 세실극장과, 극단 자체에서 운영하는 전용소극장, 세종문화회관 별관, 국립극장 소극장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2010년을 바라보는 지금 적어도 공연장 문제는 더 이상 연극 인프라의 열악함을 설명하는 주 원인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국공립 공연장의 규모와 갯수, 시설은 몇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양적 질적 향상을 보이고 있다.

시와 구에서 운영하고 있는 문예회관도 전문 공연장의 시설과 견주어 크게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좋은 환경을 자랑한다. 이밖에 다양한 규모의 민간 공연장들까지 합하면 국내 공연장의 수는 대략 400여 개가 넘는다.

공연 환경의 하드웨어 문제가 해결된 지금, 새로운 문제는 소프트웨어에 있다. 유명 라이선스 공연들과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되는 흥행작들이 연이어 공연장을 채우는 지금, 소프트웨어의 문제는 뜬금없게 들린다. 그러나 해외 대형작품의 경우 저작권료나 외부 스태프에 대한 고정비용이 증가하고, 이런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단체는 한정되어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창작을 시도하기에는 흥행에 대한 위험 요소가 많다. 적지 않은 티켓값을 지불하는 경우라면 관객들은 검증된 재미가 보장된 기존 공연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 상황이 이렇다보니 공연장들의 최대 고민은 예산 문제와 함께 관객의 기호에 맞는 작품을 고르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흥행작은 해마다, 해를 걸러 반복해서 무대에 오르고, 관객의 선택의 폭은 점점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공연장들 자체의 레퍼토리 개발이 절실하다는 의견이 자구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대관사업에 치중해왔던 공연장들은 최근 대관과 함께 제작을 통해 자체 브랜드화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며 레퍼토리 개발에 첫 발을 내딛고 있다.

지난해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과 오페라 <토스카>를 공동제작했던 고양문화재단은 올해도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과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함께 무대에 올린다. 지난해 이들의 시도에 고무된 덕에 올해부터는 대구 오페라하우스도 이들의 협업에 뛰어들었다. 세 단체가 합세한 만큼 규모도 다소 커졌다. 총 9억 원의 제작비가 소요되는 이번 작품은 각 공연장마다 3회씩 총 9회 공연된다.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의 홍순덕 공연기획과 과장은 "한 단체에서 작품을 단독 제작한다면 제작비의 부담이 만만치 않지만, 이를 세 공연장이 분담함으로써 예산 절감의 장점을 누릴 수 있다"고 이번 작업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해당 공연장에서 올려지는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각 지역에서 캐스팅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지역 관객들을 모을 수 있는 기반도 마련할 수 있다"며 이번 공동제작에 기대를 나타낸다.

큰 공연장과 문예회관들의 공동제작도 있다. 의정부 예술의 전당, 하남문화예술회관, 노원문화예술회관은 오는 10월에 4억여 원을 들여 오페라 <베르테르>를 함께 올린다. 하남문화예술회관과 노원문화예술회관은 이번이 첫 오페라 제작인 만큼, 의정부 예술의 전당과의 공동제작을 통해 제작 노하우를 쌓아가며 시행착오를 줄이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물론 공연장들 간의 공동제작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공연장들이 협희하는 부분 때문에 제작의 진행이 느릴 수밖에 없고, 일시적으로 모인 작품이기 때문에 초연은 쉽지만 재공연을 할 때는 연출과 세트 등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는 난점도 가지고 있다. 의정부 예술의 전당 측은 아직까지는 공동제작한 작품을 다른 공연장에서 공연하기는 어렵다고 인정하면서도, 다른 공연장에서도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연극평론가인 김윤철 한예종 연극원 교수는 이 같은 공연장들의 레퍼토리 개발 움직임에 대해 "지방 단체는 제작 인프라가 수도권에 비해 훨씬 열악하다. 지방 공연 환경의 질적 고양을 위해서 공연장들의 공동제작 경향은 바람직하다"며 긍정적인 견해를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최소 2~3년 정도의 시행착오는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면서 "기본 실력을 갖춘 인련에 기반해 꾸준히 공연하다면 의미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공연장 자체적으로 레퍼토리를 개발하는 방법도 시도 중이다. 얼마 전 경기문화재단(이사장 김문수)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공동으로 '경기도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사업'을 추진키로 결정했다.

이 사업은 오는 9월부터 내년 5월까지 9개월간 진행될 예정으로, 공연장과 전문예술단체의 교류협력 지원을 통해 예술단체들에게는 안정적인 창작공간을 제공하고, 동시에 공연장은 프로그램 다양화가 가능해져 관객 개발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공연장과 예술단체의 '윈윈'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서 우선 시범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주단체 육성사업'은 서울에 17억, 경기와 인천이 각각 2억과 1억 등 모두 20억 원이 책정되어 있고, 전국으로 확대될 내년에는 170억 원이 책정되어 있다.

이미 서울의 공연장은 열 곳의 선정작업이 완료되었고 인천에서는 한 극단이 선정되어 벌써 프로그램이 시작된 상태. 경기는 컨소시엄 공모를 거쳐 두 세 곳을 선정해 다음 달부터 운영을 시작할 계획이다.

김윤철 교수는 "현재 공연 특히 연극계의 기현상은 대학로쪽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공연계 풍토를 지적하면서 "상주단체 육성프로그램이 전국으로 확대되어 지역주민을 관객으로 끌어들인다면 밀양시에서의 연희단 거리패의 활동처럼 지역색이 가미된 다양한 작품의 특성이 배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