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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오페라의 향연 유럽이 들썩

아바도의 오프닝 무대, 루체른 페스티벌의 새 희망가

전세계 최고 지성의 아티스트들이 집결하는 스위스의 여름 축제, 루체른 페스티벌. 8월 12일, 올해의 오프닝 무대 역시 루체른 KKL콘서트홀에서 마에스트로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열었다. 진정한 카리스마. 특히, 2악장 민속무곡 렌틀러에서 춤추듯 지휘하는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따라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리듬의 파도를 만들었다.

아바도가 선택한 곡은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이었다. 청중들이 알프스 자락에 낀 구름처럼 루체른으로 몰려드던 날, 아바도는 베를린 필,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단원들, 내로라하는 솔리스트들로 이루어진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나가 됐다.

신선한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베를린 필의 명단원들, 바이올린에 콜랴 블라허 비올라에 볼프람 크리스트, 첼로에 나탈리아 구트만과 하겐 퀘텟의 클레멘스 하겐, 베이스에 알로이스 포쉬에 이르기까지 일가를 이룬 연주자들이 모두들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됐다. 123명 풀편성의 유럽 클래식의 신구 세대가 한 자리에 앉아 청년 말러의 연애실패와 좌절, 지옥에서 천국으로 새로운 희망을 노래하는 <거인>을 들려주었다.

건축적으로 동시에 자연스럽게 3개의 악장을 이끌어온 아바도의 리드는 4악장에서 대폭발했다. 이 폭발은 유럽 음악계를 굳건하게 지켜오고 있는 루체른 페스티벌의 새로운 희망찬가로 보여졌다. 매년 루체른 페스티벌 오프닝 공연을 통해 말러의 교향곡을 연주해 오고 있는 아바도. 위암을 완전히 이겨내고 재기에 성공한 아바도를 단원들은 진정으로 존경하고 있는 듯했다.

그의 몸은 예전보다 수척했지만 아바도의 온화한 카리스마는 단원들을 자유로우면서도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이끌었다. 내가 지금껏 들어온 가장 아름다운 말러 교향곡이었다. 위암 이후 베를린필을 사임하고 유럽의 청소년들을 훌륭한 음악가로 키우기 위한 작업에 주력해 온 아바도의 아름다운 꿈과 비전은 이렇게 아름답게 결실을 맺고 있었다.

1부에서는 요즘 가장 주목 받고 있는 20대 초반의 중국 출신 여성 피아니스트 유자왕이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했다. 얼마 전 런던 심포니와 같은 곡을 협연, 대서특필되기도 했던 유자왕은 기계적인 빠른 테크닉과 불과 얼음을 모두 갖춰야 하는 이 곡에서 전광석화처럼 빛났다.

유자왕의 속주는 40년 전 아바도의 베를린 필과 레코딩한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를 떠올렸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느린 부분에서의 깊이와 표현력이었는데 앞으로 경험을 통해 채워질 부분이었다. 무엇보다도 유자왕을 감싸고 풍부하게 받쳐주는 아바도의 관현악은 협연의 미덕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 유자왕은 계속된 커튼콜에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의 빠른 소나타로 청중의 갈증을 해소해주었다. 올 여름 루체른 페스티벌은 9월 19일까지 계속된다.



(좌)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유자 왕 (우)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아이다 무대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새 공연, 아이다 호수 위 환상 무대

호수 위에 지어진 환상적인 무대에서 오페라 공연을 하는 축제. 공연과 함께 2년 마다 바뀌는 무대가 화제가 되는 오스트리아의 브레겐츠 페스티벌이 막을 올렸다. 2007년엔 푸치니의 <토스카>의 ‘거대한 눈’의 무대로 전세계적인 히트를 치기도 했다.

이 무대는 지난해 개봉한 <007 퀀텀 오브 솔리스>에 등장해 또 다시 화제가 되어,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다. 올해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베르디의 그랜드 오페라 <아이다>가 그래험 빅의 연출로 상연됐다.

8월 14일 저녁, 페스티벌이 열리는 보덴제 호수에 일몰이 시작되고 공연이 시작되는 9시가 가까워오자 거대한 호수 앞으로 7천여 명의 청중이 들어섰다. 무대 위에는 푸른 빛깔의 거대한 자유의 여신상이 여러 갈래로 부서져 있었다.

아, 현대의 뉴욕일수도 있고 나일강변일 수도 있고 이탈리아일수도 있는 공간. 그 곳에서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빨래도 하고 면도도 하고 뛰어 놀기도 하는 등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는 움직임을 동시다발적으로 보여주었다.

청중이 처음 집중하게 되는 장면은 자살한 듯 꼭 껴안은 익사체의 젊은 남녀를 크레인이 인양하는 모습이었다. 비극적인 극의 결말에 대한 전주곡과 같은 장면.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 역의 이아노 타마르(전체 캐스팅 중 가장 유명하다)는 화려한 의상을 입은 채 노예들을 개처럼 끌고 다녔고 여러 조각으로 깨진 자유의 여신상은 이집트인들에게 자유를 빼앗긴 에티오피아 노예들의 상태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제복 등에 경찰(Polizia)이라고 써있는 전투경찰들이 객석을 가르며 나타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라다메스(루벤스 펠리짜리)는 배를 타고 등장, 첫 아리아 ‘청아한 아리아’를 부른다.

아이다 역의 흑인 소프라노 인드라 토마스의 의상은 역대 아이다 최고였다. 하늘에서 무언가가 펄럭거려 주목했더니 무녀장이 수녀(천사)의 모습으로 변신, 하늘에서 크레인을 따라 고공비행 했다. 어떻게 저 위에서 공포를 내색하지 않고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경악스럽고 환상적인 무대 장치였다.

암네리스와 아이다의 피 튀기는 신경전의 2중창에서는 슬픔을 표현하려 한 듯 인공강우가 내리기도 했으며 에티오피아 원정을 떠나는 대장 라다메스가 쾌속선을 타고 쏜살같이 떠나는 장면도 매우 재미있었다.

아이다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라다메스가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면서 펼쳐지는 개선행진곡 ‘이집트의 영광’이다. 이때 무대 위에서 흩어져 있던 자유의 여신상의 얼굴이 하나가 되었고 라다메스는 전리품으로 타고 갔던 배위에 황금 코끼리를 타고 등장했다. 또 발레 장면에서 펼쳐진 물위의 모던 댄스 장면은 무척 신선하고 유쾌했다.

3막, 라다메스가 고민 끝에 국가를 배반하고 아이다와 도망치는 장면에서는 조명만으로 파도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집트의 사제가 아니라 가톨릭의 사제들이 행진하고 라다메스를 심판하는 모습에서 흰옷을 입은 사제들의 모습도 장관이었다.

마지막 장면 역시 독특하고 아름다웠다. 라다메스는 스핑크스 안에 갇히지 않았다. 라다메스는 복면을 쓴 채 물에 빠지는 처형을 당해 저승으로 가는 배 안에 있었고 아이다도 그와 함께 마지막 2중창 ‘대지여, 안녕’을 부르며 승천했다.

이번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아이다>는 작년 <토스카>와 마찬가지로 매우 재미있었다. 전혀 지루할 틈 없이 펼쳐지는 이벤트의 연속이 바로 이번 아이다의 특징이었다. 호수의 물을 활용하고 거대한 두 대의 크레인으로 무대 장식을 들어올려 배경을 만들어내는 테크닉의 승리를 보여주었다.

장일범 / 음악평론가, KBS클래식 FM '생생클래식' 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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