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미술의 하모니] (15) 로트렉과 비제창녀와 집시 이야기 적나라게 묘사한 작품으로 시공 초월한 공감 얻어

1-로트렉
2-비제
3-'두 여자 친구'
4-'검진'
5-'물랭루즈' 포스터
6-'집시'
7-'카르멘' DVD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젊은 나이에 요절한 로트렉과 비제. 나쁜 여자의 대명사 카르멘의 사랑을 그린 오페라 <카르멘>과 쾌락과 환락의 장소 물랭루즈를 배경으로 창녀들의 일상을 그린 로트렉의 작품들은 세기를 뛰어넘은 인간의 심리를 묘사한 작품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

귀족출신인 로트렉은 어렸을 적 두 번에 걸쳐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다. 부러진 두 다리는 이때부터 성장을 멈추고 결국 그의 신장은 1.5미터에서 그치게 된다. 이러한 신체적 불구와 더불어 허약했던 건강상태는 귀족 가문이었던 부모의 근친상간에 의한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

어찌됐건 불행한 신체조건을 가지게 된 로트렉은 정상적인 생활을 포기한 채 파리의 뒷골목 생활을 자초한다. 이곳에서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회에 속하지 못하는 밑바닥 여인들의 무리에서 동질감을 느끼며 그들의 생활을 밀접하게 그려낸다. 그는 "나는 이상이 아닌 진실을 그린다"라고 말하며 창녀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물론 술을 과하게 마시는 것은 좋지 않지만 자주는 마셔야 한다" 라고 말할 정도로 술을 즐긴 그는 파리 뒷골목에서 술과 창녀들 사이에 둘러싸여 그의 짧은 인생을 보낸다.

적나라한 그의 창녀들에 대한 묘사는 사실주의로도 평가되는데 성병검사를 받기 위해 줄 서있는 창녀들의 모습을 그린 <검진>이라든지, 동성애를 나타내는 <두 여자친구>와 같은 작품들은 파리의 뒷골목, 즉제일 하류층의 모습 중에서도 더욱 깊이 파고들어간 창녀들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로트렉은 이런 그림들을 통해 인간의 가장 깊숙이 숨어있는 내면을 한치의 꾸밈없이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살았고 같은 나이에 요절한 작곡가 비제의 대표작 <카르멘> 역시 로트렉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사실주의의 성향을 띠고 있다. 물랭루즈의 여인들을 연상케 하는 매혹적인 집시 여인 카르멘의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한 이 오페라는 초연 당시 큰 실패를 맛보았는데 바로 이 오페라의 줄거리와 집시, 밀수업자, 여직공들과 같은 등장인물들의 신분 때문이었다.

주로 전설이나 신화를 바탕으로 상류층을 주제로 만들어지던 기존의 오페라의 내용과는 달리 <카르멘>은 미천한 집시가 주인공이다. 또한 이 여인은 이미 유부남인 돈 호제를 유혹해 사랑에 빠뜨리고는 정작 탈영까지 한 그를 버리고 투우사 에스카밀리오에게 가 버린다. 분노한 돈 호제는 카르멘을 칼로 찔러 죽이고는 자신도 자살을 한다. 다음은 카르멘이 돈 호제를 유혹할 때 부르는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 “하바네라”의 가사이다.

사랑은 반항하는 새, 그 누구도 길들일 수 없답니다.
거절하기로 마음 먹으면 불러봤자 아무 소용이 없지요.
협박을 하거나 사정을 해도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답니다.
한 사람은 말이 많고 두 번째 사람은 과묵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두 번째 사람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날 행복하게 하지요.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은 집시아이랍니다.
룰은 필요 없어요.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할거예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조심하세요.
당신이 잡았다고 생각한 새는 날갯짓하며 날아가버릴 거예요.
사랑이 멀리 있다고 생각되면 기다리세요.
당신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될 때 다시 올 테니까요.
당신 주변 어디에서나 빠르게
사랑은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지만 다시 올 거예요.
당신이 붙잡았다고 생각하면 달아날 것이고
당신이 벗어나려 하면 당신을 붙잡을 거예요.


사랑을 쟁취하려는 카르멘의 의지와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가사다. 비제의 <카르멘>은 안타깝게도 비제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큰 빛을 보지 못했으나 비제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비제의 <카르멘>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연극을 그린 로트렉의 작품이 있다. 바로 <집시>라는 작품인데 비제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작품이 <카르멘>이듯 <집시> 역시 로트렉이 그린 마지막 포스터이다.

<집시>는 여주인공 리타가 카르멘과 마찬가지로 사랑하던 남자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두 남자가 결투 끝에 목숨을 잃는다는 내용인데 여기서 리타는 카르멘보다 한층 더 악랄한 여자로 묘사되고 있다.

로트렉은 그의 포스터에 이토록 강한 캐릭터인 리타의 실루엣을 어두운 배경을 바탕으로 흰색과 검정색을 대비시키며 강렬하게 그려내고 있다. 또한 리타의 고개를 젖히고 웃고 있는 얼굴에서 사랑을 쟁취한 그녀의 자신감과 성취욕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전체의 내용과 분위기를 한 장면으로 압축하여 포스터에 담아낸 로트렉의 예술성으로 그는 포스터라는 장르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승격시키는 데 성공을 거둔다.

37년이라는 너무나 짧은 인생을 산, 하지만 누구보다도 진한 작품을 남긴 로트렉과 비제. 사회의 하층민이었던 창녀와 집시들의 이야기를 한치의 꾸밈없이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인간 내면의 모습을 수면위로 끌어낸 그들. 인생이 짧았기에 더욱 더 큰 여운으로 남는 그들의 작품 속에서 인간의 욕망과 자유를 넘어선 고독과 미천함을 느낀다.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음악 칼럼니스트 violinoella@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