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아브라카다브라' 등 새 유행 창조… 무분별한 사용 경계해야

여기는 톱스타 ‘브루트니’의 사인회장. 브루트니는 한 소녀에게 사인과 함께 한글로 ‘행복하세요’라고 써준다. 소녀는 ‘와우’ 하고 감탄한다. 다음 순서의 남자에게 무언가를 또 써주는 브루트니. 남자가 받아든 종이에는 사인과 함께 그녀의 연락처가 쓰여져 있다. 환희에 찬 남자는 외친다. 올레!

요즘 ‘올레(Olleh)’ 시리즈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KT 광고의 한 장면이다. 15초의 짧은 시간 안에 ‘와우’와 ‘올레’의 이야기 형식에 반전과 유머를 녹여넣은 ‘올레’ 시리즈는 꾸준히 새로운 에피소드를 보여주며 웃음을 짓게 한다. 도끼를 호수에 빠트린 나무꾼과 산신령의 이야기까지는 ‘와우’지만, 늘씬한 선녀들이 세 개의 도끼를 들고 나타나면 ‘올레’ 하고 외치는 식이다.

잘 알려진 이야기나 일상의 이야기들을 소재로 만들어지는 이 광고는 ‘올레’를 상반기 최고 유행어로 등극시키며 네티즌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올레의 콘셉트를 차용한 패러디 영상물을 만들고 퍼나르는 블로거들은 ‘올레’가 ‘따봉’ 이후 최고의 감탄사라고 치켜세우기도 한다.

‘올레’는 스페인어 ‘Ole’를 떠올리게 하지만 사실은 다른 외국어도 아니고 사전에도 없는 단어다. KT 측에 따르면 ‘올레(Olleh)’는 ‘헬로(Hello)’를 뒤집어서 만든 역발상 신조어다. 발상을 뒤집어 혁신적인 사고를 지향한다는 의미다. “기획 당시 전 세계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감탄사를 전부 후보에 올려놓고 검토를 했다”는 광고팀은 최고의 감탄사를 놓고 고민하다 ‘와우’와 ‘올레’를 찾았다고 말한다.

최고의 감탄사가 ‘와우’라면 이보다 더 좋을 때의 기분을 표현하는 말이 ‘올레’라는 것. 그래서 광고 카피에 나오는 ‘최고의 감탄사’는 사실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올레’에 대한 직역인 셈이다.

SKT는 KT의 ‘올레’보다 앞서 한동안 ‘비비디바비디부’를 히트시켰다. 톱스타 장동건과 비가 시상식에 나와 멀쩡한 표정으로 “살라카 둘라 메치카 불라 비비디바비디부”라고 수상 소감을 말하는 광고는 단번에 시청자들에게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어렸을 적 어디선가 들어봤던 것 같은 이 주문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신데렐라>에서 마법사가 호박을 마차로 바꿀 때 외치던 것이다.

‘생각대로 T’를 올해의 테마로 선택한 SKT는 톱스타들을 대거 출연시키며 “생각대로 하면 되고~”라는 ‘되고송’을 지속적으로 밀어왔다. 그래서 호박을 마차로 변신시켰던 주문은 광고의 콘셉트와도 절묘하게 잘 맞아떨어지는 효과를 거두었다.

‘비비디바비디부’ 시리즈를 만들고 있는 TBWA는 “브랜드 ‘생각대로 T’의 느낌을 공감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청각에 그치지 않고 감각을 복합적으로 자극시키는 외국어 카피를 쓸 필요가 있었다”고 말한다. 가령 우리말로 ‘이루어져라’라는 표현은 강요 같은 느낌을 주지만 대상이 정해지지 않은 외국어 주문은 편안한 느낌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광고의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카피가 주는 느낌도 중요하게 됐다는 말이다.

이밖에도 광고에서 외국어 감탄사를 듣기란 어렵지 않다. KT는 ‘올레’에 앞서 ‘쿡(Qook)’을 먼저 선보인 바 있다. 허공을 쿡쿡 찌르는 동작으로 ‘쿡’의 음가를 활용했던 전례는 그대로 ‘올레’에 전해져 대박 히트를 만들어냈다. 맥도널드의 ‘언빌리버블!(Unbelievable)’은 앞의 두 사례처럼 입에 착 달라붙지는 않지만 우리말 카피를 대체하는 언어로서 주목할 만하다.

‘빅맥런치세트’가 단돈 3천 원이라는 말에 우리말로 “믿을 수 없어!”라고 외친다면 현재의 ‘언빌리버블!’이 주는 어감의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 하나대투증권의 ‘서프라이즈(Surprise)’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 가능하다.

광고계가 서서히 외국어에 물들어갔다면 가요계의 외국어 사용은 지난 10년 동안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최근 컴백한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는 팝송과 가요의 경계를 무너뜨릴 만큼의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every night I'll be with you, do you love her do you love her
매일 너의 꿈 속에 do you love me do you love me
(중략) 아브라카다브라 다 이뤄져라 Let`s go!
uh uhuhuh! ha hahaha! 내게 주문을 걸어 봐
I’m like a supervisor 널 통제하는 kaiser


신인그룹 4minute의 ‘Hot Issue’ 역시 ‘핫 이슈’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한편 ‘모두 다 take control’과 같은 ‘복합언어’도 과감하게 사용하고 있다. 손담비와 애프터스쿨이 함께 하는 삼성 애니콜의 햅틱 아몰레드(AMOLED) 광고에서는 ‘아몰레드’라는 기술명을 ‘아몰레 몰레 몰레’라는 변칙적인 가사로 바꾸며 의미보다는 ‘느낌’에 무게를 둔 광고를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광고나 가요가 영어나 기타 외국어를 사용해 대중에 어필하려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KT 측은 “한국어 단어 중에서는 광고의 느낌을 제대로 표현해줄 말을 찾기 어려웠다”고 털어놓는다. 또 수용자가 메시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기보다는 쉽게 따라 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미완성의 메시지로서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신윤성 대중문화평론가는 “인터넷 시대의 수용자들은 이들 광고 카피나 대중가요의 가사를 자의적으로 받아들이고 재해석하면서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낸다”고 이 같은 현상을 진단한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는 우리말 카피나 가사를 이용한 광고나 가요에의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며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에 대한 경향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말을 써도 외국어를 써도 광고나 가요가 히트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일각의 우려처럼 우리말에 대한 창의적 시도나 고민 없이 ‘엣지있는’ 외국어 단어에 의존하는 태도가 언제까지는 유효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조언이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