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아트프리즘] 디지털 알고리즘 예술알고리즘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의 변형과 생성 과정 보여줘

Roman Verostko,‘ Diamond Lake Apocalypse’, 1992
Roman Verostko,' Diamond Lake Apocalypse', 1992

한 청년이 우스꽝스러운 걸음으로 작업실에 들어선다. 백열전등이 달린 천장 바로 밑에 있는 커다란 책상 위에 앉아서 투명한 셀 용지 위에 붓으로 자신과 닮은 캐릭터를 그린다. 캐릭터는 반복적으로 그려져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하여 우리가 흔히 보는 셀 애니메이션이 탄생한다. 이제 주인공 청년은 셀 용지에 있는 캐릭터를 지워버리고 검은 색 실을 책상 위에 펼친다. 실을 셀 만화의 주인공과 비슷한 모양새로 펼친다. 실을 조금씩 움직이고 그것을 카메라로 촬영하여 연속동작으로 재생하기 시작하자 실 모양의 캐릭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실로 만들어진 캐릭터가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이 탄생한다. 이외에도 이 청년은 찰흙을 빚어서 캐릭터를 만들어 그 캐릭터의 손이나 발을 조금씩 움직여 한 컷씩 촬영한다. 이렇게 한 컷씩 촬영을 한 필름을 연속으로 재생하면 당연히 찰흙으로 빚어진 캐릭터는 움직인다. 이른바 클레이 애니메이션이다. 청년은 그밖에도 갖가지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청년은 다름 아닌 캐나다 출신의 마르코스 마갈레스라는 애니메이션 작가이며,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은 이 작가가 만든 애니메이션의 내용이다. 1987년에 발표된 <애니만도(Animando)>라는 제목의 이 애니메이션은 사람들로 하여금 탄성을 유발하였다.

사람들이 탄성하게 된 이유는 이 작품에서 애니메이션의 제작과정 자체가 한 편의 애니메이션으로 완벽하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의 제작과정을 애니메이션으로 승화한 이 작품은 이런 의미에서 관객들에게 애니메이션 자체의 정보를 담고 있는 매우 계몽적인 작품이다.

매체이론가 마크 핸슨(Mark Hansen)은 오늘날 디지털 매체예술의 이미지가 과거의 전통적인 예술 이미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전통예술에서의 이미지와 달리 디지털 예술의 이미지는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정보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디지털 이미지의 경우 모니터에 나타난 형상이나 프린터로 출력된 형상은 분명히 전통예술에서의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아날로그 이미지이다. 하지만 디지털 이미지는 우리 눈에 비춰지는 표면의 배후에 기계언어, 즉 비트 단위의 정보를 감추고 있다.

가령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의 그림은 그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에 대한 완전한 정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나리자의 그림이 훼손될 경우 완벽한 복구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만약 다빈치가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디지털 이미지로 모나리자를 그렸다면,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이미지는 정보로 이루어진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디지털 예술의 이미지는 이미 과학과 예술을 통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가들과 과학자의 경계를 허물기도 한다. 핸슨의 말을 다시 빌자면 디지털 이미지란 자신이 만들어진 과정을 정보화하여 그것을 드러내는 정보-이미지인 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 예술에 정통한다는 것은 과학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과 전혀 별개의 일이 아니다. 디지털 예술의 출현과 더불어 과학적 이성과 예술적 감성이 통합된 이상적인 르네상스 형 인간의 탄생이 가능해졌다고 단언하는 사람들의 주장도 어느 정도 수긍이 된다.

이러한 르네상스 예술의 정신을 부활하려는 가장 대표적인 디지털 예술은 알고리즘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알고리즘 예술이란 말 그대로 수학적 알고리즘을 토대로 형성된 예술을 말한다. 어쩌면 디지털 매체 자체가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모든 디지털 예술이 알고리즘 예술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좌) 필립 글라스,‘ Music in similar motion’악보, 1967 (우 3개) 마르코스 마갈레스 ‘Animando’, 1987
(좌) 필립 글라스,' Music in similar motion'악보, 1967 (우 3개) 마르코스 마갈레스 'Animando', 1987

하지만 굳이 디지털 예술 중에서도 알고리즘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수학적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그러한 과학적 체계 자체가 예술의 기반임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말하자면 예술의 원리와 수학적 과학적 원리가 하나임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알고리즘 예술이 디지털 예술의 형태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가령 음악의 경우만 하더라도 필립 글라스(Philip Glass)와 같은 미니멀리스트 음악가는 의도적으로 매우 단순하지만 수학적인 패턴으로 이루어진 음악을 시도한다.

그의 ‘비슷한 움직임의 음악’(Music in Similar Motion)은 감성적으로 지각되는 음악이 고도의 규칙적인 알고리즘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 곡을 기존의 악보가 아닌 알고리즘으로 시각화할 경우 매우 규칙적인 패턴에 의해서 만들어져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알고리즘 예술의 이러한 정보이론적 특징이 가장 잘 구현될 수 있는 영역은 당연히 디지털 예술이다. 알고리즘 예술가 베로스트코(Roman Verostko)의 알고리즘 예술의 가장 큰 특징이란 작품이 만들어지는 역동적 과정을 시각적으로 완전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시각적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드러날 수 있는 것은 이미지가 정보처리과정에 의해서 생성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이미지 자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미지의 창조가 알고리즘 예술의 미덕인 셈이다.

베르스토코의 작품 <다이아몬드 호수의 묵시록(Diamond Lake Apocalypse, 1992)>은 바로 이러한 알고리즘 예술의 미덕을 잘 보여준다. 마치 추상화와 같은 왼편의 이미지는 매우 혼란스럽고도 즉흥적인 이미지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즉흥적인 이미지는 단순히 우발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니다.

우측에 보이는 것과 같이 규칙적인 선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것은 알고리즘형태의 데이터에 의해서 형성된 이미지이다. 알고리즘으로 형성된 이미지들은 간단한 변형이나 반복을 통해서 예측할 수 없는 무수히 다양한 이미지들을 얼마든지 생성할 수 있다.

알고리즘 예술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이미지가 알고리즘에 의해서 형성됨으로서 무수히 많은 변형가능성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바로 이러한 변형된 이미지의 생성과정 자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알고리즘 예술은 디지털 예술이 과학적 이성과 예술적 감성을 지닌 르네상스 인간형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박한 이상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씁쓸하게도 이러한 이상에서는 엘리트주의의 혐의를 지울 수 없다.



박영욱 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연구소 HK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