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말해주지 않는 샤넬에 대한 다섯 가지 오해

한 사업가가 말했다.

“내가 어떤 아이디어를 냈을 때 1000명 정도가 ‘아, 나도 그 생각을 했었는데’라고 말한다면 그 사업은 성공이야. 하지만 아무도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면 그 사업은 실패야.”

그러나 아무도 생각 못한 그 아이디어가 대중에게 받아들여진다면 그 사람은 성공이 아닌 전설이 된다. 바로 샤넬의 이야기다.

쇼윈도 속 비싼 명품이라는 이미지에 가려진 샤넬의 일대기가 영화로 개봉됐다. 영화 <코코 샤넬>은 천재 디자이너의 모습 뒤에 숨은 그녀의 꿈과 사랑에 앵글을 맞췄다. 샤넬 역을 맡은 오드리 토투는 검은 눈동자로 코코의 똘똘 뭉친 자존심을 잘 표현했고,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메종 샤넬에서 직접 공수해 온 컬렉션은 눈을 황홀하게 만들지만 아쉽게도 샤넬의 디자인까지 전부 말하기에는 영화가 너무 짧다.

사전 지식 없이 그냥 봤다가는 자칫 그녀가 남자들 앞에서 입만 몇 번 삐죽대다가 패션쇼 한 번 열고 인생을 마감한 사람처럼 비쳐질 우려가 있다. 영화는 말해주지 않는 샤넬에 대한 오해 다섯 가지.

샤넬은 여자를 코르셋에서 해방시켰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처음으로 코르셋의 종말을 선언한 것은 샤넬과 동시대 디자이너인 폴 푸아레였다. 그는 동양의 아름다움과 회화에서 보여지는 화려한 색채에 푹 빠져 있던 디자이너로 직선 라인의 드레스를 시도해 여성들을 코르셋과 페티코트(치마를 부풀리기 위해 입는 속치마)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러나 역사는 항상 1인자만 기억하는 법. 결국 현대 여성 복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은 폴이 아닌 코코였고 그녀의 이름만 남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코르셋의 해방을 시작한 사람은 폴 푸아레이고 그 해방을 완성한 사람은 코코 샤넬이니, 샤넬이 여자를 코르셋에서 해방시켰다는 말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샤넬은 여성스러움의 대명사다?

정숙한 트위드 재킷과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스커트 길이. 우아한 모자와 브로치. 샤넬 룩은 그 정숙함과 여성스러움 때문에 오늘날 예복과 거의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유니섹스 룩이 판치고 여자도 힙합 청바지를 입는 요즘 세대와 비교해서다.

샤넬 당시의 옷은 중세 시대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화려했지만 절제를 모르던 시절, 샤넬이 고안한 옷은 거의 톰보이 룩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화려한 레이스 대신 저지를 사용하고, 승마나 폴로 게임을 할 때 입기 위해 개발한 여성용 스포츠 웨어에는 재킷과 바지 등 남성 복식에만 있던 아이템들이 포함돼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도 “내가 한 일은 남성복을 여성들이 입을 수 있게 변화시킨 것뿐”이라고 말했을 정도.

샤넬은 럭셔리의 대표 주자다?

지금으로서는 샤넬을 럭셔리와 떼고 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샤넬의 기본 정신이 실용성이라는 데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샤넬의 소재와 실루엣과 색감은 당대의 모든 치렁치렁함에 대한 반항의 산물이다. 물론 샤넬은 당시 자신의 옷을 매우 비싼 값에 팔았다.

그러나 그것은 혁신적인 디자인에 대한 대가였지 화려한 장식 값은 아니었다. “절대 덧붙이지 말 것”이라는 스스로의 디자인 철학을 반영하듯이 모든 장식을 미워한 그녀였지만 한 가지, 진주 목걸이에 대한 애정은 엄청났다. 심플하게 떨어지는 원피스 위에 몇 겹의 진주 목걸이를 늘어뜨리는 것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코디네이션 중 하나였지만 그 진주까지도 진짜가 아닌 가짜를 애용했다는 사실.

샤넬의 키 컬러는 핑크다?

샤넬 마니아 중 60년대의 패션 아이콘인 재클린 케네디가 있다. 그녀를 대표하는 아이템은 샤넬이 재기 후 만들어 낸 트위드 수트로, 존 F.케네디가 암살당한 현장에서 재클린이 입고 있던 피 묻은 분홍색 트위드 의상 역시 샤넬의 것이었다. 이 사건이 주는 여파가 워낙 컸던 때문인지, 아니면 현대 여성들의 핑크 중독 증세 때문인지 샤넬을 대표하는 색상이 여리여리한 핑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아직도 강하다.

물론 파스텔 핑크도 종종 사용되었지만 브랜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색상은 블랙과 화이트다. 원래 단순한 것을 선호하던 그녀가 블랙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그녀의 자서전을 집필한 이들의 말에 따르면 코코의 유일한 연인 아서 카펠이 죽은 이후다.

‘세상 모든 여자에게 검은 옷을 입히겠다’는 그럴 듯한 추리가 곁들여지지만 확실한 사실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심플함을 사랑한 천성과 수녀원에서 보낸 그녀의 어린 시절이 차라리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샤넬은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다?

역사에서 위인의 인격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는 이미 여러 차례 증명 된 바다. 그러나 샤넬의 경우는 유독 심해 자서전 집필자들이 거의 그녀 입에서 나온 말은 제외하고 글을 쓸 정도로 거짓말의 귀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에서도 잠시 등장하는 것처럼 그녀는 고아로, 버려진 어린 시절을 미화하기를 좋아했다.

가혹한 세상에 대해 복수하듯이 성공을 쟁취해 온 그녀에게 독설은 강자의 위치를 유지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던 것 같다. 바싹 마른 소년 같은 몸에 일요일을 가장 싫어할 정도로 일밖에 몰랐던 그녀의 삶은 현대 여성의 의복뿐 아니라 정신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사랑 때문에 아프다면 화장을 하라. 자신을 돌봐라. 립스틱을 바르고 앞으로 나가라. 남자는 우는 여자를 혐오한다.”

참고 서적: 코코 샤넬(내가 곧 스타일이다) 카타리나 칠코프스키 저, 유영미 역, 솔



황수현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