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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을 구별짓는 이미지

언제부턴가 TV 광고 속에는 보통 사람들이 아무리 용을 써도 결코 가질 수 없을 것 같은 상품의 이미지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어머, 넌 아직도 그거 쓰니?’, ‘이 광고처럼 살 수 있겠니?’ 혹은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는 식으로 시청자를 유혹하는 광고들은 그래도 정직한(?) 편이다.

요새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질문에 새로 산 자동차로 답했다는 식의 광고, 소개팅한 여자를 집까지 데려다주며 그녀가 사는 아파트 브랜드에 반하는 광고,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한 아이가 사는 아파트 브랜드 때문에 그 아이의 가치(?)가 급등하는 식의 광고들.

이런 광고들은 물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지만, 광고 자체가 예방접종처럼 원치 않는 ‘내성’이 생겨버린 것 같다. 나는 저 광고의 ‘시청자’가 될 수 있지만 ‘소비자’가 될 수 없다는 열패감에 사로잡히곤 하지만, 어느 정도 ‘비판적 거리(?)’를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동의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는 있으니까. 동조할 수는 없지만 ‘이 세계의 풍속도’를 보여주는 것이니까.

그런데 단지 상품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듯한 광고들에는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물론 모든 광고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한다. 그러나 단지 먹고 입는 상품이 아니라 ‘특정 라이프스타일’을 광고하고 그러한 삶의 방식을 ‘최상의 것’으로 추앙하는 광고는 시청자의 우울증을 극대화시킨다.

얼마 전에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 직전에 보여주는 광고를 보고 일순간 머릿속이 하얘진 적이 있다. 항공사 자체를 광고하는 평범한 광고가 아니라 항공사의 ‘퍼스트클래스’만을 광고하는 것이었다. 퍼스트클래스는 단지 ‘좋은 좌석’이 아니라 비행기 여행의 과정 자체가 마치 초특급 호화 리조트에 온 듯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열 몇 시간씩 ‘닭장처럼 사육 당하며’ 비행기를 탔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내가 돈 벌어서 언젠간 꼭 비즈니스 클래스에 타고 말리라’ 마음먹곤 한다. 그렇지만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퍼스트 클래스는 문제가 또 다르다.

퍼스트 클래스 한 번 탈 가격으로 괜찮은 자동차 한 대 뽑을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대경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뛰는 비즈니스 클래스 위에 나는 퍼스트 클래스가 있다는 것도 우울한데, 몇 년 동안 몰 수 있는 자동차 한 대 값으로 비행기 딱 한 번 타는 사람들이 있다니.

아니 그럼 저런 광고의 의도는 무엇인가. 저 광고를 보는 사람들 중 과연 몇 퍼센트가 퍼스트 클래스를 탈 수 있을까. 퍼스트 클래스를 원래부터 타는 사람에게 저런 광고가 필요할 리는 없지 않은가. 도대체 저 광고의 의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우물쭈물하던 내 머릿속에서 마치 점괘처럼 특정 메시지들이 떠오른다.

그들만의 리그, 양극화 사회, 고소영, 강부자? 세상엔 평범한 사람들이 꿈도 꿀 수 없는 저 높은 세계가 있고, 그런 세계가 있다는 것 자체를 아는 것이 고통인 사람들도 있다. 저런 광고의 효과는 ‘넌 이런 세계를 모르지?’라고 협박하는 데 있는 걸까. 너희들이 몰라도, 너희들이 못 누려도, 이런 세계는 건재하단다.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란 말인가. 광고는 그저 물건을 소개하는 게 아니라 이런 양극화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것인가. 상품 광고를 하느라 호들갑을 떠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 상품을 살 수 없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없다는 열패감을 심어주는 것이 허용되는 것일까. 상품은 광고할 수 있지만 가치관까지 광고해도 되는 것일까.



1-자동차가 사람의 계급을 말해준다는 메시지를 담은 자동차 광고
2-화려한 이미지를 앞세운 아파트 광고
3-패션 아이템 광고는 부유한 삶의 방식을 이미지화한다. 한 향수 광고
4-드라마 '스타일'의 한 장면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행인을 상대로 실험을 했다. 이 실험은 평범하고 무난한 인상을 지닌 젊은 남자를 모델로 삼았다. 첫 번째는 그야말로 ‘평범하게’ 코디를 하여 이 남성을 유리 진열장 안에 ‘디스플레이’ 한 후 젊은 여성들의 반응을 보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야말로 ‘삐까뻔쩍하게’ 코디를 하여 이 남성을 똑같은 유리 진열장 안에 전시한 후 여성들의 반응을 살펴봤다. 너무 의도가 뻔한 실험이었지만 결과는 상상보다 훨씬 노골적이었다.

첫번째 남자. 그러니까 ‘별 볼 일 없는’ 코디로 행인 앞에 노출되어 있던 남자를 향한 여성들의 평가는 냉혹했다. “별로 인상이 안 좋은 것 같아요.” “비호감형이네요.” “그저 그래요. 별 느낌이 없어요.” 놀랍게도 사람들은 ‘옷차림’이 아니라 옷차림이 조각해내는 그 사람의 ‘인상’을 당당하게 평가하고 있었다.

두번째 남자. 그러니까 ‘명품으로 도배한 듯한’ 코디로 여성들 앞에 당당히 선 이 남자를 향한 평가는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어요.” “매력적인 인상이신데요.” “감각이 있으시네요. 굉장히 지적인 느낌이세요.”

기대 이상의 노골적인 결과에 시청자의 손발이 오그라든다. 사람들은 코디만 바뀌었는데 이 사람을 전혀 못 알아본다. 게다가 이 사람의 ‘인상’ 뿐 아니라 이 사람의 성격과 학벌과 환경까지, 코디만으로 마치 내시경을 하듯 꿰뚫어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저 유리벽 너머로 서 있는 남자 또한 코디가 바뀌니 표정 자체가 ‘급방긋’, ‘급호감’으로 드라마틱하게 변화했다는 것이다. 코디는 보는 사람뿐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평가조차도 좌우하는 것인가. 무릇 이 정도의 사회적 위치를 누리는 자는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각종 패션의 매뉴얼이 저마다의 무의식에 빼곡히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듯 문제는 단지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가는 광고만이 아니라 그러한 광고가 지배하는 세계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시선 자체가 변했다는 것이다. 소비를 통해 표상되는 문화권력이 바로 ‘구별짓기’로 나타난다. 값비싼 외제자동차를 몰고 나오면 건물의 수위아저씨들뿐 아니라 거리의 운전자들조차도 ‘대접’이 달라진다.

현대사회의 구별짓기는 무엇보다도 패션과 자동차(혹은 거주지역)를 통해 표상되는 셈이다. 드라마 <스타일>을 ‘스토리가 재미있어서’ 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사람들은 이제 드라마에서 ‘위시 리스트’를 점찍어 백화점으로 달려가곤 한다.

드라마는 PPL 공화국이 된 지 오래다. 상품의 소비를 통해 보이지 않는 계급을 구별짓기 하는 현대인들, 그 구별짓기로 인해 진정 이득을 보고 진정 행복해지는 자가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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