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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된 역사의 기억을 여는 한판 굿


<플랫폼 인 기무사 Platform in KIMUSA>전은 이를테면 한판 굿 같다. 올해 초 옛 국군기무사령부 터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관된 후 처음으로 기획된 전시다. 서울 한복판에 있었지만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던 비밀스러운 공간이 속속들이 열리는 순간이다.

예술이 그 폐쇄된 권위를 떠받쳤던 냉전과 독재의 상처를 위무하고 성찰함으로써 이상을 전망한다. 이 전시를 총괄한 김선정 큐레이터는 "엄연히 있었지만 우리의 기억에는 없었던 장소성을 살린다"는 뜻으로 '기억의 공백 Void of memory'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 휴면 상태를 깨우기 위해 101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본관과 별관, 식당과 강당 등 넓고 깊고 오래된 부지 곳곳에 투입되었다. 사방에서 건물의 낡은 냄새와 함께 작품과 온기, 아이디어와 희망이 수런거린다.

복잡하고 비정형적인 공간 자체의 구조적 특징을 살린 전시인 만큼 첫인상은 혼란스럽다. 하지만 특정한 동선이 강요되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작업을 넘나들며 관객 나름의 동선을 짜나가는 데 의미가 있다.

문을 열고 발길을 따라 시작된 상상

본청에 들어서면 왼쪽 방에서 나는 소리가 발길을 끈다. 흰 한복을 입은 한 여인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실 노래보다는 음 자체에 가까운 이 소리는 기무 부대의 군가를 한국 전통 음악의 한 형태인 정가(正歌)로 바꾸어 놓은 것.

"조국과 자유는 우리의 생명/ 멸공의 깃발 함께 뭉쳤다/ 악마의 붉은 무리 무찌르고서/ 영광의 조국통일 앞장을 서리" 같은 날 선 가사는 보컬리스트 정마리의 성대에서 뭉그러진다. 그녀의 주변에는 소리의 음기를 증폭시킬 수 있는 소품들이 놓여 있다. 이 방은 이수경의 작업 '조국과 자유는'이다.

"감시, 통제, 훈련, 질서, 경계 등 지나치게 양(陽)적 에너지가 누적되어 있는 기무사 터에 음(陰)적인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장치를 함으로써 생성의 공간으로 변환"하려는 의도다.

공간의 관습을 뒤바꾸는 것은 여러 작가들의 테마다. "할 일 없이 기대어 누울 수 있는" 복도의 나무 벤치(최춘웅 '무위를 위한 초대'), 무당 10명의 숨을 불어넣은 병(김은실 '무당의 입김'), 연막탄으로 피워올린 보랏빛 연기의 스펙터클(카밀라 스포사티 '25 바이올렛') 등의 작품은 기무사를 새로운 공간으로 상상해낸다.

정연두는 '공중정원'에서 기무사의 역사적 맥락을 풍자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유명 아나운서가 조선왕조의 비밀스러운 공중정원을 소개하는 내용의 영상 작품이다. 마치 TV 프로그램 '역사 스페셜'처럼 진행되지만 이 내용은 허구다. 화면에 나오는 공중정원은 사실 기무사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본 경복궁.

이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통해 작가는 역사가 어떻게 구성되고 당대의 믿음을 이끌어내는지를 보여준다. 기무사야말로 그런 믿음을 양분으로 지탱되어 온 제도가 아닌가.



메멘토 모리,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기억할 것

하지만 어떤 공간의 변환도 그 역사적 기억을 직시하지 않고는 이루어낼 수 없는 법. 많은 작가들이 냉전과 독재로 비틀린 한국사회의 근현대를 돌아본다.

시대의 역동 속에 사라진 사람들의 얼굴을 그린 정석희의 애니메이션 '어디로 갈 것인가', 북한의 풍경에서 분단현실을 비추어보는 노순택('붉은 틀')과 백승우('블로우 업')의 사진 작업들, 북한의 전기 부족 사태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상황을 담은 박찬경의 '정전' 등이 그 예다.

정윤석의 '별들의 고향'은 기무사와 결부된 비극을 본격적으로 언급한다. 80년대 군부정권을 이끈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이곳 보안사령관 출신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

작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저격당한 후 기무사 내 병원을 찾아왔음을 상기시키며 이곳을 "70년대를 종언하는 마침표이자 80년대 시대적 비극의 출발점"으로 자리매긴다. 국가가 인권을 탄압하고, 한국사회가 "분열의 운명"에 빠진 기억의 저장소이자 전시장으로서 기무사를 기억할 것을 요청하는 작업이다.

백정기는 한켠에 이상적인 정원을 만들었다. 잎이 초록이고 나뭇가지는 갈색이고 흙은 누렇고 물은 파랗다. 그런데 이상할 만큼 이상적이다. 각각의 색 페인트로 자연물을 덧칠한 탓이다. 이 정원의 이름은 '푸르게 푸르게'다. 기무사가 군사기밀임을 내세워 수많은 사건을 은폐해온 곳임에 상징하는 작업이다.

"전시 기간 동안 페인트가 칠해진 나무와 잔디들은 광합성과 호흡이 어려워 시들어갈 것이고, 연못의 물은 점점 썩어갈 것이다. 하지만 색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은폐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더욱 푸르게 보이게 하는 페인트에 의해서 말이다."

이런 작업들은 기무사의 역사를 붙듦으로써 현재와 미래를 구상하자는 제안이다. 그것을 의미하듯 한 벽에는 멈춘 시계들이 빽빽하게 걸려 있다. 선우용의 '정지된 시간'이다. 작가는 "어떤 시간보다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정지된 시간을 가지고 과거의 기억들을 더욱 중요하게 만나는 계기를 만들어보고자 했다."

해외 작가들의 작업은 한국사를 세계사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시선을 제공한다. 스웨덴 작가 마그누스 배르토스는 한국 영화배우 최은희와 그의 남편이자 영화감독인 신상옥이 납북된 일을 재구성한다.

그들이 북한에서 만든 영화 <불가사리>(1985)는 "북한의 핵 보유를 정당화하는 내용"으로 해석된다. 이 사연은 핵무기들이 은밀히 보관되었던 미국 미사일 기지의 모습과 나란히 놓이면서 냉전의 한 풍경이 된다.

베트남 작가 투 반 트랑은 반쪽 피아노 두 개를 맞붙인 형태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이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자국 사회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이 형상은 남북으로 갈린 한반도의 지형과 겹치면서, 정치적 이해관계가 세계를 어떻게 분열시키고 갈등을 일으켰는지 생각하게 한다.

작가 네드코 솔라코브가 불가리아 비밀경찰과 협업한 기록인 'Top Secret', 스파이들의 밀회가 이루어졌던 극장, 공원, 동물원 등의 장소들을 찍은 토모코 요네다의 사진 작업 'The Parallel Lives of Others-Encounter with Sorge Spy Ring' 등은 일상에 스며든 냉전 논리를 포착한다.

서슬 퍼렇던 기무사에 불어넣은 파란 생명력

하지만 인간의 어떤 어리석음이나 역사적 과오 앞에서도 이상향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힘이다. 문건호는 본청 건물 지하 벙커에 우리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방을 꾸몄다.('너무 잘 두어서 찾을 수 없는 것들')

자본주의 하에서 공격성을 최대화하고, 고된 노동을 하며 사는 우리를 상징하는 수사슴과 수달이 관객을 맞는다. 중심에는 화장대가 놓여 있다. 내면을 들여다보란 이야기다. 그리고 열린 서랍 속에는 <전태일 평전>이 들어 있다. "소중한 것을 잊지 말자"는 충고다.

복지관 옥상에는 온실이 꾸며졌다. 건강한 식물이 가득하다. 작가 우순옥은 "서슬 퍼렇던 기무사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려는 취지"라고 말했다. 그동안 한 방에서는 심장이 뛴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는 관객들이 자신의 심장 박동을 듣고, 기록할 수 있는 '병원'을 만들었다. 전시 기간 내내 기록된 심장 박동 소리는 CD에 담겨 기억될 예정이다.

이 모든 메시지가 뒤엉킨 <플랫폼 인 기무사>는 그 자체가 미로 같다. 심지어 모서리마다 거울이 붙어 있어 공간 감각이 흩어지는 복도도 지나야 한다. 하지만 다양한 '체험'들은 이 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장 적실한 소실점으로 모아진다. 바로 역사를 극복하는 출발점은 인간의 불완전함과 그에서 비롯된 현실의 혼란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교훈이다.

그리고 마침내 다다른 가장 넓고 환한 전시장, 체육관에서 우리는 이불의 'Aubade'와 마주하게 된다. 이 '라이트타워' 작품에서는 유토피아,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에 대한 단어들이 반짝인다. 세계 공통의 언어로 기획된 에스페란토어다. 저 불가능하지만 낭만적인 꿈이 폭력과 억압의 잔재에 깃들었다.

이 전시는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옛 기무사 터에서 열린다. 오후 2시, 3시, 4시에는 도슨트 투어가 마련되며 5시부터 9시까지는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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