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읽기] 웃음·시청률 등 위해 과장되고 윤색되며 심지어 날조되기까지

1-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은 스타의 비밀을 상품화하는 데일조한다. SBS <한밤의 TV연예>의 한 장면. 2- KBS <연예가중계>의 한 장면.
1-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은 스타의 비밀을 상품화하는 데일조한다. SBS <한밤의 TV연예>의 한 장면.
2- KBS <연예가중계>의 한 장면.

말할 수 있는 비밀은 비밀이 아니다, 라고 우리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요사이 비밀의 트렌드(?)는 대중 앞에서 노골적으로 폭로할수록, 오히려 비밀의 상품성을 보장 받는 것인 듯 하다. 특히 스타들의 비밀은 원래부터 존재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폭로되는 것이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에서 '웃음의 필요성'으로 인해, 혹은 '시청률의 상승'을 위해, 사후적으로 과장되고 윤색되며 심지어는 날조되기에 이르렀다.

여기저기서 '폭탄 고백'을 터뜨리는 연예인들은 오만 년 전의 열애설을 굳이 이제 와서 헤집어 자신의 이름을 검색어 순위에 올리고, 공공연한 비밀을 '시간차 공격'의 기법으로 재가공하여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콘텐츠로 제공하고 있다. 비밀의 시의적절한(?) 폭로는 노이즈 마케팅의 기본 공식이 되었다. 그러나 폭탄 고백의 일상화로 인해 이제 그 어떤 폭탄선언도 그다지 폭발적인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는 비밀의 마지노선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시대, 그 어떤 비밀도 상품으로 유통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스타의 스캔들, 특히 열애설을 다룬 기사는 전통적인 비밀 담론의 전형이었다. 필사적으로 열애설을 숨기다가 결혼식에 임박해서야 커플임을 밝히던 과거의 수줍은 연애 풍속과는 달리, 신세대 연예인들은 과감히 열애설을 스스로 터뜨린다. 열애설을 유포함으로써 무명 연예인이 하루 아침에 셀러브리티로 급부상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애인이라는 사실만으로 검색어 순위는 따 놓은 당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명세를 얻는 대신 달콤한 비밀 로맨스의 설렘을 포기해야 한다.

결별 또한 대표적인 노이즈 마케팅의 상품이 된지 오래다. 대중에게 주목 받는 커플일수록 결별의 기사화는 당사자의 더 큰 고통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급증하는 열애설과 결혼설뿐 아니라 스타들의 '이혼' 소식을 각종 연예계 뉴스나 예능프로그램에서 단골 아이템으로 접하게 되었다. 일주일에도 몇 개씩 터지는 열애설과 결혼설과 이혼설에 지친 대중은 이쯤 되면 마음속에 거대한 물음표를 그릴 때도 되었다. 우리가 왜 그 소식을 일일이 알아야 하는가.

이 모든 시시콜콜한 열애'설'을, 이 모든 천신만고의 이혼과정을, 우리가 꼭 알아야만 하는가. 우리가 이 사실을 앎으로써 '이득'을 얻는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스타들에게 비밀을 쥐어짜내어 그것을 대중에게 미끼로 던지는 이 마케팅 전략은 진정 '소비자의 니즈(needs)'로 인해 탄생한 것인가.

또 다른 비밀 마케팅의 새로운 트렌드는 바로 스타들의 재산 공개다. '누가누가 수십억 대의 부동산 재벌이라더라!', '누가누가 주식으로 대박을 터뜨렸다더라!'라는 '카더라 통신'은 이제 더 이상 풍문으로만 떠돌지 않게 되었다. 재테크 기술의 공개는 스타 마케팅의 일부가 되었다.

<골드 미스가 간다>에서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사랑스러운 여배우와 개그 우먼들이 자신의 통장 잔고와 부동산을 '결혼 골인 가능성'의 제1변수로 생각하고 기꺼이 재산 명세를 공개하는 장면은 최근 비밀 마케팅의 경이로운 진화를 입증했다. 뿐만 아니라 '비밀이라 할 수 없는 것'도 '폭탄 선언'의 형식을 거치면 거침없이 '대단한 비밀'로 격상된다.

초특급 수퍼스타에 관해서는 그 스타와 아주 작은 '관계'만 있어도 별별 사소한 것들이(즉 예전에는 비밀 축에도 끼지 못하던 것들이) 비밀로 가공된다. 가장 위험천만한 비밀 공개 마케팅은 스타들의 자녀들을 언론에 노출함으로써 '스타성'을 높이는 마케팅이다. 매일매일 파파라치들에게 사진을 찍혀 카메라 노이로제에 걸린 안젤리나 졸리의 아이들과 톰 크루즈의 딸 수리를 보면, 저들이 과연 '사진처럼'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성형 고백도 대표적인 노이즈 마케팅의 아이템이 되었다. 성형을 당당히 고백하는 행동 자체를 미화하는 또 하나의 권력, 그것은 스타의 '비밀'조차 성형의 대상으로 삼는 신출귀몰한 미디어 전략이 아닐까.

3- SBS <야심만만2>의 한 장면. 4- MBC <라디오 스타>의 한 장면. 5- MBC <놀러와>의 한 장면.
3- SBS <야심만만2>의 한 장면.
4- MBC <라디오 스타>의 한 장면.
5- MBC <놀러와>의 한 장면.

비밀 없는 삶의 가난함은 회복 불가능한 빈곤이다. 돈은 벌면 되지만 비밀은 벌 수가 없다. 한 번 노출되는 순간 그 비밀의 소중함은, 그 비밀의 신비는 흔적 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휴지통에 들어가 버린 스팸 메일처럼 다시는 복구할 수 없는 우주미아가 되어버리는 가련한 비밀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상품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가공과 포장을 거듭하고 있다.

비밀을 상품화시킴으로써 진정 가난해지는 것은 연예인들 뿐 아니라 시청자들 스스로의 영혼이다. 사람들이 원하니까, 시청률이 나와 주니까, 이런 식의 폭탄고백 마케팅을 기획한다지만, 뭔가 순서가 바뀐 것 같다. 시청자의 시선의 높이는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지 않았다. 미디어가 시청자의 눈높이를 창조하고 조절하고 길들이는 것이다. 비밀이 될 수 없는 비밀들, 혹은 끝까지 진정한 비밀이어야 하는 것들을 '유통되는 비밀'로 날조하는 미디어의 권력은 비밀을 타자화시킴으로써 우리의 삶을 타자화시킨다.

니체는 화제가 궁할 때 자기 친구의 비밀을 폭로하지 않는 자는 드물다고 했다. 비밀은 원래 누설되기 쉬운 아슬아슬한 자산이며, 한 사람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공유할 때 더욱 매혹적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소중한 비밀은 다른 누군가의 심심풀이 땅콩으로 전락함으로써 그 고귀한 가치를 상실해 버리고 만다. 사람들이 쉽게 수군거리는 비밀이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될 때도 많다. 영화 <올드 보이>는 타인의 비밀을 무심하게 유통시킨 자의 처절한 말로를 끔찍하게 형상화하지 않았던가.

소설가 이상(李箱)은 비밀의 가치는 황금과 기꺼이 맞바꿀 정도로 막강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비밀 없는 삶은 재산 없는 삶보다 더 가난하며 불쌍한 삶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에게 달콤한 비밀이 존재하는 한, 주머니에 푼돈이 없을망정 천하를 놀려먹을 수 있는 실력을 가진 큰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비밀로 인해 남몰래 풍요로워질 수 있다. 비밀을 간직한 자의 여유롭고 신비로운 표정은 언제 봐도 매혹적이다.

그는 그 비밀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음으로써 누구도 빼앗지 못할 무형의 자산을 거머쥐게 된다. 비밀은 우리 마음속에 있을 때 보석처럼 빛나지만, 비밀이 마음 바깥으로 탈출한 순간 우리는 비밀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정여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