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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만화 '꽃보다 남자' 대만서 드라마로 먼저 만들어진 이유는?

한·중·일 3개국 제작자 감독, 숨겨진 뒷얘기 공개… 문화·인류학적 차이 실감
  • (왼) 대만의 유 순 차이감독 (중) 한국 송병준 대표 (우)일본 이시 야스하루 감독
"처음에 제작사 대표가 만화(꽃보다 남자)를 들고 와선 만화 영화처럼 만들어 보자고 말했습니다. 주인공이 하늘을 날아 다니고 하는 그런 장면으로 말이죠. 그래서 '난 그런 것은 못한다' 대신 멜로물로 만드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고 제안했습니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대만판을 만든 유 순 차이 감독의 말이다.

한국과 대만, 일본 동아시아 3국에서 제작, 방영되며 대성공을 거둔 드라마 '꽃보다 남자'. 이들 3국의 제작자 감독들이 드라마의 화려한 성공 커튼 뒤에 숨겨진 비화를 공개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주관, '국제방송영상견본시 및 포럼(BCWW2009)' 행사 일환으로 최근 열린 글로벌 미디어포럼에서다.

자리를 함께 한 이들은 한국 송병준 대표, 대만의 유순차이 감독, 일본 이시 야스하루 감독 등 3개국 제작자와 감독들. 이들은 한자리에 모여 원작 해석에 대한 문화적 차이에서부터 드라마 기획, 제작 스토리, 성공 비결 등을 있는 그대로 털어놨다.

꽃보다 남자가 드라마로 활짝 꽃을 피우게 되는 물꼬를 처음 튼 나라는 대만. 왜 일본 만화인데도 일본에서 먼저 드라마로 제작되지 않고 대만이 첫 기착지가 됐을까? 드라마 속에서, 일반 뉴스 속에서 결코 드러나지 않던 뒷얘기가 대만과 일본 감독의 입에서 슬며시 터져 나왔다.

"오랫동안 일본에서는 순정 만화가 TV에서 드라마로 제작돼 성공한 경우가 없었습니다. 이전에도 만화 원작의 드라마가 히트한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었죠." 일본의 이시 감독은 "그렇다고 대만의 성공을 보고 뒤따라 하게 된 것은 아니다"고 자존심을 의식한 듯 말했다. "제작사 내부적인 사정으로 2005년 어느 날 갑자기 제작이 결정돼 촬영에 들어가게 됐다"고 그는 덧붙였다.

2002년에 대만에서 처음 드라마화된 계기도 조금은 우연적 요소를 담고 있다. 버라이어티성 작품을 많이 만들던 2명의 드라마 공동 제작자가 원래 비즈니스 업무상 만화에 관심이 많아 여러 작품들을 살펴 보고 있던 차 꽃보다 남자가 발탁됐다는 것.

그렇다고 꽃보다 남자의 드라마 1탄 격인 대만판이 확실히 성공이 보장된 것처럼 보였다고 단언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대만 유 감독의 말대로 만화처럼 만들어졌다면 지금의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어서다.

만약 유 감독이 '그러자(만화처럼 만들자)'고 동의했다면 3국에서의 성공 스토리는 전혀 쓰여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만약 만화처럼 갔다면 성공했을까?"라는 질문에 심각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하곤 "답변하기 매우 어렵다"고 여지를 남겼다.

선풍을 일으켰다 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둔 드라마이니만큼 첫 번째 제작자도 성공을 확신했는지도 궁금거리다. 이에 대해 유 감독은 고개를 젓는다. "사실 어느 정도는 성공을 기대했지만 지금 같은 성공은 상상을 못했습니다." 실제 그가 제작한 드라마 꽃보다 남자 대만판은 후반부로 갈수록 멜로 요소가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꽃보다 남자(하나요리 단고)는 원래 일본 작가 카미오 요코가 '마가렛'이라는 잡지에 1992년부터 2004년까지 연재한 만화다. 그런데 이 만화가 드라마나 영화 등 극화(劇化)된 것은 사실 대만판이 처음은 아니다. 대만판 이전 일본에서 이미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한 실패. 지금의 남자 주인공들인 F4와는 전혀 달리 여배우가 타이틀 롤을 맡았는데 큰 인기를 못 끌었다. 이 영화에 대해 알고서 언급하는 사람이 지금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도 흥행의 정도를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드라마틱하게도 일본에서 꽃보다 남자는 다시 영화화돼 큰 성공을 거둔다. 드라마의 성공에 힘입어 영화에서도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 것. 그간 일본에서 TV속 연속 드라마가 영화화돼 성공한 사례가 별로 없었는데 꽃보다 남자는 예외적 케이스가 됐다.

이시 감독은 이에 대해 "원래 영화는 사전 광고나 홍보 마케팅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꽃보다 남자는 그런 부분에서 큰 덕을 미리 봤다"고 분석한다. 시청자나 관람객들이 이미 스토리나 인물에 대해 잘 알고 있어 도움이 된 때문. 이후 일본에서는 예전과 달리 드라마를 영화로 다시 만드는 시도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을 정도로 파급력도 컸다.

한국에서 드라마 극중 인물 구준표와 잔디는 대중의 기억 속에 각인된 이름이다. 그러나 자칫 이 이름들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할 뻔도 했다.

"처음에 원작을 구매하러 일본에 갔는데 첫 번째 요구받은 사항은 만화 속 일본 이름을 그대로 써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번 미팅을 갖고 설득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더 이상 협상이 진행이 안됐었죠. 우리 한국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며 호소도 하고 읍소도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제작자 송병준 ㈜그룹 에이트 대표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일본 이름 그대로 쓸 테니 판권만 달라. 방송국에서 결코 틀 수는 없겠지만 나는 드라마로 제작은 하고 싶다. 안 되는 걸 알지만 그래도 꼭 만들어 보겠다"고 제안한 것.

그리곤 그의 표현대로 '운이 좋게도' 일본 원작자측은 더 이상 일본 이름 사용에 대해 거론하지 않았다. 밟아도 다시 일어나는 이미지이자 단어 '잔디'의 의미처럼 그 역시 '굽히지 않은 덕'에 양보를 받아낸 셈이다.

송병준 대표는 그간 만화적 드라마로 성공을 많이 거뒀다. 그에게는 합당한 이유가 존재한다. "드라마를 통해 사람들에게 안식처, 혹은 도피처를 제공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용 중에 환타지가 들어간 것을 선호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만화를 원작으로 많이 선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요즘 10대, 20대 층은 의외로 TV를 즐겨 보지 않는다. 하지만 송병준 대표는 꽃보다 남자가 이들 연령층을 새로운 TV 고객으로 끌어들였다고 자신 있게 평가한다.

"꽃보다 남자 방영 전 MBC 에덴의 동쪽이 30% 넘는 시청률로 각광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 틈을 비집고 들어가 30% 이상의 시청률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저로서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원래 TV드라마를 보던 시청자층 말고 새로운 시청자를 창출해낸 것이죠."

원래 이 시간대 공중파 3사 시청률은 평균 50% 내외였다. 그런데 꽃보다 남자 방영 후 70%가 나왔다. 이는 평균 시청률 50% 외에 20%를 더 유입시켰다는 증거. 송 대표는 이들이 바로 10~20대 층이라고 분석한다.

3국 중 가장 늦게 드라마화 된 꽃보다 남자는 일본, 대만판과 얼마나 다를까? 송병준 대표는 차별화를 위해 작가들에게 다른 나라 작품들을 많이 접하지 못하게 했다. 되도록 영향을 덜 받도록 각각 2편만 보게해 참조하게 한 것이 그의 전략이다. "전작의 틀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생각에서 전작들이 굴레가 되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습니다."

동일한 원작을 순서대로 3개나 만들자면 누가 가장 힘이 들까? 처음 만드는 사람, 아니면 맨 마지막 제작자? 이에 대해 이들은 원작은 같지만 3개의 작품이 각각 다른 하나씩의 드라마라고 입을 모은다. 뿌리는 같지만 줄기와 잎사귀가 모두 다른 작품들이라는 것.

한국에서 방송 드라마의 벼락치기 제작은 일상화 되다시피한 상황이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일본인 이시 감독은 일본은 사전 제작 관행이 굳어져 있지만 꽃보다 남자 경우는 1년 후 방영하려고 계획이 잡혀 있다 1개월 만에 갑자기 촬영에 들어갔다고 속사정을 밝혔다. 일본 드라마 관행상 특별한 사례라고.

대만 역시 우리 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역시 시간에 쫓겨 제작이 이뤄졌다. 처음에 3개월 전부터 준비하고 2개월 전에는 찍었지만 뒤로 갈수록 시간이 부족, 1주일 간격을 두고 거의 생방송 찍듯 촬영했다. "잠도 못자고 제작에 임했습니다."

꽃보다 남자가 만약 미국이나 유럽에 가서도 우리네와 같은 성공을 거뒀을지도 관심거리다. 서구권에서는 만화 같은 멜로 장르가 별로 인기가 없어서다.

이시 감독은 "지난 해 꽃보다 남자 영화 촬영이 미국 로케로 진행됐는데 촬영장마다 100여명 이상의 팬들이 몰려 다녔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성공이 가능할 수 있다는 증거라는 해석. 다만 그는 "영화에 자막을 넣어서는 안되고 새로운 설정과 함께 서구 버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새 안을 제시하며 흥행 가능성에 확신을 보였다.

이들 3인의 제작자는 "3국 3색 드라마를 통해 민족의 국민성이 그대로 반영되고 투영되는 모습을 보며 각 나라의 문화적 인류학적 차이를 실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결론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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