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읽기] 비틀스 디지털 리마스터링 음반 열풍… 스테레오·모노박스 세트 매진
그 다음으로는 CD일 테고, 그 다음은 아마도 LP, 그리고 맨 끝에는 카세트테이프가 있지 않을까 짐작할 수 있다(LP와 카세트테이프의 순서는 사실 장담할 수 없다. 이를테면 카세트테이프 같은 경우 고속버스 휴게소에서의 수요를 고려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자면 (이 글의 필자를 비롯한) 어떤 사람들에게는 마음 아픈 이야기겠지만 오늘날 CD는 음악 감상의 대세가 아니다. 이를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날 CD는 감상의 매체라기보다는 '수집의 매체'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이미 LP는 그 영역으로 사실상 넘어갔다).
경험적인 근거로 내리는 판단이기는 하지만, CD를 사는 사람들도 그걸로 음악을 듣지는 않는다. 포장을 뜯어 CD를 꺼낸 뒤 MP3으로 리핑한 다음 그걸 MP3 플레이어에 넣어서 듣고 다닌다. 그럼 CD는? 집안 한구석에 고이 잘 모셔둘 따름이다. 어쩌면 '비물질(MP3)'이 주는 은근한 불안함을 '물질(CD)'로 달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는 다른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음반시장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은 요즘 나오는 수많은 재발매반들, 그러니까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볼륨을 높이고 소리를 다듬은 다음 '예전에 발표된 바 없던(previously unreleased)' 곡들을 모아서 낸 두 장 혹은 세 장짜리 '디럭스 에디션'이 어느새 CD 판매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재발매는 CD시장의 대세 중 하나다. 새로운 음악을 발굴하는 것만큼이나 옛 것의 재포장이 중요해진다.
따라서 나로서는 이번의 '비틀스 열풍'을 이 리이슈 시장에서 내놓을 수 있는 모종의 정점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2009년 9월 9일에 맞춰 새롭게 발매된 비틀스의 전작 카탈로그와 박스 세트가 무척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비틀마니아의 천국인 일본에서의 열기야 당연한 일일 것이고,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블로그에 계속해서 사람들의 염장을 지르는 '인증샷'을 올리고 있다.
비틀스의 음반들은 이미 1987년에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CD로 발매된 바 있다. 그러니까 지금 나오는 스테레오 버전이 '최초의' 디지털 리마스터링은 아닌 셈이다. LP의 음원을 CD로 변환하는 과정이 1980년대 초반부터였음을 감안할 때 비교적 늦은 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몇몇 예외, 그러니까 <1> 같은 히트곡 모음집이나
소리는 어떨까. 이 부분은 많은 전문가들이 잘 이야기할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개인적인 감상만 언급하는 정도로 그치려 한다. 스테레오 버전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자면, 최근 음악 레코딩의 화두 중 하나였던 '볼륨 전쟁(loudness war: 사람들에게 잘 들리기 위해 마스터의 볼륨을 높이는 경향. 메탈리카의 최근작
그러나 단순히 볼륨이 올라간 데서 그친 것은 아니고, 드럼과 베이스 등의 '타격감'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그래서
이 음반들을 듣다 보면 '모든 세대는 자기 나름의 비틀스를 갖는다'는 말이 적어도 비틀스에게는 허용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그것이 이렇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다음에야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살짝 의문이 드는 것은, 어째서 EMI는 비틀스의 곡들을 디지털 음원 시장에 내놓지 않는가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음반사 쪽에서 뚜렷한 입장을 밝힌 기억은 없는 것 같다. 이번 비틀스 음반의 재발매가 리이슈 시장의 정점인 것(즉 충성스러운 팬들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은 동의하겠지만 음악 시장의 다른 판로를 뚫지는 못했다는(즉 새로운 팬들을 확보하기는 어렵다는 것) 느낌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음반과 동시에 디지털 음원도 풀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최민우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