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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연인 향한 열정의 소용돌이

[음악과 미술의 하모니] (18) 터너와 슈만
격정적 붓 터치·환상적 색감, 현란한 음표의 움직임으로 극한 감정 전달
  • 터너 자화상(왼쪽), 클라라 슈만과 로버트 슈만(오른쪽).
한 편의 극적인 드라마를 본 듯한 그림과 음악이 있다. 이 격렬한 드라마는 한 장의 그림을 통해, 또 한편의 음악을 통해 강렬한 색채를 내뿜으며 우리 마음 속으로 파고 든다.

작품 안에서 하나의 열정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그림의 시인 터너와 음악의 시인 슈만. 이들의 작품은 끝없이 소용돌이치며 우리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고 그들의 불타는 열정은 우리를 그들의 예술세계로 깊숙이 빨아들인다.

터너가 그린 풍경화는 단순히 자연의 경치를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연의 모습을 통해 감정과 느낌을 전달하려 했다. 자연을 바라보고 느낀, 또는 그 풍경 속에서 직접 경험한 감정들을 그림에 그려 넣었던 것이다. 터너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눈보라>를 그리기 위해 직접 배를 타고 폭풍우에 들어가기도 했다. 목숨을 건 시도였다.

그는 배의 기둥에 자신을 꽁꽁 묶어 폭풍우에 날아가지 않도록 하고 불어오는 폭풍을 온몸으로 겪으며 자연을 관찰했다. 어두운 구름이 깔린,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를 가르며 한 척의 배가 자연과 맞서 싸우고 있는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우리가 그 현장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격정적으로 몰아치는 파도와 같이 결렬하고 극한 감정이 그림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다.

터너의 격정적인 붓 터치와 환상적인 색감은 슈만의 현란하게 소용돌이치는 음표들의 움직임과 너무도 닮았다. '환상'이라는 단어를 곡의 제목으로 자주 사용했던 슈만은 그의 열정을 음악에 담고 있는데 그 중 <환상 소곡집 Op. 12>의 5번째 곡인 <밤에>라는 작품은 앞서 언급한 터너의 <눈보라>을 연상케 한다.

  • 1) '노예선' 2) '눈보라' 3) '전함 테메레르 호'
슈만이 사랑했던 여인 클라라를 생각하며 작곡한 이 곡은 그녀를 향한 격정적인 사랑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자신의 스승이자 클라라의 부친이었던 비크(Friedrich Wieck)의 반대에 저항하여 이룬 사랑이기에 더욱 더 정열적이고 열정적이었던 슈만의 사랑은 밤의 폭풍만큼이나 저돌적이고 격렬한 것이었다. 또한 폭풍을 뚫고 나아가는 돛대만큼이나 간절하고 대담한 것이었을 테다. 슈만은 이 곡에 대해 다음과 같이 클라라에게 쓰고 있다.

"작곡을 마치고 나서 이 곡이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걸 알아내고는 무척 기뻤습니다. 당신도 잘 알고 있지요? 레안드로스가 매일 밤마다 바다를 헤엄쳐 사랑하는 사람이 횃불을 들고 기다리는 등대로 가는 것 말입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로맨틱한 옛날 이야기지요. 저는 <밤에>를 연주하면 이 생각이 떠오른답니다. 그가 먼저 바다에 뛰어들어요. 그리고 그녀가 부릅니다. 그가 대답하지요. 그리고 그가 파도를 가르고 땅에 안전하게 도착합니다. 그리고는 헤어질 때까지 꼭 껴안고 아름다운 음악이 흐릅니다. 어둠이 모든 것을 다시 감쌀 때까지 헤어지기가 너무 힘듭니다. 당신도 이 음악을 들으면 이렇게 느껴지는지 알려주세요." (1838년 4월)

<환상 소곡집 Op. 12>는 총 8개의 곡으로 구성되어있으며 각각 <석양> <비상> <어찌하여> <변덕스러움> <밤에> <우화> <꿈의 얽힘> <노래의 종말>이라는 표제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각 곡이 특정한 감정이나 내용 등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음악을 표제음악이라고 부르는데 터너의 그림 역시 특정 그림마다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특정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작품으로 <노예선>은 "죽은 자들과 죽어가는 자들을 바다로 던지는 노예 상인들, 태풍이 다가온다"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터너는 이 그림을 통해 아픈 역사를 꼬집는다. <노예선>은 1780년대 초에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실어오던 배에서 전염병이 돌자 보험금을 노린 선장이 노예들을 바다에 던져버린 사건을 그린 그림이다.

산 자와 죽은 자들을 바다에 섞어 버리자 바다 물고기와 갈매기들이 몰려와 그들의 살점을 뜯어먹고 있다. 바다와 하늘은 피와 분노로 붉게 물들어 있고 파도는 소용돌이친다. 터너는 이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일어나서는 안 될 그 사건을 고발함과 동시에 각성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외에도 그는 <불타는 국회의사당>과 <전함 테메레르호> 등의 작품을 통해 많은 사회적 메시지를 던졌다.

화가로서의 인생 이외의 터너의 사생활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터너 자신이 알리기를 꺼려했던 탓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터너에게 사라 데비 (Sarah Daby)라는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딸이 있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너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는데 이는 어릴 적 정신병으로 죽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정신병으로 죽은 어머니를 둔 터너와 마찬가지로 슈만 역시 정신병으로 죽은 아버지가 있었다. 슈만의 정신병은 유전적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의 누이도 정신병으로 인한 자살로 목숨을 잃었고 슈만 역시 라인 강에 투신하는 자살 시도 끝에 결국 정신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그와 클라라 사이의 아들 중 한 명도 후에 정신병으로 삶을 마친다. 터너 역시 말년에는 우울증 증세를 보였고 아무와도 연락하지 않은 채 은둔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빛의 화가로 불리는 터너는 죽기 전 "태양은 신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유럽을 30회가량 여행하며 약 3만점의 작품을 남긴 풍경화가 터너의 자연에 대한 열정과 사랑, 클라라에 대한 끝없는 폭풍우와 같았던 슈만의 정열적인 사랑을 보았다.

열정과 사랑이란 감정은 어떤 것을 향하든 간에 비슷한 정도의 소용돌이로 몰아치는 것일까? 그들의 작품은 우리들의 마음 속에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과 환상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로 마음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요동친다. 터너가 그토록 사랑했던 뜨겁게 타오르는 저 태양처럼 말이다.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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