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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공연 저널리즘, 그 해법은

고답적이고 지루한 콘셉트 '그들만의 매거진' 독자들 외면
'공연 저널리즘 서울 포럼' 9개국 전문가 초청 비평환경 논의
저널리즘의 위기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90년대 이후 끊임없이 도마에 오르는 문예 저널리즘의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주례사 비평이라는 말을 '유행'시켰던 문학계는 언론 매체와의 유착과 스타작가와의 긴밀한 공조 속에 몇몇 출판집단을 하나의 문화권력으로 만들었다.

미술계는 더 심하다. 보도자료에 딸려 오는 비평가들의 글은 난해하고 현학적인 서구 이론으로 포장되어 작가의 작품세계를 형이상학적으로 칭찬하기에 바쁘다.

또 잡지 전성시대를 맞으며 한때 문학 못지않은 위치를 자랑했던 영화 저널리즘은 올해 들어 영화잡지들이 잇따라 폐간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예술가들과 평론가 그리고 독자 혹은 애호가들은 끊이지 않는 위기설에 촉각을 세우고 비관하거나 다시 희망을 품기를 반복하고 있다.

왜 공연 저널리즘의 위기를 말하나

하지만 공연 저널리즘에서 위기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위기'란 것은 한때 잘 나가던 위치가 추락하면서 맞게 되는 것인데, 공연 저널리즘은 이제까지 주류화되거나 본격적인 제도화의 시도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위기를 맞이했다고는 하나 어떤 독자들은 여전히 문예지를 주목한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건 비판하기 위해서건, 기본적인 관심과 필요성을 여전히 저널리즘에서 느끼는 까닭이다. 얼마 남지 않은 영화잡지에 실리는 영화평 역시 여전히 관람 전의 영화를 선택하는 한 가지 기준이 된다. 비록 배급사의 트레일러나 시사회의 '알바' 리뷰가 더 큰 영향력을 갖기는 했지만.

이런 측면에서 공연 저널리즘은 아이러니하게도 위상의 변화가 없다. '누가 읽을까' 싶은 전문지들은 판매부수와 관계없이 굳건하게 서점에 쏟아지고 있다. 폐간되지 않고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소수의 연극잡지와 뮤지컬잡지, 그리고 의외로 가장 다양한 종류를 자랑하는 춤잡지들은 공연 저널리즘의 위기를 무색케 한다. 그만큼 이 잡지들을 애호하는 충성스러운 독자층이 있기 때문일까.

오늘날 관객들은 공연 정보를 얻고 이해하기 위해 특별히 공연 저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신문지면에서 가볍게 소개되는 프리뷰 정도로도 관객을 공연장으로 이끌기는 충분하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미처 다 이해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의문은 누가 채워줄까. 관객에게 전문 저널리즘의 역할이 필요할 때쯤, 공급과 수요는 만나지 못하고 허무하게 소멸된다.

공연잡지들이 '전문지'라는 미명 아래 전공자와 전문가만이 공유할 수 있는 그들만의 언어와 시각으로 편집 방향을 잡기 때문이다. 나름의 대중적 색채를 가미하려 하는 매체는 유익함을 잃고 단순한 지면 낭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편집 방향이 독자의 요구와는 무관하게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답적이고 지루한 콘셉트를 유지하고 있는 공연잡지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한 공연 관계자는 이제 해당 분야 종사자마저 더 이상 공연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털어놓는다.

공연 비평이 읽히지 않는 이유

그러니까 오늘날의 공연 저널리즘의 위기는 비평이 제 몫을 하다가 못하게 되어 위기를 맞은 것이 아니라,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에서 더 나아질 것도 없고 그를 위한 본격적인 노력도 별반 없는 환경에 대한 위기이다. 한 마디로 총체적 국면에서의 위기인 셈이다.

공연 저널리즘이 '진짜' 위기인 까닭은 여기에 있다. 독자에게 다가가지 않는(못하는) 저널과 저널을 필요로 하지 않는 독자들의 대치가 고착되어 있는 것이다. 현대춤 전공 대학생 김영무(25) 씨는 "학교 도서관에서 가끔 춤잡지를 보긴 하지만 별로 재미가 없어서 금방 내려놓는다"고 말한다. 왜 재미가 없느냐고 묻자 "공연 소식이나 인터뷰 기사는 관심 있는 것이 아니면 읽지 않고, 비평가들의 공연평은 너무 어려워서 공감이 가지 않는다"고 답했다. 대신 그가 자주 보는 것은 영화잡지나 만화책. 이유는 이해하기 쉽고 읽다 보면 안무 아이디어도 종종 떠올라 재미있기 때문이란다.

어려운 글은 읽기 싫어하는 철부지 학생의 변명 같기도 하지만 그 대답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재미가 없는' 글은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중영화나 만화처럼 가벼운 오락거리로서의 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읽는 재미'에 관한 얘기다.

신혜진 공연칼럼니스트는 "최근 인터넷에서 쓰여지는 영화나 드라마 비평이 네티즌들에게 인기 있는 것은 기자나 비평가가 작품의 플롯이나 내러티브, 인물 분석에 있어 다양한 비평 도구를 활용해 해석을 풍부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반면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신문 지면의 춤 평론(리뷰)은 풍부한 해석이나 분석보다는 '좋았다'와 '실망스럽다' 등의 단선적인 평가에 그치고 만다는 것이다. 결국 이는 비평가의 역량이 저널리즘 위기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의미다.

신문이 못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공연 전문지의 비평도 상황은 비슷하다. 연극이나 일부 춤전문지의 경우 독자를 배려하지 못한 지나친 현학성이 머리를 아프게 만든다. 비평가로서의 균형 감각을 잃은 글들도 자주 눈에 띈다. 작품 자체에만 빠진 나머지 사회적 의미를 찾는 데는 소홀히 하거나 편파적인 시각으로 무리한 결론을 도출하는 시도도 있다.

무엇보다 비평가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이 부족한 글들은 현장에 관계된 동종업자마저 고개를 돌리게 하는 요소다. 비평에 반드시 들어갈 기본적인 요소가 빠지거나 개인적인 감상만 늘어놓는 수필 같은 글, 연출자나 안무가의 영역을 침범해 '훈장질'을 하는 글, 시대적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뒤처진 개념으로 작품 분석을 버거워하는 글은 우연히 공연잡지를 집어든 독자들을 잃게 만드는 비평이다.

비평가가 말하는 공연 저널리즘의 해법

하지만 국내 공연예술 비평가들도 저널리즘 위기의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가 주최하는 공연 저널리즘 서울 포럼(Seoul Performing Arts Critics Forum)은 세계 각국의 영향력 있는 공연예술 전문 저널리스트들을 초청해 저널리즘의 현재를 나누고 미래를 고민하는 자리.

특히 지난해 포럼의 주제는 '오늘날 춤 비평의 위기(Obstacles of Dance Critics - Artists, Media and Society)'여서 비평의 방향성, 대중매체에 글쓰기의 한계, 예술가와의 갈등 등 현재 국내 공연 저널리즘과도 맞닿아 있는 논의가 심도 있게 진행됐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포럼은 '관객-예술가간 소통의 매개자로서 저널리즘의 역할'을 주제로 열렸다. 영국, 이스라엘, 독일, 호주,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한국 등 9개국의 영향력 있는 공연예술 전문 저널리스트들이 참여해 각국의 비평 환경을 나눌 수 있는 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춤평론가이나 춤역사연구가인 중국의 지앙 동은 첫 번째 주제발표자로 나서 '춤 비평 - 무엇을, 왜 어떻게'를 발제했다. 그는 "비평이란 관객이 예술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에게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와 함께 그는 중국에서는 '비평'이라는 말이 '비판'을 의미하기에 조심스럽게 쓰인다고 전했다. 또 여전히 춤 예술이 정부의 지원과 관심을 많이 받는 장르이기에 평론가 역시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한 글쓰기나 태도가 전제되어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발표자인 독일의 프란츠 안톤 크라머는 평론가의 임무를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자명하게 보이는 것을 비평할 수 있도록 해줘서 미적인 경험 이상의 장을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일본의 무토 다이스케는 자국의 춤 현상과 비평 상황을 예로 들며 '자아비판'을 해 참석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다. 특히 일본 내의 유럽 추종과 그런 추종에의 거부 경향을 언급한 그는 "공연을 공연 자체로만 경험하고 사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사회학적 관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작품 자체를 즐기되 평론가는 작품 밖에서 초월적인 자세를 가지고 작품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자세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토는 '현재의 일본에는 이런 평론이 없다'고 탄식하며 자국 내 상황을 성토했다.

마지막 발제자로 나선 한국의 김채현 평론가는 21세기 문명의 변동과 그에 따른 춤 변동의 세태를 언급하며 공연 저널리즘의 변화도 필연적임을 역설했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내세운 것은 '사이버 춤 저널리즘'.

그는 "저널리즘 일반에서 이미 사이버 공간이 주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이에 따라 사이버 춤 저널리즘은 현재의 비평을 일거에 도약시킬 기폭제 혹은 보완책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그는 "디지털 세계에서 비평은 원래의 본분을 잃고 리뷰나 리포트로 변질될 수 있는 만큼, 더 각별하게 비평정신을 유념해야 한다"고 변동에 따른 새로운 비평의 다른 가능성도 경계했다.

타 장르가 비평의 죽음을 선언할 때 공연 저널리즘은 그 위기마저 느낄 수 없었다. 그만큼 너무나 오랫동안 저널리즘이 공연 환경에 현실적인 영향력을 크게 미치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널리즘, 특히 비평의 의미는 예술의 부침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 나은 예술 창작과 향유의 환경 조성을 위해서도 좋은 비평, 저널리즘은 반드시 필요하고, 그에 대한 수요 역시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은 이번 포럼에서도 드러났다.

장르 저널리즘 본래의 위치를 찾음과 함께 급변하는 문명에 적응하는 기민한 비평 등 공연 저널리즘이 갈 길은 여전히 멀다. 그러나 독자의 오랜 외면을 돌리기에는 침체됐던 저널리즘 환경에 대한 개선의 노력과 의지가 여전히 부족한 현실은 공연 저널리즘의 전망을 낙관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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