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리뷰] 메르세데스 소사의 '칸토라'라틴아메리카 슈퍼스타들과 4년 만에 발표한 빛나는 신보가 유작으로

올해는 유독 큰 별들이 진다. 마이클 잭슨 죽음의 충격이 가셨나 했더니,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 1935-2009)의 부고가 들려왔다. 민중의 삶 한가운데서 함께 울고 웃었던 '민중의 어머니',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그녀를 이렇게 불렀다.

1960년대부터 '누에바 칸시오네로(새로운 노래)'운동에 참여한 이후, 아르헨티나 최고의 암흑기였던 1970년대~80년대에도 노래로서 군부독재에 반대하고 민중을 위로했던 소사.

수차례 체포, 수감되었던 그녀는 1979년 300여 명의 관객 앞에서 체포되었고 1980년 마드리드로 망명했다. 이 시기에 남편과 건강까지 잃었다. 1982년 소사는 위험을 무릅쓰고 귀국해 콘서트를 열었고 아르헨티나 국민은 '끊이지 않는 기립박수'로 이 담대한 여인에게 화답했다.

"나는 전 세계 민중을 위해 노래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노래는 변합니다. 내가 1982년 아르헨티나로 돌아왔을 때, 나는 무대 위에서 국민에게 새롭게 표현해야 할 방식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건 국민에게 용기를 잃지 않게 해주는 것이었어요. 왜냐고요? 아르헨티나에 산다는 게 투쟁이거든요. 아니, 라틴아메리카에 산다는 게 그렇지요. 나는 그들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소사는 1980년대 유럽과 북미와 남미에서 순회공연을 통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밥 딜런, 스팅, 파바로티가 그녀에게 지지를 표했고 유니세프 인권대사로도 활동했다. 2003년 엘지아트센터에서의 내한공연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지병인 심장병 악화로 무산되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치열하게 일생을 살아온 메르세데스 소사가 결국 건강 악화로 일흔 넷에 생을 마감했다. 아르헨티나에는 3일간 그녀를 애도하는 조기가 게양되었고 국민은 오열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슈퍼스타들과 함께 4년 만에 발표한 빛나는 신보 '칸토라'는 유작으로 남게 됐다. 듀엣 형식의 노래는 아르헨티나에서 2장의 앨범으로 발매되었지만 한국 발매는 그 중 19곡을 추린 인터내셔널 버전이다.

아르헨티나 록의 선구자들로 추앙받는 피토 빠에즈와 찰리 가르시아, 구스타보 쎄라띠, 인기 팝 가수 디에고 또레스, 브라질의 거장 까에따누 벨로주, 그리고 콜롬비아 출신의 팝 스타 샤키라 등 30여 명의 내로라하는 뮤지션들이 참여했다. 앨범 속 그들의 랑데부를 듣고 있자니, 마치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오마라 포르투온도와 이브라힘 페레르의 듀엣을 들을 때처럼, 감미로움 이상의 존경심과 감동이 우러나온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