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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속 잃어버린 좌표를 찾아서

[미디어아트프리즘] 아이언 모트의 '사운드 매핑: 장소의 확정'
GPS란 매체 활용 추상적 공간 아닌 장소의 발견 위한 도구로 시험
  • 1-아이언 모트 사운드 매핑
    2-아이언 모트
비교적 하등동물에 속하는 곤충들 중에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몸의 색깔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지닌 것들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른바 보호색을 지닌 곤충들이다.

가령 무궁화 나방은 자신의 신변에 위협을 느낄 때 나무에 앉아서 화려한 색으로 변신하여 나무와 자신을 얼핏 구별할 수 없게 만든다. 보호색이란 주변의 환경에 맞추어 자신의 색깔을 변화시켜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능력인 것이다.

하지만 로제 카이유와(Roger Caillois)는 이러한 보호색의 이론을 반박한다. 그에 따르면 보호색의 가설은 곤충이 주변의 환경을 모방하여 자신의 색을 그것과 일치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전제한다. 곤충이 주변의 환경을 스스로 인식하여 그것을 모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가설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보호색이 실제로 자신의 신변을 지키는 데 유효해야 한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카이유와에 따르면 보호색의 가설은 이 전제들 중 어느 것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가령 무궁화 나방은 현란한 색으로 변신하여 인간의 눈에는 나무와 잘 구별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른 곤충이나 동물로부터 효과적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

  • 1-삼일빌딩
    2-미스 반 데어 로어, 시그램 빌딩
오히려 이렇게 인간의 눈에 잘 식별이 안 되기 때문에 정원사의 정원 칼에 나무와 함께 베여서 죽는 운명에 처한다. 현란한 보호색은 보호색이 아닌 죽음을 자초하는 색인 셈이다. 따라서 카이유와는 보호색으로 알려진 이러한 색의 변신은 결코 '보호'색이 아닌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위험한 사치'일 뿐이라고 한다.

그는 곤충의 몸 색깔이 변하는 이유에 대한 다른 가설을 제시한다. 그의 가설에 따르면 곤충의 색깔이 변하는 것은 자신의 친숙하지 않은 공간에 처하게 되었을 때 느끼는 불안감의 표현이다. 말하자면 낯선 공간에 있을 때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게 된 당황의 상태에서 좌표를 상실한 결과인 것이다.

카이유와는 이를 신경쇠약의 일종으로 표현한다. 하등한 곤충에 신경쇠약을 적용하는 것이 매우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경쇠약을 굳이 인간의 정신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라면 정신적인 불안감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겠지만, 곤충은 그러한 불안감이 직접적인 몸의 변화로 나타난 것으로 충분히 해석될 수 있다.

만약 카이유와의 가설이 옳다면 근대 이후 우리는 공간과 관련하여 집단적인 신경쇠약의 상태에 빠져있는지도 모른다. 근대 이후 사회는 우리에게 기하학적인 좌표로 공간을 정위하도록 끊임없이 강요하였기 때문이다.

공간은 항상 동서남북의 엄격한 방향성과 객관적인 길이의 척도에 의해서 정위되었으며 이러한 공간이야말로 공간의 실체라고 교육받았다. 그러나 공간에 실제로 동서남북의 방향이 정해져 있는 것일까? 혹은 동서남북의 방향설정이 인위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에 의해서 방향을 정위해야 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일까?

적어도 일상적인 체험의 세계에서 우리는 동서남북의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서만 공간을 정위하지 않는다. 내 방의 침대는 책상의 오른쪽 뒤편에 있으며 왼쪽으로 몸을 돌려 뛰어들면 바로 침대 위에 풍덩하고 누울 수 있다.

그것은 기하학적인 공간의 체계와는 사실상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내가 앉은 의자와 침대의 익숙한 공간적 관계에 의해서 결정될 뿐이다. 말하자면 공간의 방향설정은 자신에게 친숙한 사물들 및 그것들의 관계, 즉 익숙한 환경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렇게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진 공간은 단순한 기하학적 '공간'이 아니라 특정한 '장소'이다.

사막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혼자 사막에 버려졌을 때 엄청나게 당황할 것이다. 공간적 좌표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사막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사막은 그저 막막한 공간일 뿐 어떠한 장소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막에서 신경쇠약의 상태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 마디로 공간과 관련하여 겪게 되는 신경쇠약이란 자신과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처한 극도의 불안감, 즉 장소성의 상실이다.

근대 이후 건축의 양식과 도시계획은 친숙한 방향체계를 상실할 만큼 획일적인 양상을 띠고 나타났다. 마치 사막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하는 것처럼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방향감각을 상실하였을지도 모른다. 특히 미스 반데어로에(Mies van der Rohe)의 직육면체 건물로 대변되는 국제주의 양식의 출현은 이러한 공간의 획일성을 가속화시켰다. 어쩌면 근대 이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공간과 관련하여 집단적으로 신경쇠약의 상태에 빠져있는지도 모를 노릇이다.

GPS를 활용한 내비게이션은 이러한 신경쇠약의 상태를 매우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매체이다. 사람들은 방향감각을 내비게이션에 의지함으로써 신경쇠약의 상태를 모면한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에 의지할수록 현실 공간에 대한 감각은 더욱 심하게 증발되고 만다.

내비게이션은 플라톤이 글(문자)에 대해서 한편으로는 일시적으로 사멸하는 말을 영원히 기록하기 때문에 좋은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말의 생생함이나 진실을 왜곡한다는 점에서 사악하므로 몸에 좋으면서도 동시에 해로운 '파르마콘'(약)에 비유한 것과도 상통한다.

하지만 호주 출신의 매체 예술가 아이언 모트(Iain Mott)는 GPS를 전혀 다른 공간적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매체로써 활용한다. '사운드 매핑: 장소의 확정'(Sound Mapping: An Assertion of Place)라는 작품은 GPS를 활용한 설치작품이다.

이 작품은 움직임 기록 장치와 GPS 장치가 내장된 여행용 트렁크를 직접 관객이 끌고 도심을 배회하는 일종의 퍼포먼스이다. 이곳에는 미리 내장된 음악이 흐르며, 동시에 트렁크를 들고 돌아다니는 장소의 소리들과 결합된다. GPS 장치를 통해 정확히 특정한 장소의 소리를 담아낼 수 있다.

이후 관객은 자신의 경로를 탐색해 볼 수 있는데 자신이 배회하였던 특정한 장소와 일치하여 그 장소에서 기록된 특정한 소리들이 들려온다. 광장에서의 사람소리, 분수소리 등이 그 특정한 장소와 함께 떠오른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단순한 방향감각이나 지도상의 좌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모든 궤적을 하나의 특정한 장소로서 감지할 수 있게 된다.

GPS 장치 자체는 공간을 극단적인 기하학적 좌표로 나누는 매우 추상적인 공간의 패러다임에 의해서 구성되지만, 아이언 모트는 이러한 매체를 오히려 추상적인 공간이 아닌 장소의 발견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서 시험하고자 한다.

박영욱 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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