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한국으로부터의 반향'기후변화 주제 사진·영상·미술서 공연예술로 확장… 어떻게 풀어낼지 관심

환절기마다 발생하는 황사, 따뜻한 겨울, 빈번한 가뭄과 홍수…. 이제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진 것들이다. 뉴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지구 온난화'와 '오존층 파괴'도 마찬가지다.

이런 이슈들은 알고 보면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일상처럼 다가오고 있다. 인간의 노력으로 피할 수 없는 지구적 차원의 천재지변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후 변화에 관련된 '재앙'들은 결코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다. 이상기온 현상만 해도 석탄, 석유의 사용 증가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이 주 원인으로 꼽힌다. 자동차 배기가스나 프레온가스 사용도 비슷한 맥락이다. 인간의 어떤 '행동'이 결국 해수면 상승을 불러 일으키고 가뭄과 홍수를 일으켜 생태계의 변화를 초래하는 것이다.

최근 다시 유행하고 있는 지구 종말 영화보다 더 비관적인 미래를 맞게 될 가능성이 있는데도 우리는 이런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당장, 도시의 삶이 위협받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종 쓰나미 피해를 입고 있는 동남아시아나 태평양의 섬 주민들에게 이 문제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만약 이들이 사라진다면 그 다음은 누구의 차례일까.

지난 19일부터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열리는 '녹색 한국으로부터의 반향: 문화로 표현한 기후변화(Resonance Green Korea: Climate Change in the Bosom of Culture)'는 이런 경각심에서 출발했다. 국제사회가 당면한 글로벌 이슈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고 해결 노력에 자발적으로 참여토록 호소하는 정부의 '글로벌이슈 문화외교사업'의 하나다. 환경문제가 전 지구적인 차원의 첨예한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체감하지 못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문화예술을 접목시킨 점이 눈에 띈다.

지난해에는 '빈곤'을 주제로 한 사진전을 외교부가 단독으로 주최했었지만, 올해는 문화예술전문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공동으로 주최해 문화행사로서의 예술성과 완성도를 높이게 됐다. 그동안 환경문제는 사진을 포함한 영상, 미술 등의 시각예술에서 빈번히 다뤄온 주제지만, 이번 행사는 다큐멘터리 제작 및 방영, 음악과 전통춤 등 공연예술 분야까지 가세해 종합문화행사가 된 점이 주목할 만하다.

특히 이번 행사는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되는 '2009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5)'의 공식 문화행사로 일찌감치 지정되어 한국 고유의 정서와 기후변화 문제의 만남이 세계인에게 어떤 감상을 전할지 기대된다.

토탈미술관 내부를 촘촘히 메운 사진과 영상들은 우리가 기후변화라는 키워드에서 느낄 수 있는 경각심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아리랑 TV와 협업한 이번 행사에서는 미국의 환경사진작가 제니로스(Jenny E. Ross)와 탤런트 겸 사진작가 박상원이 그린란드와 아프리카 지역을 방문해 사진을 촬영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방영했다. 촬영 과정에서 얻은 사진은 덴마크에서 개최되는 행사에서도 활용될 예정이다.

또 이미지와 설치 작품에서도 인간의 몸을 활용해 환경문제를 이야기하는 장지아와 이동욱, 현대사회의 부산물을 재활용하는 지용호와 문형민, 자연의 숭고함과 그 훼손을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배병우와 홍범, 양아치 등의 작품에선 여전히 문명사회에 대한 비판이 묵묵히 전해져온다.

하지만 이번 행사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역시 새로 포함된 공연예술에서 표현하는 기후 변화다. 특히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이 판소리나 국악기 연주자, 전통춤 전승자 등 전통예술인들이어서 이들이 녹색 환경과 관련한 주제를 어떤 작품에서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가 관심을 끌었다.

행사 첫날 시연된 공연들의 일관된 특징은 자연의 청아함을 환기시켜주는 콘셉트로 진행됐다. 김소희 명창의 딸인 박윤초 명창의 시창 <녹수청산>과 이진용 대금 명인의 <청성자진한잎>, 가야금 연주자 지애리의 <침향무> 독주 등은 하나같이 신선하고 맑은 자연의 공기를 연상시키는 음색을 들려줬다. 인간문화재 하용부의 <밀양북춤>과 국립국악원 부수석무용수 유재연의 <춘앵전>은 정과 동을 아우르는 한국춤의 정서를 특징적으로 보여줬다.

이제까지 공연예술에서 환경문제와의 연관성을 감안해 시도한 작품은 흔치 않았기에 토탈미술관에서 이들이 표현하는 소리와 몸짓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의미를 가졌다. 시급한 환경문제에의 경각심을 일깨우기에는 아직까지는 직접적인 영향력이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문화예술 공연을 통한 문제 환기'라는 실험은 녹색 한국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도라고 할 만했다.

환경인가, 개발인가. 적어도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에서는 개발이 우선 순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장기적인 인류 공생의 관점보다는 단기적인 국가 경제의 부흥에 중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경전문가들은 개발에 치우쳐 시나브로 자연이 훼손되는 동안 후대가 누려야 할 몫의 생명력이 지구에서 사라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 기후변화를 둘러싼 고민의 방향은, 그래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맞춰지면 늦는다. 실천은 이미 당위이고 이제는 '얼마나 실천할 것인가' 하는 시간과 양의 문제가 절실한 상황이다. 지금 우리는 환경을 위해서 얼마나 실천하고 있을까. 이번 행사는 이런 고민들을 깨닫게 해주는 작은 단초가 되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