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읽기] MBC<지붕 뚫고 하이킥>각기 다른 사회적 위치와 욕망 지닌 개성들

'지붕뚫고 하이킥'의 지훈
한동안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20대 주인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주인공은커녕 20대의 삶과 사랑을 제대로 그려낸 드라마를 찾기도 어려웠다.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의 사회에서 20대는 더 이상 강력한 '구매력'을 지닌 소비 집단이 아니라는 분석, 20대의 소외와 탈정치화로 인한 영향력의 상실 등 수없이 많은 분석이 있었다.

역사상 가장 평균 학력이 높고 다채로운 문화적 컨텐츠를 경험했으며 영어 실력도 가장 높다는 20대, '그들의 자리'를 찾는 것이 왜 이토록 어려운가를 두고 수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지붕 뚫고 하이킥>에 등장하는 20대들의 모습은 가뭄의 단비 같다. 아주 오랜만에 우리는 '20대의 지금, 여기'를 성공적으로 그려낸 시트콤을 만난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붕 뚫고 하이킥>은 지금까지 '된장녀' 아니면 '이태백'으로 그려졌던 20대의 극단적인 상투성을 넘어섰다. 세경, 지훈, 정음, 인나, 광수, 줄리엔은 모두 20대이면서도 저마다 다른 사회적 위치와 욕망을 지닌 개성 넘치는 존재들이다.

'지붕뚫고 하이킥'의 세경
부모의 원조를 전혀 받지 못하는 세경은 동생의 생계와 교육까지 전담해야 하는 처녀 가장으로서 24시간 입주 도우미생활을 하고있다. 지훈은 이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스펙'을 지닌 20대로서 선망받는 레지던트 생활을 하고 있지만 너무 정신없이 바쁜 '레지인생'이라 젊음을 즐길 여유가 없다.

정음은 '서울대'와 발음이 비슷해서 더더욱 서운한 '서운대'생으로서 우여곡절 끝에 '서울대생'으로 오해받으며 과외알바를 뛰고 있지만 언제 서운대생의 비밀을 들킬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인나와 광수는 일찍이 사랑으로 뭉쳐 동거까지 하고 있지만(적어도 이 두 사람은 외롭지 않다는 점에서 다른 이들보다 따스한 20대를 보낸다) 언제 가수의 꿈을 이룰지 요원한 만년가수지망생들이다. 줄리엔 또한 한국사회의 높은 취업문턱을 넘느라 여기저기서 '미역국'을 마셨지만, 고등학교 원어민강사라는 괜찮은 직장을 얻어 나날이 신수가 훤해지고 있다.

모든 캐릭터가 하나같이 역동적이고 매혹적이지만, 이중에서도 특히 세경의 턱없이 진지하면서도 시리도록 애잔한 무표정은 호소력 짙은 슬픔의 바이러스를 전파한다. 이 슬픔의 기원은 무엇일까.

모두들 고생스런 20대를 보내고 있지만 무언가 '꿈'이 있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이 있지만, 세경에게는 꿈꿀 자유자체가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녀는 최저생계비의 반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으며 식모생활을 하고 있다. 아버지의 빚 때문에 숨어사느라 마치지 못한 학업도 계속 하고 싶지만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다.

세경의 동생인 초등학교1학년생 신애가 장래희망을 고민하던 장면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언니 편'일 것 같은 신애마저도 언니를 닮고 싶진 않다고 고백한다.

"저는 세상에서 언니를 가장 사랑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언니처럼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신애는 언니 꿈이 뭐냐고 묻지만 세경은 그저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 세 식구가 함께 모여 사는 것이 유일한 꿈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생존의 무게에 짓눌린 나머지 꿈꾸는 방법조차 망각해버린 것일까.

그녀는 노동하고 노동하며 또 노동한다. 이 기약없는 노동은 세경과 신애 두 자매를 겨우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는 가녀린 버팀목이다.

하지만 세경이 시청자들에게 '격하게' 사랑 받는 이유는 단지 그녀의 고통을 향한 연민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불러일으키는 20대의 보편적 감수성, 돌이킬 수 없는 '그때 그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닐까.

즉 세경은 우리가 정신없이 지나쳐온 20대, 어르신들이 '참 좋을 때다!'라고 혀를 끌끌 차시던 바로 그때 그 시간이 얼마나 미치도록 소중했는가를 일깨우는 뮤즈 같은 존재다. 그녀는 우리의 20대가 공유했던 보편적 슬픔의 촉수를 기어이 건드려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세경의 '사랑니' 에피소드는 그 슬픔의 절정이었다.

세경은 심한 치통으로 끙끙 앓으면서도 병원 한 번 가보지 못하고 대가족의 온갖 수발을 들어주며 그날도 기약없는 노동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아마 의료보험조차 없을 것이 확실한 세경의 무표정은 이날따라 더욱 가슴 시렸다.

의사인 지훈은 퉁퉁 부은 세경의 볼을 알아보고 세경의 이마를 짚어본다. "너 누구 좋아하니?" 세경은 불에 덴 듯 얼굴이 화끈거린다. "아, 아니요. 저 좋아하는 사람 없는데." 사소한 농담도 안 통하는 진지소녀 세경에게 지훈은 웃으며 말한다.

너, 사랑니 났다고. 아무도 포착하지 못한 자신의 아픔을 콕 집어 도려내는 지훈, 사는 게 너무 두려울 때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꼭 자기 앞에 있어주던 지훈이 오늘따라 더욱 눈부시다. 하지만 그는 너무 높은 곳에 있다. 내가 똑바로 쳐다보기도 어려운 그곳, 전도유망한 레지던트 지훈이 마시는 공기는 아마 뼛속부터 다를 것이다.

사랑니를 뽑으러 가기 위해 지훈을 만나러 간 까페에서 세경은 지훈의 후배를 만난다. 늘씬한 몸매와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세경의 기를 죽인 그 후배는 세경을 지훈의 여친으로 오해하고 '소개 좀 해보라'고 다그치지만 지훈은 세경을 배려한답시고 대충 '아는 동생'이라 얼버무린다.

세경의 마음은 이미 무너져내렸다. 나도 그에게 당당히 소개받는 존재가 되고 싶은데, 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볼 수조차 없다. 세경은 그렇게 시작하기도 전에 맥없이 끝나버린 자신의 슬픈 첫사랑을 가슴에 묻어야 한다.

사랑니는 아무와도 공유할 수 없는 슬픔의 은유다. 대단한 고통이라고 당당하게 인정받을 수도 없는, 고통의 울타리에도 미처 진입하지 못하는 '별볼일 없는' 고통. 하지만 세경의 무표정은 모든 것을 말한다.

사랑니를 뽑는 순간 그녀의 눈에서 소리 없이 흘러내리던 눈물은 가장 소중한 것을 미처 만져보기도 전에 포기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했을 눈물이었다. 사랑니는 내 입술 안에서만 선연한 상처다.

사랑니가 없다고 해서 불편한 것은 없지만 사랑니를 뽑는 순간 내 안의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기는 듯 시리고 아프다. 그녀의 상처는 자신의 마음 안에서만 피를 뚝뚝 흘리는, 보이지 않는 내상(內處)이다. 사랑니를 뽑을 때 그를 향한 내 부질없는 열망도 함께 뽑아버려야 한다.

기형도의 <빈집>이라는 시 또한 20대의 실연에 가장 어울리는 시가 아닐까.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우리의 20대도 그랬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우리는 누구나 저주 받은 인어 공주였다. 우리 집(바닷속)에서는 한없이 귀한 딸이지만 그가 속해 있는 저 세상(육지)에서는 걸음조차 똑바로 걸을 수 없고, 내가 누구인지 소개할 수 있는 '혀'조차 움직일 수 없었던.

빈 집에 갇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우리들의 지나가버린 가여운 사랑처럼, 아무도 모르는 세경의 사랑은 사랑니처럼 쓸쓸하게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정여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