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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도 예술이다

[미디어아트프리즘] 소음을 사용한 구체음악
음과 소음의 경계 허물면 모든 소리는 원초적 소리일 뿐
  • 구체음악 작업을 하는 작가 브랜든 라벨
장미 가시에 찔려 운명을 마감해야 했던 헝가리 출신의 시인 라이너 릴케는 젊은 시절에도 남다른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파리에서의 고독한 유학 시절 해부학을 배우던 그는 인간의 두개골에 남다른 매력을 느꼈다. 심지어 두개골을 몰래 집에 가져와서 책상 위에 올려두고 종종 바라보았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두개골은 죽은 사람을 상징하는 해골로서 끔찍한 물건으로 생각할 것이다. 릴케에게 두개골은 신비롭고도 묘한 매력을 주는 흥미로운 대상이었던 것이다.

릴케의 이러한 독특한 취향은 단지 두개골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두개골이 하나의 뼈가 아닌 몇 개의 덩어리들이 겹쳐져서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매우 신기한 일이다. 사람의 정수리를 보면 두 개골이 하나의 덩어리가 아닌 여러 개의 덩어리가 겹쳐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릴 때는 두개골을 이루는 덩어리들이 확고하게 겹쳐져 있지 않다가 성장하면서 꽉 조여져서 마치 원래부터 하나의 덩어리였던 것처럼 확고해진다.

하지만 두개골을 이루는 덩어리들, 전두골, 후두골, 측두골, 두정골 등이 뭉쳐지면서 그것들이 봉합된 선은 여전히 남아 있다. 릴케는 이 두개골의 봉합선을 보면 갑작스럽게 엉뚱한 상상을 하였다. 과연 이 홈처럼 갈라진 봉합선에 전축 바늘을 꼽아서 재생을 하면 어떤 소리가 날까?

릴케가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두개골의 봉합선이 마치 레코드판에 새겨진 홈을 연상시킬 정도로 외관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CD가 보편화 된 이후 지금은 거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지만, 이른바 LP판을 보면 가느다란 홈이 새겨져있다.

  • 브랜든 라벨의 작업/퍼블릭 주크박스
과거의 전축은 플라스틱의 커다란 원판을 1분에 33번 회전시켜 그 위에 매우 가느다란 바늘을 올려놓고 바늘이 원판에 새겨진 홈의 진동을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녹음된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거꾸로 보자면 녹음의 과정은 소리가 내는 공기속의 진동을 원판에 파형으로 새겨서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니 릴케가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전혀 엉뚱한 일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릴케의 이러한 발상은 그저 두개골의 봉합선과 레코드판에 새겨진 홈의 유사성을 발견한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두개골에 새겨진 봉합선에 레코드 바늘을 올려서 재생을 한다면 어떤 소리가 날지에 대해서 상상하였다. 아마도 우리 귀에 친숙한 악기의 소리나 사람의 목소리가 나지 않을 것이다. 찍찍대는 소음만 날 것이다.

그런데 이 소리가 과연 소음일까? 레코드판에 새겨진 홈과 두개골에 새겨진 봉합선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저 생김새의 차이일 뿐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들을 이미지로 바꾼다면 그저 생김새가 다를 뿐이다. 슈베르트의 가곡이나 바람에 산들거리는 나뭇가지의 소리 혹은 문이 삐거덕 대는 소리 등 모든 소리는 그저 다른 생김새를 지닐 뿐이다. 이 중에서 어떤 소리는 아름다운 음악소리이며 또 어떤 소리는 소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특정한 생김새를 기준으로 그 기준에 부합하면 미인이며 그 기준에 크게 이탈하면 기형이라는 근거는 세상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레코드판에 새겨진 홈에서 나는 소리만이 소리가 아니라 두개골의 봉합선을 재생하였을 때 소리가 난다면 이 또한 하나의 소리가 아닐까?

더 비약하여 말하자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른 생김새를 지니고 저마다 원초적인 존재의 의미를 지니듯이, 이 세상의 모든 소리들 또한 저마다 원초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는 원초적인 소리일 뿐 원래부터 좋은 소리와 나쁜 소리, 혹은 아름다운 소리와 추한 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 위에서 본 두개골의 봉합선들. 그림 윗 부분(두개골의 앞 부분)의 관상봉합선은 레코드판의 홈과 매우 유사해 보인다.
이렇게 음악적으로 좋은 소리(음)와 듣기 싫은 소리(소음)를 구별하는 것은 예술을 '아름다움'의 기준으로만 보고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을 구분하는 능력을 예술적 판단이나 미감으로 간주하였던 근대적인 미학의 패러다임에 속한다. 음악에서 아름다운 소리에 집착하는 근대음악의 패러다임을 본격적으로 공격하고 그것을 해체하고자 시도한 사람이 아놀드 쇤베르크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근대 서양음악이 구축하였던 음악체계의 근본이 기존의 음계에 있음을 깨닫고 기존의 음계를 거부하고 임의로 음계를 구축하였다. 그가 만든 곡은 기존의 음계에 친숙한 사람들의 귀에는 마치 소음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급진적인 시도는 거꾸로 사람들의 귀가 아주 특정한 음에만 고착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기존의 음악에서 불협화음으로 간주하던 것도 얼마든지 음악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아예 고운 소리를 내는 악기의 소리와 일상적인 잡음들의 구분을 허물어버리고 일상적인 소음들을 음악의 용재로 사용한 '구체음악'(musique concrété)을 통해서 확장되었다. 오늘날 현대음악은 아예 음과 소음의 경계를 없앤다. 가령 현대 작곡가가 작곡한 플루트 곡은 마치 소음처럼 튕기는 소리를 낼 뿐만 아니라 플루트의 관악기적 특성을 무시하고 타악기처럼 두들겨서 소리를 내기도 한다. 이러한 시도는 모두 다 음과 소음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브랜든 라벨(Branden Labelle)은 미디어를 활용하여 음과 소음의 경계 혹은 안과 바깥의 경계를 허문다. 그는 소형의 마이크를 집의 바깥 곳곳에 설치한다. 가령 집 건문 외벽에 마이크를 설치하여 미세한 바람의 소리를 잡아내거나 바깥의 인도까지 마이크를 설치하여 인도에서 나는 소음을 잡아낸다. 심지어 도로의 자동차 소음까지도 마이크로 포착한다.

이렇게 마이크로 흡수된 외부의 소음은 길게 연결된 선을 통하여 집 내부에 설치된 스피커로 전달된다. 집의 내부 계단 혹은 창틀 등 여러 곳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하여 외부의 소리들이 집안으로 그대로 전달된다.

  • 브랜든 라벨의 집 외부에 설치된 마이크
미디어를 활용한 라벨의 작품은 소리를 통해서 집안의 내부와 외부라는 경계를 허물어트린다. 소리는 마이크와 스피커라는 미디어 장치를 통해서 벽이나 문을 관통한다. 이러한 관통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벽이나 문은 본래 안과 바깥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벽은 두 공간을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속적으로 연결짓는 것이다.

문 역시 내부의 공간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잠그는 차단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외부와 내부를 연결짓는 통로이다. 라벨의 작품은 단절된 벽이나 문을 연결시키는 외부장치가 아니라 벽이나 문이 본래부터 경계짓기가 아닌 하나의 연속공간을 형성하는 가교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이러한 가교의 역할은 단지 내부와 외부의 공간적 차원에서만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문이나 벽이 외부의 소음으로부터 내부를 차단한다는 소음에 대한 경계짓기를 허무는 작업이기도 하다.

  • 브랜든 라벨의 집 내부에 설치된 스피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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