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형 vs 관치형주민참여로 북적, 국공립 시설 훌륭한 인프라 못 살려 아쉬워

울산 동구 더불어 숲
스타벅스, 커피빈을 비롯한 대형 커피 체인이 즐비한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거리. 대안적 성격의 인문학 쉼터가 눈에 띈다. 적색 벽돌건물의 2층에 자리잡은 이 카페에서는 인문학 강의가 열리기도 하고 조그만 서재에서 책을 꺼내볼 수도 있다.

특히 저녁이나 주말에 세미나실이 활발하게 돌아간다. 인문학 교실이나 무료 법률상담 등의 강의가 열리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카페를 빌려 문화·공연 행사를 여는 사람들도 있다.

이 카페는 공정무역 커피와 차를 취급해 산지농가에 혜택을 돌려준다. 여성이주노동자가 제작한 수공예품을 전시·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카페의 이름은 '커피밀'.

기독 월간지 <복음과 상황>을 중심으로 한 신자들이 쌈짓돈을 모아 지난달 20일 서교동에 문을 열었다. 교계의 중도주의를 지향하는 이들은 신자의 사랑방 역할에 치우친 교회 북카페에서 벗어나 문을 외부로 활짝 열고 있다.

1일 카페를 찾은 하종현(36)씨는 "그냥 커피만 마시는 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자신을 살찌울 수 있는 곳"이라며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수익을 매체운동이나 공정무역에 돌리려 하는 공익적 의미가 있어 더 좋다"고 말했다.

한파 속 인문학 쉼터의 온도차가 크다. 주로 주민참여에 의한 자생적 인문학 쉼터는 작은 규모에도 이용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반면, 일부 국·공립 시설은 훌륭한 인프라를 갖추고도 의지 부족과 관리 소홀 등으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인문학 쉼터의 운영 격차는 문화 경영에 있어 자생력과 소규모의 가치를 시사한다.

서울문화재단 책다(多)방·책사랑

서울 청계천 인근에 차 한잔으로 따뜻하게 몸을 녹이며 마시며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으나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세금으로 만들어진 이 공간에서 저녁이면 인문학 강의를 수강료 없이 들을 수 있다.

지난해 8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서울문화재단 건물 1층에 문을 연 책다(多)방·책사랑이 그것이다.

서울문화재단 책多방
책다방은 99.174m²(30여 평) 규모로 문학·아동·청소년·서울테마 도서를 비롯한 총 500여권의 장서를 열람할 수 있다. 나무바닥에는 차 한잔을 즐기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쇼파도 있다.

책사랑은 66.116m² (20여 평) 공간의 세미나룸으로 주로 오후에 어린이 성인 등을 대상으로 한 무료 인문학 강의가 열린다. 올해 하반기(6월~10월)에는 '책과 만나다' '영화와 만나다' '놀이와 만나다' 등의 공개강의가 열렸다.

그러나, 이런 장소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시민이 많아 이용자의 발길은 뜸한 편이다. 2일 오전 11시께 책다방에는 재단 직원 외에는 일반인 방문객이 한 명도 없었다. 평일 평균 방문객 수는 10여명 안팎에 그친다.

이용자가 와도 책다방 공간에 상주 안내자가 없어 당황할 만 하다. 주차관리·경비 직원 등의 불친절로 종종 민원을 받기도 한다.

아르코 아카이브, 문지문화원

서울 대학로 아르코 아카이브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복판에도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인문학 쉼터가 있으나 역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아르코미술관 2층에 있는 아르코 아카이브가 그것.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미술관이 올해 재단장한 66.116m²(20여 평) 규모의 아카이브에서는 3000여 권의 예술 부문 장서, 53명 작가들의 영상작품 DVD을 열람할 수 있다.

아카이브 바로 위층에 있는 세미나 룸에서는 인문·예술학 강의가 열린다. 올 하반기에는 박이문 연세대 특별초빙교수의 '둥지의 철학', 임태승 성균관대 교수의 '예술적 상상력과 동양의 사고',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원장의 '매체철학의 중요한 쟁점' 등의 강의가 진행됐다.

아무 때나 가면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낮에는 미디어아트를 무료로 감상할 수 있으며, 오후에는 유료 인문학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문학과 지성사가 2007년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문을 연 문지문화원 사이에 있는 33.058m²(10여 평) 남짓한 전시공간에서는 올해 텍스트를 주제로 한 미디어아트 전시 '텍스트, 미디어와 날다'전이 수 차례 열렸다.

대구 새벗도서관에서 열린 어린이 연극
문지문화원 사이는 올해 하반기 오후 7시 '프로이트·라캉 교실'을 비롯한 8개 철학 강의를 열었다. 이외에도 문학, 연극, 미디어 아트 랩 등의 강의가 오후 7시 이후 열린다.

유료강의 임에도 수업당 수강생은 20~30여 명 선으로 기획력 있는 인문학 강의에 대한 지적 대중의 욕구가 만만치 않은 수준임을 보여준다.

자생적 vs. 지자체 인문학 쉼터

지방에 있는 주민 참여형 인문학 쉼터와 지방자치단체 운영 인문학 쉼터의 온도차는 문화공간 운영에 있어 자율의 중요성을 더 극적으로 드러낸다.

주민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만들어진 소규모 인문학 쉼터의 열기가 뜨겁다. 대구광역시에는 사립공공도서관 1호인 새벗도서관에는 도서관은 평일 평균 100여명, 주말 평균 300여명의 시민이 방문하고 있다.

주민출자로 1989년 만들어진 새벗도서관은 363.638m²(110여 평)의 공간에 4만 3000여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새벗도서관은 올해 중구에서 달서구로 자리를 옮겼다. 문화, 문학 강좌, 어머니·자녀를 위한 독서강좌, 문화기행, 연극공연 등이 열린다.

울산 여타지역에 비해 낙후된 동구 대송동에 올해 4월 문을 연 더불어 숲도 열기가 뜨겁다. 더불어 숲은 132.232m²(40여 평)의 작은 공간이지만 하루 평균 30여 명이 이용하고 있다. 사립공공도서관인 더불어 숲은 노옥희 진보신당 울산시당 위원장을 비롯한 주민 140여명이 생활협동조합과 같은 방식으로 출자해 만들었다.

더불어 숲은 인문예술학, 문학, 사회과학 서적 1000여권을 비치하고 있다. 따뜻한 온돌방에서 책을 읽을 수 있으며, 커피와 차를 무료로 제공한다. 오후에는 노자 등의 고전강독 강의, 천연화장품 강의, 청소년 인문학 교실 등 인문학 강의에 참여해 지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반면,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일부 인문학 쉼터가 수억 원 대의 세금을 들여 거대 시설을 갖추고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어 아쉬움을 사고 있다. 지자체의 운영의지·기획력 부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경북 칠곡의 구상문학관은 697.5238m²(211여 평) 규모의 2층 건물에 2만 7000여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시인구상 기증 도서를 비롯한 문학 책이 주류다. 구상문학관은 시·수필 등의 문학창작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3월에서 11월까지 강의가 있으며 수강료는 받지 않는다.

구상문학관은 2002년 당시 박지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주도한 '1개 시군 1개 문학관 정책'에 의해 10억 원 이상의 국고를 들여 지어졌다. 하지만, 지자체와 지역민의 무관심 속에 거의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칠곡군은 사서 1명과 일용직 1명에게 관리를 맡긴 채 매년 10월 칠곡문인협회가 개최하는 구상문학제에 500만여 원을 지급하는 것 외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상문학관 관계자에 따르면 평일 평균 이용자 수는 20~30여명 선에 그치고 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