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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추락과 파국 그리고 삶의 진실

[영화 속 미술이야기] 영화 <안드레이 류블로프>와 화가 안드레이 류블로프
전설적 화가의 생애 통해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효용성 물어
  • 안드레이 류블로프 '삼위일체'
우리가 러시아를 알 수 있을까.

동양과 서양을 잇는 광활한 국토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종교 그리고 예술을 만나면서 갖는 생각이다. 모든 것이 깊고도 넓다. 아마도 그들의 이런 명상적이고 철학적인 삶을 지배하는 것은 그들의 종교 때문인 것 같다.

사실 그들에게 러시아 정교라는 종교는 종교이상의 종교이다. 인간의 삶은 물론 정치와 문화 그리고 예술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의 삶을 지배하는 러시아 정교회의 뿌리는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비잔틴 정교회이다. 신정정치(theocracy)와 헬레니즘 문화가 혼합되어있는 비잔틴 정교가 심미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슬라브족의 독특한 문화적 토양 위에 뿌리를 내리면서 만들어낸 복합적인 문화다.

따라서 그들의 문화와 예술에서 나는 소리는 깊고 웅장하며 그 심연의 울림은 끝이 없다. 이는 19세기 말 탄생한 영화예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안드레이 류블로프 '블라디미르의 성모'
이렇게 러시아 영화에 깊이와 울림을 부여한 이는 다름 아닌 '영화예술의 철학자'로 "예술은 영혼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무한한 갈망에서 태어나 뿌리를 내린다"고 자신의 예술관을 드러냈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y Tarkovsky, 1932~1986)이다.

20세기 최고의 영화감독으로 추앙받는 그는 24년간 불과 1편의 단편영화와 8편의 장편영화로 영화사에 빛나는 감독으로 자리잡았다. 인간이 종교를 통해 구도의 길을 걷는 것처럼 영화를 통해 인간의 심연과 본질을 갈파하고자 했던 감독이다.

게다가 영화의 보편적인 언어인 몽타주와 미장센이라는 기법을 취하지 아니하고 비논리적이지만 정직한 화면으로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부분을 끌어내고자 했다.

때로는 힘겹게, 때로는 힘겹다고 느껴지지만 그런 때문에 그의 화면에서 우리는 카타리시스를 느낄 수 있다. 24년의 감독생활 중 18년을 실업자로 지내면서도 영화에서 손을 놓지 않았던 그는 감상적이면서도 서사적인 화면으로 보는 이들을 감동으로 이끈다.

러시아 영화의 대세인 에이젠슈타인(1898~1948) 스타일의 영화 반대편에 서서 인류의 구원과 영혼을 탐구하는 주제의식과 환상과 자기성찰, 물과 불로 상징되는 정화와 희생, 몽상적이며 시적인 이미지를 통해 영화를 철학의 반열로 끌어올렸다.

  • 영화 '안드레이 류블로프'의 한 장면.
하지만 그는 이런 영화미학으로 인해 자신의 조국 러시아로부터 검열과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그래서 1884년 이탈리아를 거쳐 스웨덴으로 망명하고 만다. 그 후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유작이 된 <희생>(1986)을 제작 중 간암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처음으로 만든 장편영화 <이반의 어린시절>(1962)로 그해 베니스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면서 영화의 반리얼리즘적인 표현으로 인해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장 폴 사르트르가 '사회주의적 초현실주의'라는 말로 옹호해 줌으로써 비난을 피 할 수 있었을 만큼 데뷔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은 실력으로 논쟁을 유발시킨 인물이었다.

그 후 1966, 1972, 1979, 1983년 칸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해 만든 영화의 2/3가 수상함으로써 만드는 영화마다 그랑프리감이라는 찬사를 얻었다.

1983년 칸영화제에서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하면서 고독하고 힘겨운 소련에서의 영화감독생활을 보상받았지만 그는 특정한 영화 사조나 기법에 휘둘리지 않고 독창적인 작품으로 일관함으로써 조금은 난해하고 지루하지만 관객들에게 스스로 자신을 성찰할 기회를 주는 영화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만든 두 번째로 만든 장편영화인 <안드레이 류블로프>(1966)는 러시아인들의 정신적 위안이자 신앙의 모태인 성화 '삼위일체'(1411 or 1425~27)와 '블라디미르의 성모'(1405년) 등의 성화를 남긴 러시아의 유명한 화가 안드레이 루블로프(1360년대~1427 또는 1430)의 삶과 예술 그리고 종교를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15세기 초 모스크바의 근교 트리니티 성 세르기우스 라브라에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는 안드레이 류블로프는 1392년 수도원장에 임명된 정교회 신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처음으로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1405년으로 그리스의 테오판네스(1340~1410)와 고로뎃의 프로크홀(생몰연도 미상)을 도와 모스크바의 성 수태고지 성당의 벽화를 그렸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정확한 기록이 없는 전설적인 화가이다.

그는 혼란과 살육과 약탈로 얼룩졌던 15세기 초 타타르족 병사에 의해 강간당할 위기에 처한 소녀를 구하고자 그 병사를 살해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 후 '선행을 위한 살인'이라는 이중적인 동기와 결과로 인해 심한 죄책감과 번민에 시달렸다.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어긴 죄를 다스리고자 스스로에게 벌로 자신과는남은 생애 동안 말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15년 동안 묵언의 맹세를 지켜온 그는 어느날 우연히 전염병으로 종을 만드는 기술자였던 자신의 아버지를 포함한 많은 어른들이 죽은 마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부리며 종을 만들고 있는 소년을 만난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종 만드는 비법을 배웠다고 거짓말을 해서 종을 만든다는 핑계로 마을사람들을 부리는 재미를 즐기는 중이었다. 종이 완성되어갈 즈음 동네 어른들은 완성된 종이 제대로 울리지 않으면 책임자인 그 소년을 사형에 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소년은 겁이 나서 안절부절한다.

완성된 종을 치자 걱정과는 달리 맑고 장엄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때 소년은 울먹이며 류블로프에게 "실은 종을 만들 줄 모릅니다"라고 고백한다.

그때 류블로프는 15년 만에 입을 열었다. "괜찮다. 이젠 괜찮다"라고. 이렇게 그의 인간적인 번민과 고뇌는 소년의 거짓말과 뉘우침 그리고 그를 뉘우치도록 배려한 하느님으로 인해 일거에 사라졌다.

이런 그의 삶에 대한 전설 같은 이야기는 영화에서도 그대로 그려지는데 7개의 에피소드가 느슨하게 연결된 '프레스코' 구조를 지녀, 각각의 이야기가 하나하나 그리고 모여서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데 이 이야기는 종(The Bell)이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에피소드로 그려진다.

영화는 주인공 루블료프가 등장하지 않는 기구를 타고 하늘로 오르다가 뻘 밭에 곤두박질치는 서막을 시작으로 성모의 품안에서 늘 성스럽고 평화로운 수도원으로부터 길을 떠나 전쟁과 약탈, 이교들의 축제, 예술의 박해, 끔찍한 살인과 비참한 삶으로 영화를 이어간다.

이것은 수도원에서 속세로, 관념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나가 살육과 약탈 억압과 통치, 거짓과 위선 속에서 살아가고자 몸부림치는 인간의 삶의 한계를 보여준다.

절망적인 삶에도 불구하고 극한을 넘는 몸부림 끝에 그는 하느님을 만나 빛나는 <삼위일체>를 완성한다. 그가 걸어오며 만났던 많은 처절한 삶 때문에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도하고 원망도 했지만 결국 그는 하느님의 존재를 깨닫고 찬미하는 그림을 남겼다.

따라서 이 영화는 화가 안드레이 류블로프의 삶을 빌어 감독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술은 사실의 반영이 아니고 진실의 창조"라고 말했던 타르코프스키의 미학의 일단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예술적 현실'을 창조하기 위해 '사실적 현실'을 깨 "박물관적 복원을 지속적으로 파괴해줄 무엇을 삽입하도록"했다고 한다.

힘든 민초들의 삶을 통해 예술의 사회적 기능 즉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효용성'을 묻는 이 영화는 정책을 비판하는 영화라는 이유로 1971년까지 상영할 수 없는 처지였지만 영화 마니아들에게는 이미 전설이 되어있었다.

타르코프스키가 영화감독 콘찰로프스키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신비에 싸여있던 성상 화가 류블로프에 몰입되어 영화화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이 영화는 영화가 얼마나 진솔하게 인간의 심연에 깊이 다가 갈 수 있는 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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