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 <당신이 대한민국입니다>11명의 다큐 사진가 진정한 나라의 주인을 묻고 재확인하는 장 마련

언론인 홍세화(이상엽 작가)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대한민국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싸워준 우리 선수들…',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정권의 퇴진을 촉구한다!"

대한민국 운운하는 표현들은 이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사가 됐다. '대한민국'은 '국민'의 대체어로 공공연히 사용되는 바람에 오히려 그 대표성을 잃어버린 감마저 있다. 물론 이는 '대한민국'을 비롯해 '국민', '시대' 등의 큰 단어들을 입에 달고 사는 정치인들의 언동에 기인한 바가 크다.

그런데 서울 종로의 견지동 평화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 사진전의 제목에도 '대한민국'이 들어가 있다. '당신이 대한민국입니다'라는 이름이 붙은 이 사진전의 부제는 '국가의 진정한 주인을 묻는 11인의 사진전'이다.

여기서 발견되는 '대한민국'의 모습은 요즘 유행하는 '그 대한민국'과는 다르다. 박정희 시대를 잇는, 고도성장의 자랑스러운 성과를 보여주는 표본으로서의 대한민국은 여기에 없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승리를 거머쥔 스포츠 영웅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언론에 회자되고 있는 한두 명의 인사를 제외하면, 사진 속에 비춰지고 있는 인물들은 그 이름조차 낯선 소시민들이다.

이 행사의 주최자를 읽으면 이 작품들의 행간은 쉽게 읽혀진다. 시민운동가 박원순 변호사가 상임이사로 있는 희망제작소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6월 박원순 변호사는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국가정보원에 대해 발언을 했고, 이에 국가정보원은 '국가정보원과 정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를 들어 '대한민국'을 원고로 한 2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졸지에 원고인이 된 '대한민국'은 누구일까. 전시장에 걸린 사진들은 이 질문에 '바로 당신'이라고 답하고 있다.

박원순 변호사(임상태 작가)
11인의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촬영한 40여 점의 인물 사진들은 회사원, 의료봉사자, 종교인, 연탄공장 노동자, 농부 등 사회 각계각층의 일상들로 채워졌다. 성남훈, 이상엽 등 11명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은 묵묵히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사람들의 삶을 사진에 담아내며 '대한민국'에 대한 정의를 확고히 한다. 그 이름은 정치인 또는 정부기관에 허락없이 무단사용되는 도구가 아니라,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에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전시장을 메우는 이들의 '목소리'다. 사진가들은 카메라와 함께 녹음기도 들고 이들의 일상을 따르며 그들의 육성을 담아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임상태 작가는 "사진가들끼리 모여 서민의 삶의 현장을 더 잘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육성을 채록해 전시장에서 들려주는 방법을 생각해냈다"고 밝힌다. 분명하지 않은 발음으로 소박하게 말을 건네는 이들의 목소리는 사진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작가들은 촬영 대상 인물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이 살아가는 현장을 관찰하면서 그들의 체취를 사진과 소리로 포착해냈다.

이른바 하층민으로 분류되는 이들의 고된 삶에서 대한민국은 더욱 빛난다. "농사란 땅을 만드는 일이야. 쉽지는 않지만, 쉽게 얻어먹으려고 생각하면 도둑놈이지!" 첨단 기술과 거대 자본이 점령한 물질만능시대에도 꿋꿋이 농사를 짓는 이의 모습에선 우직한 대한민국이 보인다. "뭐가 힘들어요. 만날 하는 일인데…. 재미져요~." 깊게 파인 주름만큼이나 순탄치 않은 삶의 질곡을 거쳤을 연탄공장 노동자의 미소는 쉴새없이 돌아가는 기계소리와 맞물려 '삶의 소리'를 형상화하고 있다.

전시장의 사진들과 목소리를 뒷받침하고 있는 또 하나의 '목소리'는 민중가수 박창근의 것이다. '민중가수', '생명가수', '봉사가수' 등의 이름으로 다양하게 불리지만 정작 그 자신은 '반성라는 가수'로 불리고 싶다는 박창근. 늘 스스로를 반성하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래한다는 그의 진솔한 모습과 노래는 김흥구 작가의 손에 포착돼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전시장 곳곳에 걸린 소시민들의 일상은 익숙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라면, 입구에 걸린 광대의 사진은 다소 초현실적이다. 성남훈 작가가 담아낸 이 광대는 빨간 꽃 한 송이를 들고 하얀 설원 위를 걷고 있다. 광대는 말을 하지 않는 자다. 광대가 생각하는 희망이란 말이 없어도 누구나 알 수 있고 편한 세상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이처럼 사람들에게 말을 꺼내게 하고 나서게 하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마르셀리나 수녀(최형락 작가)
이번 전시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정주영 씨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그는 다음 아고라의 청원 게시판에 이번 소송의 취하를 촉구한 최초 청원자다. '감히' 국정원을 상대로 청원을 할 만큼 용감하지만 그의 정체는 급진적 열사가 아니라 평범한 14년차 직장인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은 대한민국'이라고 말하는 그는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희망하며 작은 촛불을 든 채 우리를 바라본다.

이번 전시는 국가기관이 원고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국민(희망제작소 박원순 상임이사)을 고소한 소식을 접한 사진가들의 자발적인 제안과 참여로 이루어졌다. 희망제작소의 한 관계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 모두가 대한민국의 구성원이라는 자각을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그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그동안 너무나 쉽게 사용되며 잠시 잊고 있었던 '대한민국'의 주인을 묻고 재확인시키는 장이 되고 있다.


회사원 정주영(이승훈 작가)
가수 박창근(김흥구 작가)
노동자 신철수(조우혜 작가)
농부 김종북(박하선 작가)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