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공화국> & <책, 오래된 빛을 찾아서>미술 작가들의 책에 대한 통찰과 편집자가 포착한 책의 다각적 면면

<책의 공화국> 최진아, 'READING'
고도원 작가에게 책은 '밥'이다. 매일 아침 수백만 명의 독자에게 e-메일을 부치는 <아침편지>의 밑줄을 긋는 남자. 육체의 건강을 위해 매일 두 세끼의 음식을 먹듯, 정신의 건강을 지키는 비결은 독서라고 말한다.

이 시대의 지성 이어령 교수에게 책은 '산소'다. 독서는 그에게만큼은 인생의 옵션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영역을 확대해 독서를 하지 않는 것은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사회의 불행이라고 설파하기도 했다.

어떤 이들에게 책은 인생의 좌표이기도 하고 다른 이들에겐 숙제와 같은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책은 두근거림이다. 읽고 싶은 책의 빳빳한 표지를 바라보고, 그 위에 쓰인 글귀를 읽고, 책장을 한 장씩 넘기며 활자를 받아들이는 행위는 호감 가는 사람과 마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읽는 사람이 아닌, 책을 만들어 내는 사람과 미술 작가들에게 책은 어떤 의미일까. 이들의 책을 바라보는 낯선 시선과 익숙한 두근거림이 교차하는 곳은 예술마을 헤이리에 위치한 갤러리 한길과 북하우스 아트스페이스다.

이들 공간에서 각각 <책 공화국>과 <책, 오래된 빛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책을 모티프로 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2009년, 한길사·한길아트(대표 김언호)의 창사 33주년을 맞아 열리는 특별 전시다. 전자가 미술작가들의 책에 대한 통찰이라면 후자는 책 편집자로 살아온 김언호 대표가 카메라 프레임으로 포착해낸 책의 다각적인 면면이다.

<책의 공화국> 정세윤, '문맹'
책은 아름답다

"책을 만들면서 저는 문자에 대해 늘 감동합니다. 문자는 인간이 창출해낸 가장 위대한 인문학이자 가장 탁월한 예술품이라는 생각을 더욱 하게 됩니다." 책 만드는 일이 운명이라는 김언호 대표는 취미로 들게 된 카메라를 가지고 떠난 세계 곳곳에서 책을 피사체로서 마주했다. 책의 아름다움이 극대화 되는 순간, 그는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문장을 매만지고 작가의 세계에 어울리는 건축을 세우고 색을 입히는 것이 편집자로서의 일이었다. 그에겐 책의 정면뿐 아니라 옆 모습과 뒤통수마저 아름다워야 했다. 무엇보다 책이 품어내는 극치의 미라는 것은, 독서의 행위에서 발현된다. 표지 속에 감춰둔 깊은 속내를 부끄러움 없이 드러낸 책과 책장 위에 머무는 타자의 시선이 하모니를 이루는 순간은 아름답다.

그렇게 1년 간 국내외에서 촬영한 사진은 23장으로 추려져서 전시 중이다. 역사적 의미를 압도할 만큼 시각적 멋스러움을 간직한 훈민정음 필사본, 한가롭고 따스한 독일 고서점의 풍경, 견고한 건축물과도 같은 책의 옆면, 꼬마들이 모여 책을 읽는 장면 등이 있다.

<책, 오래된 빛을 찾아서> 에는 이들 사진과 함께 사학자 故 함석헌 선생이 집필한 책의 활판(活版)도 일부 볼 수 있다. 프린터가 나오기 이전에 인쇄를 위해 활자를 찍어내던 틀이었다.

<책의 공화국>이지현, 'dreaming books-to books'
책의 반전, 우리의 자화상과 마주하다

책은 뜯어먹기 좋은 빵이라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책장이 한 장도 빠짐없이 보기 좋게 뜯겼다. 책 위에 초현실적인 도시 풍경을 그려낸 작가도 있다. 손 위로 쌓인 책이 천장에 닿을 듯하고 조각난 문장 속에서 부정어 'NOT'만이 부각되어 있다. 오원배, 이지현, 정세윤, 최영돈, 최은경, 최진아 작가 등 6명의 작가가 70여 작품을 통해 책을 해석해냈다.

인간의 운명과도 같은 소외라는 주제에 천착해온 오원배 작가는 마치 중세의 프레스코화같이 책 표지를 장식했다. 우리시대의 정체성을 고민해온 이지현 작가는 책을 뜯는 행위를 통해 방황하는 현대인의 단상을 드러내고 있다고 작업 노트에 적고 있다.

사진작가 정세윤에게 책은 이율배반적이다. 가구가 늘어날수록 집이 좁아지는 것처럼 책과 지식이 쌓여갈수록 모르는 것은 더 많아지는 역설처럼. 생성과 소멸을 성찰해온 최영돈 사진작가에게 책은 시간의 본질과 의미를 탐색하는 소재로 활용된다.

"무수한 책을 읽고, 지성인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위치에 서게 되면 왜 인간은 정직해지지 못할까?"라는 의문에서 최은경 작가의 책 작업은 시작됐다. 책의 문자를 없애는 작업을 통해 조각 작품을 선보이는 최 작가는 사람으로서의 조건을 말한다. 최진아 작가는 소통의 도구이지만 반대로 소통을 통제하는 문자의 한계를 표현한다.

<책, 오래된 빛을 찾아서>'오래된 책의 아름다운 옆모습'
지식의 보고이자 문자화된 문화인 책. 뜯기고 분해되고 반전된 책의 이미지는 단지 책으로 존재하지 않고 우리 자신을 반추하게 한다. 책을 모티프로 미술작가들이 작업한 <책의 공화국>은 올해를 시작으로, 작가를 달리해 매년 개최할 예정이다. 12월 19일에 시작된 두 편의 전시는 내년 2월 21일까지 이어진다.


<책, 오래된 빛을 찾아서>'아주 오래된 한 권의 큰 책'
<책, 오래된 빛을 찾아서>'책 읽는 아이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