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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빵해도 좋아, 꾸뛰르 패딩

우아하고 로맨틱하고 아방가르드하기까지…패딩의 신세계
  • 몽클레어 감므루즈
"그런 식으로 여자의 실루엣을 망치는 옷은 정말 용서가 안돼."

태어나서 한 번도 패딩 점퍼를 입어본 적이 없다는 한 스타일리스트의 말 그대로 패딩은 못난이 옷이다. 중세 시대 이후로 도저히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 뚱뚱함의 미학 대신 바짝 마른 몸매가 세계적 미의 기준으로 추앙 받고 있는 이상은 그렇다.

여자에게는 특히 치명적이다. 허리에서 골반으로 떨어지는 매혹적인 라인을 눈치 없이 가리는 올록볼록 엠보싱, 거기다 광택 나는 합성 소재는 빨강이든 검정이든 어떤 색깔도 깊이 있게 표현해 내지를 못한다. 여성스러움도, 섹시함도, 시크함도… 패딩으로는 아무 것도 못한다. 스포티함 밖에는.

결국 체감 온도가 영하 20도로 떨어진다는 뉴스를 듣고도 이를 악물고 모직 코트를 꺼내 드는 이유는 순전히 스타일 때문이다. 그리고 중년 여성의 입술 문신처럼 편리를 위해 스타일을 포기하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들에게 패딩은 기능복이자 필요악, 태초에 추위를 피해 의복을 개발한 원시인의 센스에서 한 발짝도 진화하지 못한 옷이다.

몸이 부풀려지는 일에 대하여

  • 아이스버그
여자들이 실제보다 몸이 부풀려지는 것을 허용하는 몇 안 되는 경우 중 하나는 모피다. 여우나 밍크의 부드러운 털은 여성스럽고 우아해 보일뿐더러 겨울의 칼 바람을 효과적으로 막아주기 때문에 몸집이 좀 커지는 것쯤은 문제가 안 된다. 아니 오히려 그 볼륨이 아름다움이 되어 퍼의 위엄을 대변한다.

만약 패딩이 퍼처럼 우아할 수 있다면 어떨까? 여성스러움도 우아함도 심지어 미니멀과 아방가르드까지 소화할 수 있다면?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이 제안한 꾸뛰르 패딩은 이런 가능성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그들은 가느다란 체인 하나로 패딩을 무시무시한 고딕 패션으로 만들기도 하고 크리스털과 퍼를 이용해 최고로 우아하게도 표현했다.

후세인 살라얀이 패딩을 시도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LED 조명도 사용하는 마당에 무엇엔들 손을 안 댈까. 하지만 결과물을 보면 그 기발함에 또 놀라게 된다. 아마도 충전재로 깃털 대신 스폰지를 사용한 듯 볼륨을 완벽하게 조절한 패딩 코트는 스테인리스 스틸 같은 차가운 회색 때문에 더욱 딱딱한 갑옷처럼 연출됐다.

일본 디자이너 준야 와타나베는 패딩 트렌드에 뛰어 들었다기 보다는 자신의 아방가르드함을 표현하는데 패딩을 '이용해 먹었다'. 온통 컴컴하고 으스스했던 그의 컬렉션에 등장한 검은색 패딩은 인체를 왜곡함으로써 인간 냄새를 싹 걷어내는 데 일조했다. 거기다 커다랗게 부푼 패딩이 금색 체인에 꽉 조여진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문 당하는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게 했으니 그의 의도가 어느 정도 달성된 것으로 봐야 할까? 아무튼 와타나베는 고딕 패션에 패딩을 이용한 첫 번째 디자이너일 것이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지암바티스타 발리는 패딩으로 아주 여성스러운, 그것도 부인의 안정적인 여성스러움을 표현해 냈다. 짧은 크롭트 재킷의 소매에만 패딩을 풍성하게 사용했는데 요즘 유행하는 파워 숄더 같기도 하고 왕비들이 입었던 드레스의 부푼 소매 같기도 해 트렌디하면서도 기발한 패딩 아이템이 탄생한 것. 팔과 대비되는 가느다란 몸통은 하의를 어떻게 매치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날씬하게 연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 지암바티스타 발리
빅터앤롤프는 패딩의 선을 무너뜨렸다. 천 사이에 솜이나 털을 넣고 가로 방향으로 바느질하는 것이 일반적인 패딩이라면 그들은 그야말로 쿠튀르에서만 가능한 기법으로 정형적인 선을 완전히 무시하고 조각 같은 패딩 코트를 만들었다. 이 방법은 생각보다 장점이 많았는데 공들인 예술 작품처럼 보인다는 것 외에도 패딩의 양감이 잘게 쪼개지면서 훨씬 더 날씬해 보이는 효과를 거두었다.

아이스버그는 패딩의 부한 느낌을 감추려고 노력하지 않고 오히려 대놓고 과장했다. 대신 윤기가 흐르는 모피나 스팽글 같은 다른 소재와의 믹스 & 매치를 시도해 스포티한 패딩에 드레시함과 우아함을 부여했다. 물론 길이를 짧게 만들거나 소매를 반으로 뚝 잘라 거대한 몸 아래로 새처럼 가느다란 팔, 다리를 노출시킴으로써 뚱뚱해 보이는 것을 피했다.

디자이너 브랜드는 아니지만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을 통해 하이패션에 접근한 패딩 브랜드도 있다. 몽클레어의 꾸뛰르 라인인 감므루즈를 통해 패딩의 빵빵함을 100% 살리면서도 이브닝 웨어로도 손색 없을 만큼 우아한 패딩을 선보였는데 여기에는 나일론 대신 은은한 광택의 새틴을 사용한 것이 주효했다. 투박한 지퍼나 스탠드 칼라, 주머니 등 패딩을 스포츠 웨어로 보이게 만드는 요소들을 전부 없애버리고 대신 리본 장식, 복슬복슬한 모피, 크리스털 브로치, 장갑 등을 더함으로써 패딩도 로맨틱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꾸뛰르라는 개념은 디자인뿐 아니라 품질과도 관련이 있다. 패딩의 가격을 좌우하는 것은 다운, 솜 등 내부를 채우는 충전재인데 솜은 목화솜이나 화학솜을 말하고 다운은 오리나 거위 등 물새의 털을 뜻한다. 얼마나 좋은 털로 얼마나 많이 채워 넣었느냐에 따라 가볍고 따뜻하고 오래 입을 수 있는 패딩인가가 결정된다.

패딩 점퍼에서 간혹 삐져 나오는 털 중 깃털 펜처럼 뾰족한 것은 깃털(feather)이고 민들레 씨앗처럼 포슬포슬하게 사방으로 뻗쳐 있는 것은 가슴털(down)이다. 이중 고급은 가슴털로 한겨울에도 물에서 지내야 하는 물새의 심장을 따뜻하게 보호할 만큼 보온성이 뛰어나다. 이 가슴털의 함량이 높을수록 좋은 패딩이 되지만 워낙 공급량이 적고 부피감이 작아 깃털과 섞어 쓰는 경우가 많다.

  • 후세인 살라얀
제일 좋은 다운만을 분류해 세척하고 소독하고 헹굼, 건조 과정까지 엄격하게 거쳐 탄생한 최상급 패딩은 다른 아우터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단열 효과와 걸쳐도 걸치지 않은 것 같은 초경량을 자랑한다. 여기에다 우아함과 시크함에 있어서도 모피에 뒤지지 않는다면 이만한 슈퍼 아우터가 또 있을까.

물론 입을 때 약간의 센스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것은 의외의 조합이다. 스키니 진이나 레깅스도 좋지만 지난 봄부터 유행했던 거친 라이더 재킷 + 살랑거리는 원피스의 믹스 & 매치 공식을 따라 부푼 패딩에 짤막한 원피스나 발목까지 닿는 롱 스커트로 변화를 준다면 더 재미있게 연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패딩을 오래 입으려면 세탁 후 잘 헹군 뒤 바람이 잘 드는 곳에서 충분하게 말려주어야 한다.

도움말: 분더샵 000 바이어/사진 : sty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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